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숨은 전쟁 이야기: 포로들의 희망과 사랑

Changi Chapel & Museum을 다녀와서

by 최재운

AI 관련 학회 중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AAAI 2026이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있다. 수많은 연구 포스터의 지옥에 빠져있다가 잠시 쉬던 중. 학회 장소인 싱가포르 엑스포 근처에 'Changi Chapel & Museum'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다녀왔다.


싱가포르 동부 창이(Changi) 지역은 창이공항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붙잡은 영연방 병사들의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종전 후 이 지역에는 당시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던 이들을 기리는 작은 박물관과 예배당이 있다.


싱가포르를 여행 오는 한국인들 중 과연 이곳을 찾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싱가포르에서 대게 3~5박 정도를 하게 될 텐데, 센토사섬, 마리나베이, 멀라이언, 나이트사파리 등을 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나 역시 학회가 근처에서 열리지 않았다면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박물관 직원이 나를 보자 한 말,


"Are you Japanese?"

(박물관의 특성상 방문객 다수는 영연방 출신이고, 일부 일본인들도 온다고 함)

(중국인이냐는 질문은 많이 받았지만, 일본인이냐는 질문은 처음)


크지 않고 아담한 박물관 / 내부에는 포로 생활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음




태평양전쟁 초반에 벌어진 싱가포르 전투는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현지에서는 매우 의미 깊은 사건이다. 1942년 2월, 일본군은 영국의 동남아시아 요충지였던 싱가포르를 불과 일주일 만에 함락시켰다. 영국 군사 사상 최대 규모의 항복으로 기록된 이 전투에서 약 8만 명의 영국 및 연합군 장병이 포로로 잡혔다. 총사령관이었던 육군 중장 아서 퍼시벌 장군 역시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영국이 받은 충격도 커서, 대영제국의 군대가 아시아의 국가에 항복했다는 사실에 전 국민이 충격을 받고 만다. 반면 일본판 전격전을 성공시킨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은 이 공격으로 '말레이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역사에서 야마시타와 퍼시벌 같은 인물들만 주목한다. 하지만 내가 찾은 장소는 그 이후의 이야기, 즉 포로가 된 사람들의 경험에 집중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작은 예배당(chapel)이 딸려 있다. 거기서 나는 전쟁 포로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뎌냈는지 마주하게 되었다. 포로들은 열악한 환경과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포로들이 스스로 예배당을 만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박물관 안뜰에 재현된 포로들의 작은 예배당


박물관 뜰에 서 있는 조그만 예배당은, 실제 포로들이 밀림에서 구한 재료로 직접 세운 간이 교회를 본떠 복원한 것이다. 포로들과 억류민들은 야자나무 잎과 나무판으로 십자가와 지붕을 세우고 예배를 올렸다. 예배당 한쪽에는 창이 십자가(Changi Cross)라 불리는 작은 십자가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이 십자가는 포로들이 구한 폐탄피와 놋쇠 조각들로 직접 만든 것이다.


이렇게 구색을 갖추고 포로들은 예배를 올렸다. 신앙의 힘으로 서로를 위로하고자 한 것이다. 이 간소한 교회와 예배가 절망 속에서 그들에게 안식을 주지 않았을까? 전시된 자료에 따르면, 어느 영국군 포로는 "화려했던 시절 잃어버렸던 신앙을 포로 생활 중에 되찾았다"라고 고백했다.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예배당을 세우고 십자가를 만들어 올리던 장병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종교의 힘도 있었겠지만, 무언가를 함께 믿는 마음이 그들을 버티게 한 게 아닐까 싶다.





박물관 내부 전시 중 가장 나를 오래 붙들어 둔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유리 진열장 너머로 작은 엽서가 한 장 있는데, 잔뜩 바랜 종이 위에 적힌 글이 눈길을 끌었다. 포로로 잡힌 한 호주 군인에게 아직 신혼이었던 아내가 보낸 편지였다. 겨우 몇 줄 남짓한 짧은 내용이었지만, 한동안 그 자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IMG_1516.jpeg 전쟁 포로에게 배달된 아내의 엽서


아내는 생일을 또다시 혼자 보내야 함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다. 그리워하면서도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마지막 입맞춤까지. 더 전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당시 일본군의 검열 하에서 포로와 가족이 주고받는 편지는 내용과 글자 수가 철저히 제한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포로들의 편지는 불과 25단어 내외로 쓰도록 강요되었고, 고국의 가족이 쓴 편지는 몇 년에 겨우 한두 통 도착할까 말까 했던 시절이다. 그러니 이 엽서 한 장이 두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숨줄이었을지. 한정된 지면에 적어 내려간 아내의 간절함은, 검열관의 눈을 피해 슬쩍 삽입한 애칭 하나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창이 박물관을 나서며 나는 그 젊은 아내가 남편에게 쓴 편지를 다시 떠올렸다. 불확실한 내일 속에서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짧은 메시지가 건너갔을 때, 포로였던 남편은 그걸 손에 쥐고 얼마나 기뻐했을까. 편지를 펼쳐든 그의 눈앞에 아내의 얼굴이 아른거리지 않았을까. 25단어의 연서(戀書)가 둘 사이에 희망의 다리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문득 지금 우리의 세상이 겹쳐 보였다. 2020년대인 지금은 스마트폰 문자, 이메일, 영상통화까지 소통 수단이 넘쳐난다. 최신 AI 기술로 몇 초 만에 장문의 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넘치는 말들 속에서 정작 꼭 전하고픈 진심은 오히려 희석되기 쉽다.


80여 년 전, 전하지 못할 말을 가슴에 묻고 오로지 몇 줄의 손편지에 전부를 실어야 했던 사람들. 그 절실함에 비하면, 우리는 어쩌면 너무 쉽게 사랑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I 시대의 편리한 소통도 인간의 진심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건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언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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