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서도 인공지능에서도 한계설정은 중요하다
오늘부터 일주일 간 어린이집 방학이다. 부득이한 경우 등원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우리 집은 일주일 동안 31개월 아이와 사투가 벌어질 예정이다. 벌써 낮잠을 두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자기 전에 동요를 부르는 사소한 문제 외에는 낮잠을 잘 자곤 한다는데 집에서는 그렇게 낮잠을 안 자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분명히 졸린 것이 분명함에도 계속 거실에서 놀겠다고, 자기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아빠 혼자 코 자라고 반항을 하는 우리 아이. 얼마간의 실랑이가 이어지다 아기에게 단호하게 말을 하였다.
열 까지 세고 코 자는 거예요
다섯이 넘어갈 때까지는 아빠 눈치를 보며 웃으며 블록을 가지고 놀다가, 여섯이 되는 순간 혼자서 일곱, 여덟, 아홉, 열을 빠르게 외치고는 본인 잠자리에 가서 눕는 아이. 잠시 거실을 오며 가며 더 놀 수 없나 분위기를 살피다가 제풀에 못 이겨 잠에 들고 만다.
본격적으로 미운 4살에 접어든 31개월의 우리 아들은 최근 하지 말라는 것을 더 하려고 하고, 엄마/아빠의 말에 일단 부정부터 하고 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훈육이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레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미운 4살에 대응하기 위해 찾은 효과가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열 까지만 세고 지금 하는 행동을 그만두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하지 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던 우리 미운 아들은 신기하게도 엄마가 열 까지만 세고 그만하자고 하면 열이 되는 순간 순순히 그만둔다. 이것이 바로 오은영 박사가 얘기한 한계설정 육아?
'한계설정 육아'란 아이에게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서부터 불가능한지 '한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아이를 지도하고 훈육하는 전통적인 육아 방식이다. 아직 아이들의 뇌는 성장 중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설정한 한계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인 사람으로 양육이 가능한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지만 육아 전문가로 유명한 오은영 박사 역시 본인의 방송 채널을 통해 수차례 한계 설정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제 31개월에 접어든 우리 아들 역시 떼를 쓰는 것이 상당히 늘었다. 공공장소에서 울고 소리 지르고, 밥은 안 먹고 젤리만 먹으려고 하고, 낮잠은 안 자고 계속 블록 놀이만 하겠다고 떼쓰는 행동 등을 교정하기 위해 우리는 단호하게 한계 설정을 통해 육아를 하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오늘 아들을 재우기 위해 했던 "열 까지만 세고 그만하자"이다. 숫자 열이라는 한계를 정해놓고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하자고 설득을 하고, 아이가 이를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행동에만 몰입해 꼭 필요한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막고자 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학습 역시 인간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인공지능도 한계를 설정해 놓고 학습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고전적인 인공지능인 머신러닝에서는 한계인 임계값(threshold)을 활용하여 학습을 진행한다.
인공지능이 스팸 메일을 분류하려고 할 때, 인공지능은 각 메일이 스팸일 확률을 계산한다. 이 확률이 특정 한계보다 높은 메일은 '스팸'으로 분류하게 된다. 여기서 스팸을 탐지하는 성능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한계가 되는 지점을 어디로 설정하느냐이다. 스팸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너무 타이트하게 설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광고'라는 단어가 하나라도 있으면 무조건 스팸으로 분류하게 될 경우, 스팸을 많이 걸러낼 수 있지만 반대로 정상 메일도 스팸으로 오분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스팸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너무 느슨하게 하면 스팸 메일이 걸러지지 않고 우리의 메일함으로 오게 된다.
아래 그림은 인공지능의 한계를 설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네모를 잘 구분해 내기 위해 'B'와 같이 한계를 설정하면 동그라미로 분류한 그룹에 네모가 섞이게 된다. 반대로 'C'처럼 한계를 설정하면 네모로 구분한 그룹에 동그라미가 섞이게 된다. 균형을 맞춰 'A'처럼 한계를 설정하게 되면 적당히 좋은 결과가 도출이 된다. 이렇듯 한계를 어디까지 정하느냐에 따라 인공지능 성능은 극단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성능을 좌우하는 한계치, 임계값(threshold)은 실제 인공지능 모델을 설계하는데 많이 활용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스팸 메일을 탐지하는 분류 시스템에서 분류의 기준이 바로 임계값이다. 또한 우리가 자주 쓰는 검색엔진에서는 검색 결과의 관련성 점수를 기준으로 임계값을 설정할 수 있다. 관련성 점수가 임계값 이상인 결과만 우리에게 보이게 된다.
이렇듯 한계설정은 인공지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임계값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너무 높거나 낮은 임계값은 모델의 성능 저하로 이어지기에, 적절한 임계값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계를 설정해 주는 많은 기법들이 있지만 결국 경험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최적의 한계를 찾아가게 된다.
'한계설정'이라는 것은 아이의 학습, 인공지능의 학습 모두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인공지능에 있어 한계 설정이 어려운 것은 한계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 정하는 것 그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계를 너무 낮게 잡아도, 반대로 너무 높게 잡아도 학습 성능이 떨어질 수 있기에 균형을 잡아가며 한계를 설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 적은 노력으로 학습을 끝내게 되면 그 인공지능은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끝나고 만다. 반대로 학습을 시켜주는 사람이 많은 노력을 통해 최선의 한계를 찾았다면 그 인공지능의 성능은 최대치로 뽑아낼 수 있다.
아이의 한계 설정은 인공지능의 그것보다 어렵다. 아이의 한계 설정 역시 인공지능처럼 그 한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인지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한계치 설정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우리가 아이의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면 아이의 한계는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이다음부터이다. 인공지능은 한계치를 명확하게 설정해 주면 일관된 규칙하에 그 한계치를 따르게 된다. 한계치를 넘어서는 행동을 인공지능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시키는 것을 그대로 하는 인공지능과 달리 아이는 부모의 한계 설정에 반항을 한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멈추는 것은 어른인 부모에게도 쉽지 않은데 애들은 어떻겠는가. 아이의 거부감, 어려움을 인정하고 공감을 해주면서 한계를 설정해줘야 하기에 아이의 양육은 인공지능보다 어려운 것이다.
한계설정과 관련된 부모의 양육 역시 인공지능을 훈련시키는 것보다 어렵다. 적절한 한계를 찾은 부모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떤 행동이 기대되는지 설명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한번 설정된 규칙이나 한계를 일관되게 적용해야 하는데, 부모는 아이들이 떼쓰고 우는 것에 넘어가 훈육을 그치는 경우가 있다. 공공장소여서, 너무 피곤해서 등 이유는 많겠지만 부모의 일관적이지 않는 한계 설정은 아이의 신뢰감을 떨어뜨리게 되고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을 자꾸 하게 만들게 된다.
이렇듯 한계설정은 인공지능에게도 아이에게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한계만 정해지면 그것을 따르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부모도 아이도 한계설정 육아를 밀고 나가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한계설정이 필수이다. 그래야지만이 아이가 사회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배우고, 통제력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떼를 쓰는 아이와 사투하며 사회인으로 키우고 있을 많은 부모님과 선생들의 노력으로 우리 사회가 더 밝고 균형이 갖춰지고 있다.
어린이집 방학을 맞은 부모님들 모두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