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이 발표되었죠. 브런치에 입성한 지 반년이 채 안 된 시점이라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습니다. 여러 권의 브런치북을 공모전에 제출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으며 시간을 보냈기에, 수상작 발표글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클릭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처음 훑어봤을 때 보이지 않았던 제 필명을 혹시나 놓쳤을까 싶어 여러 번 위아래로 스크롤을 돌렸던 순간도 기억이 납니다.
경쟁률이 워낙 높았기에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기대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괜히 가족 단톡방에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부끄러워 숨고 싶습니다. 에세이 위주라는 변명은 그 누구에게도 아닌 저 자신을 달래기 위한 말 같습니다. 마지막의 '노프라블럼'은 전혀 쿨 해 보이지 않은 쿨한 척이네요. :(
잠시간의 남모를 방황을 끝내고,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습니다. 그저 공모전 탈락 한 번으로 브런치 생활을 접기에는 이미 저는 브런치에 깊이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고, 브런치 작가님들과의 소통에도 이미 중독되어 있었죠.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여러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늘 인공지능에 파묻혀 살았지만, 주변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 의외로 인공지능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곤 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좀 더 쉽게 인공지능을 알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브런치에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제가 가진 얄팍한 인문학적 지식을 더한다면 새로운 관점의 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요.
다시 묵묵히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에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준 건 브런치 작가님들과의 소통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댓글로 문우의 정을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글이 쌓이다 보니, 브런치를 통한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교수'라는 본캐가 아닌 '브런치 작가'라는 부캐로서의 일이 하나둘 찾아옵니다.
첫 번째로, 책을 한 권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제 브런치 글을 좋게 봐주신 글담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해 주셔서 <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AI공부>를 집필하게 되었고, 올 10월에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도 준비 중입니다. 브런치에 쓴 글을 기반으로 자음과모음 출판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AI 리터러시'와 관련된 책 출간 계약을 맺었고, 현재는 초고 완성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방송사에서도 제 브런치 글을 보고 인터뷰를 요청해 주셨고, 내년 2월에는 패스트캠퍼스와 오프라인 특강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브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이렇게 브런치에 쌓아온 글들이 저의 부캐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작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결과에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온 '누적의 힘'이 빛을 발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말이었습니다.
운전을 하던 중, 내비게이션 화면 위로 브런치 제안 알림이 떴습니다. 그동안 브런치를 통해 다양한 제안들을 받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제안은 설레는 법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메일을 확인했고,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브런치 짬밥이 좀 차서 대상 수상자들에게는 미리 연락이 간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주인공이 제가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면서도, 냉정하게 보면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죠.
간절히 바랐던 작년에는 좌절을 맛보더니, 오히려 마음을 완전히 비운 올해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상 사실을 대외비로 지켜야 했기에, 가족들에게만 흥분된 마음으로 소식을 전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근질근질한 마음을 달래가면서요.
이후, 카카오 측과 여러 서류 작업을 진행하고 출판사와 미팅 및 계약도 진행했습니다. 생각보다 빠듯한 일정에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이후 일정을 생각하면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3주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이제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때의 감동은 많이 잦아들었습니다. 결과가 공개되는 오늘, 어떤 글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까 고민하다 작년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의 결과를 확인하고 '혹시나' 했던 마음이 실망으로 바뀌셨을 텐데요. 전혀 위로가 안 되겠지만, 제 글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제 글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이 많이 계시죠. 그저 제 브런치북은 시의성이 좋았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해 나가실 많은 작가님들의 브런치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여정에 함께해 주신,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해 주실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전 우연한 기회에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야의 명저라는 소문답게, 정식 출판되기 전에도 많은 이들이 알음알음 제본해서 책을 구해 보곤 했었죠. 저 역시 제본된 책을 구해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이 닳을 정도였습니다. 세이노의 어투가 단정적이고 내용도 현시점에서는 파격적인 부분이 많아 비난도 있었지만, 그만큼 배울 지혜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그러던 재야의 책이 데이원 출판사를 통해 작년에 정식 출간되었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죠. 저 역시 정식 발간 소식을 듣자마자 예약 구매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1쇄 책이 있는데, 이미 제본으로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이 책은 아직 깨끗한 상태네요.
그 화제의 책을 발간했던 데이원 출판사에서 영광스럽게도 제 브런치북을 선정해 주셨습니다. 처음 출판사 이름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렇게 또 인연이 이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요. 다시 한번 제 작품을 좋게 봐주신 데이원 편집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