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완성한 전쟁, AI가 대답하지 못한 질문
본 글은 <인간 없는 전쟁>을 보고 연락주신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정리한 내용을 다시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제가 정리한 내용을 구글의 notebookLM을 통해 만든 것입니다.
지난 두 글에서 에픽 퓨리 작전의 기술적 기반과 AI 두뇌 클로드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 시스템이 실전에서 만들어낸 구체적인 숫자들, 그리고 그 숫자들 너머에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먼저, 숫자부터 보자.
군사 용어 중 '킬 체인(Kill Chain)'이라는 것이 있다. 표적을 탐지하고, 식별하고, 추적하고, 조준하고, 교전하고, 피해를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쉽게 말해 적을 찾아서 때리고 결과를 확인하는 전 과정을 뜻한다. 과거에는 이 킬 체인의 한 바퀴를 도는 데 수 시간에서 며칠이 걸렸다. 정찰기가 사진을 찍어오면 분석관이 눈으로 판독하고, 서면 보고서를 올리고, 지휘부가 승인하고, 그제야 좌표가 전투기에 전송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에픽 퓨리 작전에서 AI는 이 킬 체인의 시간을 단 몇 초로 압축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 사령관 브래드 쿠퍼 제독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항상 무엇을 쏠지 말지 최종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고급 AI 도구는 이전에는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이 걸리던 프로세스를 단 몇 초 만에 처리할 수 있게 변환했다." 시스템이 적의 미사일 발사대나 이동식 레이더를 식별하는 순간, 최적의 타격 자산을 자동으로 매칭하여 지휘관의 화면에 승인 버튼을 띄워주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군사학에서는 이를 '생각의 속도(Speed of thought)'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속도는 엄청난 전술적 폭발력을 낳았다. 작전 첫 24시간 동안 1,000개 이상의 표적이 정밀 타격되었다.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 초기 이후 유례가 없는 규모였다. 10일 차에는 5,500개의 표적이 파괴되었으며, 이란 해군 함정 50여 척, 잠수함, 미사일 생산 시설이 모조리 무력화되었다.
숫자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드론 이야기이다.
에픽 퓨리 작전에서 '스콜피온 스트라이크 기동부대(Task Force Scorpion Strike)'라는 부대가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 부대가 운용한 무기는 루카스(LUCAS, Low-cost Uncrewed Combat Attack System)라는 자폭 드론이다.
흥미로운 건 이 드론의 탄생 배경이다. 루카스는 이란이 만든 자폭 드론 샤헤드-136(Shahed-136)을 역설계하여 미국의 기술력으로 개량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란이 러시아에 공급하여 악명을 떨친 바로 그 드론을, 미국이 거꾸로 뜯어보고 더 좋게 만들어서 이란을 향해 되돌려 쏜 것이다. 전장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루카스의 스펙을 보면 이렇다. 무게 70파운드, 날개 길이 2.4미터의 델타익 형상. 최대 718~800km를 날 수 있고, 6시간 동안 체공이 가능하며, 18~20kg의 고폭탄을 탑재한다. 허나 가장 놀라운 것은 가격이다. 대당 약 35,000달러.한 대에 수백만에서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기존의 MQ-9 리퍼(Reaper) 드론과 비교하면 10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다. 가격이 싸니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다. 그래서 루카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적에게 돌진하여 자폭하는 일방향 공격 드론이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건 이 드론이 혼자 날지 않는다는 것이다.
루카스 드론들은 AI 기반의 메시 네트워크(MUSIC)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수십 대의 드론이 공중에서 실시간으로 통신하며, 벌떼처럼 군집(Swarm) 작전을 수행한다. 적의 전파 방해가 극심한 곳에서도 GPS 없이 관성 항법으로 날고, 드론끼리 통신을 릴레이하며 위협을 우회한다. 스스로 표적을 식별하여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감행한다. 해군 연안전투함 산타바바라함(USS Santa Barbara)과 지상 로켓 레일에서 쏟아져 나간 루카스 군집 드론은 미군의 인명 피해를 완벽히 배제한 채 적의 방공망을 찢어놓았다.
35,000달러짜리 벌떼가 수억 달러짜리 방공 시스템을 무력화한 것이다.
전쟁의 효율화는 전방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후방의 행정과 보급에서도 AI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은 총성만큼이나 서류에 의존하는 거대한 물류 산업이기도 하다.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 같은 복잡한 무기 체계는 막대한 부품 조달과 유지보수가 필수이다. 이전까지 이 과정은 수많은 하청업체 간의 이메일, 수동 스케줄 수정, 전화 통화를 통한 부품 추적 등 아날로그적 작업에 파묻혀 지연되기 일쑤였다.
미국 해군과 팔란티어는 4억 4,8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ShipOS'라는 AI 기반 선박 건조 운영 체제를 도입했다. 부품 공급망, 조달 일정, 정비 인력 배치를 단일 플랫폼에서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시스템이다. 해군 관계자는 이를 "현장 작업자에게 소프트웨어 아이언맨 수트를 입혀준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임무 보고서 역시 AI가 접수했다. 과거에는 작전이 끝난 후 조종사나 병사가 비행 기록, 교전 상황, 표적 변화 등을 직접 작성해야 했다. 에픽 퓨리 작전에서는 전투기, 드론, 센서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부대가 기지로 복귀하기도 전에 구조화된 보고서를 자동으로 완성해 두었다. 실제로 AI 도입 이후 분석관의 표적 검토 속도는 시간당 30개에서 80개 이상으로 뛰었고, 일부 부서에서는 수동 검토 시간이 최대 93%까지 줄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작전 첫 100시간 동안 소요된 비용은 약 37억 달러. 하루 평균 8억 9,140만 달러가 쓰였고, 이 중 31억 달러는 정밀 유도 탄약과 미사일 보충 비용이었다. 허나 그 천문학적 지출 속에서도 35,000달러짜리 루카스 드론의 대량 투입이나 타격 자산의 지능적 배분은 불필요한 고비용 무기 소모를 막았고, 결과적으로 재래식 전쟁 대비 효율적인 비용 곡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까지가 에픽 퓨리 작전이 보여준 AI의 전술적 성과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감탄이 나온다. 킬 체인은 수 시간에서 몇 초로, 인력은 2,000명에서 20명으로, 드론 가격은 수백만 달러에서 35,000달러로. 모든 지표가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하나의 오래된 구분법을 꺼내야 할 것 같다. 전술(Tactics)과 전략(Strategy)의 차이이다.
군사학에서 전술이란 '전투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의 문제이다. 어떤 무기를 쓰고, 어떤 기동을 하고, 어떤 타이밍에 공격하느냐. 반면 전략은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왜 싸우고, 어디서 멈추고, 전쟁 이후 세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이냐. 전술이 '칼을 어떻게 휘두르느냐'라면, 전략은 '왜 칼을 뽑았느냐'이다.
클라우제비츠(Clausewitz)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다." 전쟁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전투에서 완벽하게 이겨도, 그 전쟁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전술적 승리와 전략적 승리는 전혀 다른 것이다.
AI는 지금까지 전술의 영역에서 경이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킬 체인을 압축하고, 표적을 식별하고, 방책을 생성하고, 드론 벌떼를 지휘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AI는 이 질문에 인간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답해냈다.
허나 '왜 싸우는가', '어디서 멈출 것인가', '전쟁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AI는 침묵한다. 아니, 이 질문은 애초에 AI에게 묻지도 않았다.
전술적 차원에서 에픽 퓨리 작전은 압도적이었다. 5,500개 이상의 표적 파괴, 해군 함정 50여 척 격침, 미사일 생산 능력 제로로 감소. 허나 전략적 차원에서는 어떠했을까?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전 세계 원유 수송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이 좁은 수로가 막히자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전쟁은 걸프 국가들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동맹국들, 우리를 비롯한 호주,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일본, 영국 등은 함정 파견을 거부했다. 미국안보프로젝트(American Security Project)는 이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란은 국력의 모든 도구를 활용하고 있는데, 미국은 오직 하나의 도구, 군사력만 사용하고 있다고.
국방안보모니터(Defense Security Monitor)는 이 작전의 현실을 "전술적 성공과 전략적 모호성(Tactical Success and Strategic Ambiguity)"이라는 제목으로 요약했다. 폭격은 완벽했지만,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AI는 전술을 완성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인간이 도달한 적 없는 수준의 답을 내놓았다. 허나 '왜 싸우는가'라는 질문, 즉 전략의 영역에서 미국은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동맹국들은 등을 돌리고, 에너지 시장은 요동치고, 전쟁의 출구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AI 전쟁의 역설일지도 모른다. 전술적 능력이 너무나 압도적이기에,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해야 한다'는 판단을 대체해버리는 것. 칼이 너무 잘 들어서, 칼을 뽑을 이유를 진지하게 따지지 않게 되는 것. 35,000달러짜리 드론이 수억 달러짜리 방공망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드론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사치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