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역사로 살펴본 AI의 수상 가능성
지난 금요일. 매일 아침 받아보는 매일경제 1면에 재밌는 기사가 하나 보인다. 바로 인공지능이 노벨상 접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
바로 그 주인공은 우리에게 알파고(AlphaGo)로 유명한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만든 인공지능인 '알파폴드(AlphaFold)'가 바로 그 주인공. 예전에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발간한 글에서도 잠시 딥마인드의 알파폴드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 글링크 : 딥마인드, 더 빠른 정렬 알고리즘 발견! )
우리에게는 딥마인드가 만든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생리의학 분야에서는 딥마인드의 알파폴드가 충격이었나 보다. 딥러닝을 통해 단백질 구조를 분석을 시작한 알파폴드는 3년 만에 2억 개의 단백질 구조를 확인했고, 365,000여 종의 단백질 3D 구조 예측에 성공했다.
이 성과로 2023년 9월 21일 예비 노벨상이라 불리는 미국의 래스커상(Lasker Award) 수상을 하게 된 것이다. 래스커상은 미국판 노벨생리의학상으로 꼽히는 상으로, 지난 20년간 수상자 32명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아 '예비 노벨상'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이다.
미국 래스커상 재단은 알파폴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수상 배경을 밝혔다.
"단백질의 3D 형태를 예측하는 혁명적 기술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했다."
2021년 7월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노벨상 관련 미래에 벌어질 일을 추측하는 기사를 하나 작성하였다. '율리야(Yulya)'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솔루션이 노벨 의학상 수상이 유력해진 미래를 상상한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예상한 율리야는 림프종 진단 시스템에서 시작하여 18개월 간 4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하고, 종국에는 자체적으로 최신 논문을 연구하며 새로운 치료 방법론을 스스로 개발하는데 이른다. 그 결과,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이른다. 하지만 과거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수십 명이 시위를 통해 율리야의 수상 가능성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현한다는 내용의 미래 전망 기사.
위와 같이 이코노미스트는 훗날 인공지능이 노벨상 수상 후보로 오를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 있다. 이러한 예상은 인공지능 솔루션인 알파폴드가 예비 노벨상을 수상한 현 상황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히 예측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단, 이코노미스트가 예상한 인공지능의 노벨상 수상 가능 연도는 아래 사진과 같이 2036년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훗날 인공지능이 노벨상 유력 후보에 오를 것은 예상했지만 시기는 정확히 예상 못했다. 이들의 예상보다 13년이나 빨리 인공지능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딥마인드의 알파폴드가 노벨상을 받는 일이 현실화될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현재의 노벨상 규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노벨상은 원칙적으로 개인이나, 경우에 따라 조직에게 수여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살아있는 사람만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노벨상을 받지 못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이다. 그는 생전에 다섯 차례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1948년에는 수상이 유력하였다. 하지만 후보 선정 이틀 전 암살당하는 바람에 간디는 노벨 평화상 수상에 실패하고 만다. 사후에 상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노벨상을 선정하는 노벨 위원회는 그해 노벨 평화상을 공석으로 결론 내렸다.
생존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노벨상을 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 케이스도 있었다.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미국의 랠프 스타인먼(Ralph M. Steinman)이 선정되었다. 하지만 수상자 발표 3일 전 랠프 스타인먼 교수가 사망한 것. 스타인먼 교수는 '수지상세포'라고 명명된 면역 세포를 발견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항암과 항염증 관련 신약이 다수 개발되었다. 이 공로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지만 당사자는 이미 사망한 상황. 노벨위원회는 긴급위원회를 개최하고 노벨상을 수여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 이유는 스타인먼 교수 사망 사실을 발표 후에 알았기 때문. 그런데 사실 스타인먼 교수가 노벨상을 사후에라도 수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개발한 치료법 때문이기도 하였다. 췌장암으로 4년 간 투병을 하며, 자신을 대상으로 직접 개발한 신약을 계속 시험해 본 것. 이러한 그의 임상 실험 덕분에 신약의 효과를 입증할 수 있었고, 그는 여명이 고작 수개월인 말기 췌장암에서 4년이나 생존할 수 있었다.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직접 약효를 입증해 본 그의 노력은 사후 노벨상 수상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이처럼 노벨상은 세계적 권위만큼이나 수상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노벨상 중 하나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아인슈타인라는 물리학자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중 하나이며, 가장 유명한 물리학 법칙이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위대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인슈타인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에 대해 놀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으로 수상을 한 것이 아닌 '광전효과'의 이론을 정립하고 실험으로 입증했다는 공로로 수상하였다. 광전효과 역시 물리학의 역사를 뒤바꾼 역사적 발견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빛이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모두가 이해하는 위대한 첫걸음이었다. 이 이론은 후에 양자역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 (또 하나 소름 끼치는 점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역시 1905년에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남들은 평생 하나도 발표 못하는 역사적인 연구를 아인슈타인은 1905년에만 두 개를 발표한다.)
광전효과를 만약 다른 물리학자가 입증했다고 하더라도 그 학자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발견이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여받지 못했다는 점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이 아닌 광전효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당시에는 상대성이론이 실험적으로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노벨위원회는 이론이 실험으로 입증되었을 때 이를 수상 근거로 인정해 주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고, 1919년 영국의 에딩턴(A. S. Eddington)이 상대성이론을 검증하는 실험을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물리학적 지식을 모두 빼고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개기일식 현장에서 중력 렌즈 효과가 발견이 되며, 1919년 11월 런던 왕립 학회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검증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아인슈타인이 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순간이다. (훗날 에딩턴의 실험 결과는 신뢰성에서 많은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전 세계가 상대성이론 공인에 열광하고 있어 묻히게 된다. 중력렌즈효과는 1979년 다시 관측이 되며 상대성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가 된다.)
이렇듯 노벨위원회가 요구하는 실험적 검증까지 완료되었음에도 1921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아닌 광전효과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된다. 이는 여전히 상대성이론의 실험적 검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노벨위원회의 일부 회원들이 뉴턴 역학에 반하는 상대성이론에 비판적이었거나 심지어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판 의견도 존재한다. (지금도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참고로 상대성이론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실험 근거는 2015년 발견되어, 2016년 연구결과가 발표된 중력파 검출이다. 2016년 2월 11일 미국의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 연구진은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중력파는 중력이 만들어내는 파동으로, 두 개의 블랙홀의 충돌로 발생한 시공간 왜곡을 발견하며 중력파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21세기 물리학 최고 성과로 꼽히며 상대성이론을 강력히 지지해 주는 새로운 근거로 자리 잡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물리학자 3명은 2017년 바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고, 그중 한 명이 영화 <인터스텔라> 자문으로 유명한 킵 손 교수이다.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중력파 검출이 아인슈타인 일반 상대성 이론 발표 후 정확히 100년 뒤였다.
다시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로 돌아오자.
알파폴드가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이 노벨상을 받는 상상은 꽤나 흥미롭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직접 노벨상을 받는 것은 무리이지만, 인공지능이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적 진보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면 여론이 조금 바뀌지 않을까?
그렇다면 수상의 당사자는 누가 될까? 인공지능이 직접 수상을 할까? 아니면 인공지능을 개발하거나 이를 이용한 연구자들이 수상을 하게 될까?
서두에 언급한 미국 래스커상 수상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 힌트가 나올듯하다. 래스커상은 올해 수상자로 알파 폴드가 아닌 알파 폴드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허사비스와 존 점퍼 연구원을 선정하였다. 아직은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 상을 받는 시대이다.
사진출처
https://www.mk.co.kr/news/it/10836195
https://www.yna.co.kr/view/AKR20160212005500091
https://www.economist.com/what-if/2021/07/03/what-if-an-ai-wins-the-nobel-prize-for-medic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