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났네요! 렘브란트 아저씨!
"또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마주했을 때, 마음속에서 나온 인사말이다. 이런 인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마드리드에서도 이 얼굴을 봤다. 유럽의 유명 미술관이라면 어디든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한 점쯤은 걸려 있다. 도대체 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는 왜 그렇게 자기 얼굴을 많이 그렸을까? 그리고 어떻게 유럽 곳곳에 그의 얼굴이 흩어지게 되었을까?
렘브란트는 평생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이는 동시대 화가 루벤스가 단 7점의 자화상만 남긴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숫자다. 22살 첫 자화상부터 죽기 몇 단 절인 63세의 마지막 자화상까지, 그는 40년간 끊임없이 거울 속 자신을 화폭에 담았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렘브란트의 이러한 작품 활동을 자화상을 자서전으로 승화시켰다고 평했다. 실제로 그의 자화상을 연대순으로 보면, 청년의 혈기, 중년의 자신감, 노년의 고독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많이 그린 데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미술 시장이 활발했지만 경쟁도 치열했다. 거울만 있으면 언제든 그릴 수 있는 자기 얼굴은 가장 저렴하고 믿을 만한 모델이었다.
더 흥미로운 건, 렘브란트가 자화상으로 자신을 '브랜드화' 했다는 점이다. 그는 르네상스 거장들의 포즈를 따라 하며 자신을 '르네상스 신사'로 묘사했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에서 그는 16세기 귀족 복장을 입고 당당한 포즈를 취한다. 이는 당시 '장인' 수준으로 여겨지던 화가의 지위를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그의 자화상은 일반 노동자 4개월치 임금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빈 미술사박물관에 있는 1652년 자화상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46세의 렘브란트는 이미 재정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시기였다. 화려한 복장 대신 소박한 옷차림, 그러나 차분하고 위엄 있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렘브란트가 1669년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자화상들은 여러 경로로 유통되었다. 특히 18-19세기 유럽 각국이 국립미술관을 설립하며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된다. 유럽과 미국의 주요 미술관마다 시대별 렘브란트의 얼굴이 하나씩 걸려 있는 이유다.
그 덕에 우리는 유럽 미술관을 여행하며 한 인간의 굴곡진 인생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빈에서 만난 그의 중년의 얼굴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젊은 렘브란트와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노년의 렘브란트를 잇는 하나의 여정이었다.
재미있게도 21세기 인공지능도 렘브란트를 선택했다. 2016년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에서 인공지능은 렘브란트의 그림을 학습해 새로운 초상화를 그려냈다.
인공지능과 렘브란트 이야기! 이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한 <AI, 인문학에 길을 묻다>의 한 꼭지에 수록되어 있으며,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이 꼭지는 실제 책에서는 안타깝게 빠지고 만다. 미술 꼭지가 한 챕터를 이루기에는 분량이 적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신 무료로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으니 :)
이혜성 아나운서님께서 저의 책인 <AI, 인문학에 길을 묻다>를 소개해주셨네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AI, 인문학에 길을 묻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