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가 폭격 대상이 된 날

국경을 걸어서 넘은 CEO

by 최재운

2022년 6월 1일 이른 아침,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경선을 도보로 넘는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의 대장은 팔란티어(Palantir)의 CEO 알렉스 카프(Alex Karp). 동행은 단 다섯 명이었다. 우크라이나 쪽 경계에는 낡아빠진 토요타 랜드크루저 두 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장 경비의 호위를 받으며 그들은 폭격으로 주저앉은 다리와 불탄 트럭 잔해 사이를 달려 통금 직전 키이우에 도착했다.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지 석 달, 서방의 정상들조차 키이우 방문을 꺼리던 시기였다.


다음 날 카프는 대통령 관저의 요새화된 벙커로 안내되었다. 그는 서방 대기업 CEO 가운데 최초로 젤렌스키와 마주 앉은 사람이 되었다. 물병을 사이에 둔 대화에서 카프가 건넨 제안은 간결했다. "키이우에 사무실을 열겠다. 그리고 우리의 데이터·AI 소프트웨어를 우크라이나 방어에 투입하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는 현대전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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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라. 전쟁 한복판의 수도에 민간 기업 CEO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이 전쟁의 진짜 무기가 총도, 탱크도, 미사일도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무기는 데이터였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다루는 자들이 이제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풍경이 처음은 아니다. 역사의 결정적 전장은 언제나 '정보 인프라'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1914년 8월 4일 밤 11시,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그 몇 시간 뒤, 영국 해군의 케이블선 CS 얼러트(CS Alert)호는 도버 항을 조용히 빠져나와 영국해협 바닥으로 내려갔다. 임무는 단 하나, 독일 엠덴에서 출발해 영국해협을 지나 대서양으로 뻗어 나간 해저 전신 케이블 다섯 가닥을 모두 절단하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스페인의 비고(Vigo)로,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Tenerife)로, 포르투갈령 아조레스(Azores)로 향하던 독일의 신경망이 단 몇 시간 만에 끊어졌다.


독일은 중립국의 케이블을 빌려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외교 채널과 스웨덴 전선을 거쳐 전보를 보냈고, 그것을 영국 해군 정보부의 '40호실(Room 40)'이 고스란히 감청했다. 1917년 미국의 참전을 결정짓게 만든 그 유명한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 - 독일이 멕시코에 동맹을 제안한 그 문서 - 역시 이 중립국 우회 경로에서 붙잡힌 것이다. 케이블 다섯 줄을 끊었더니 전쟁의 향방이 바뀌었다. 허나 당시 누구도 "영국 해군이 민간 통신 자산을 파괴했다"고 문제 삼지 않았다. 왜? 그 케이블은 어차피 독일 제국이 깐 것이었기 때문이다.


image.jpeg 역사를 바꾼 치머만 전보


바로 이 지점에서 100여 년 전과 오늘의 풍경이 갈린다. 오늘의 '케이블'에 해당하는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는, 국가 소유가 아니라 민간 기업 소유다.


2026년 3월, 그 선은 마침내 넘어졌다. 미-이란 충돌 초기, 이란은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UAE의 AWS 데이터센터 두 곳과 바레인의 AWS 데이터센터 한 곳을 타격한 것이다. 물리적 파괴는 제한적이었다. 허나 은행 결제가 멈췄고, 의료 서비스가 마비되었으며,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렸다. 이어 이란 혁명수비대(IRGC) 연계 매체는 한 장의 표적 목록을 공개했다. 아마존 웹서비스 5곳, 마이크로소프트 5곳, IBM 6곳, 팔란티어 3곳, 구글 4곳, 엔비디아 3곳, 오라클 3곳. 도합 29개의 '합법적 표적.' 이란은 그것을 이스라엘 연관 시설이라 불렀지만, 사실은 모두 미국의 핵심 기술 기업이었다.


이 사건을 분석한 CSIS 에밀리 하딩(Emily Harding)의 문장이 정곡을 찌른다. "더 이상 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There are no front lines anymore)." 무엇을 뜻하는가. 전쟁의 물리적 경계가 디지털 인프라로 확장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인프라의 소유자가 민간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클라우드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지만, 데이터센터 건물 자체는 도망갈 수 없다. 기업에는 훌륭한 보안 팀이 있지만, 방공 미사일도, 800억 달러짜리 정보 예산도 없다.


image.jpeg 이란 공습으로 피해 입은 UAE의 AWS 데이터센터


우크라이나는 이 변화를 가장 먼저 몸으로 받아낸 나라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이버 방어를 상시 조율했고, 시스코는 키이우의 핵심 인프라 보안을 맡았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는 국방부뿐 아니라 경제부와 교육부까지 들어갔다. 클리어뷰 AI는 러시아 공작원을 얼굴로 식별했고,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파괴된 인터넷을 대체했다. 카프가 키이우 국경을 걸어서 넘은 그 순간부터, 이 구도는 이미 짜여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 국방부가 2026년 초 팔란티어의 Maven AI 체계를 '프로그램 오브 레코드(Program of Record)'로 공식 지정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이제 이것은 실험이 아니라 정규 전력이다'라는 선언이다. 드론·위성·센서의 데이터를 통합해 표적을 식별하고 지휘 결정을 보조하는 AI가, 미군의 공식 전력 구조에 편입되었다. 카프의 제안은 이렇게 시대를 앞서간 투자가 되었다.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해저 케이블을 직접 소유하지 못한 대가를 치렀다면, 21세기의 미국은 데이터 인프라를 민간에 의탁한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전투원(combatant)이란 누구인가. 국제인도법은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자'를 전투원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팔란티어의 엔지니어는 전투원인가?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서버를 제공하는 AWS의 관리자는? 러시아군의 얼굴을 식별해주는 클리어뷰 AI의 개발자는?


카프가 국경을 걸어서 넘던 그날, 이 질문은 아직 추상적인 것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민간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미사일의 표적이 되고, 개별 엔지니어의 코드 한 줄이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시대다. "더 이상 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모든 곳이 전선이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클라우드 대시보드를 들여다보는 평범한 개발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표적 목록에 이름이 올라갈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영국이 독일 해저 케이블을 끊을 때, 그것은 국가 간의 전쟁이었다. 이란이 AWS 데이터센터를 노릴 때, 그것은 국가와 기업 사이의 전쟁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혹시 그 전쟁이 기업과 기업 사이의 전쟁이 된다면 어떨까. 이미 우리는 데이터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경쟁이 결국 물리적 충돌로 번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카프는 국경을 걸어서 넘었다. 우리 시대의 전쟁은, 그렇게 서버실과 클라우드와 GPU 랙을 가로지르며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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