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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Oct 11. 2023

AI가 복원한 렘브란트 '야경'

AI가 그린 그림은 작품으로 인정이 될까?

33개월 우리 아들은 박물관을 좋아한다. '손잡이 있고 주둥이 있는' 주전자도 실컷 볼 수 있고, 예수님과 부처님이 헷갈리긴 하지만 성스러운 어르신들께 인사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친가 가족들과 함께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추석 연휴 국박은 혼잡하고 주차 대기가 좀 있으니 참고) 오랜만에 보는 할아버지와 함께 목마도 타보며 박물관을 누빈 우리 아들은 자주 와 봤음에도 신기한지 이 작품, 저 작품을 호기심 있게 바라본다. 얼추 국박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지금은 종료되었지만 추석 연휴 기간에는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던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은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 다녀왔었는데 악동 때문에 더 자세히 못 본 게 아쉬움도 남고, 그럼에도 카라바조 그림을 아직 기억하며 '아저씨 아야 해. 뱀 물려서 아야 해'를 이야기하는 아이 생각도 웃음도 번졌다.


(좌) 할아버지 목마탄 악동 / (우)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 다녀왔었던 악동


지난 7월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 본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글감으로, 인공지능이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새롭게 창조한 이야기를 지난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다. 본 포스트에서는 렘브란트의 가장 대표작인 <야경(Night Watch)>를 인공지능이 복원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이전 글을 읽어보면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안 읽어도 무방합니다 :)





네덜란드의 자랑, 빛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는 17세기 활동한 대표적인 바로크 시대 화가이며, 유럽 미술사에서도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물. 혹자는 그를 사실상 최초의 인상파 화가로 꼽기도 하며, 특히 빛의 사용과 인물의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화가로 평가받는다. 렘브란트만의 인물 묘사 능력은 평생에 걸쳐 남긴 자화상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렘브란트의 대표작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프란스 배닝 코크 대위의 민간 경비대(The Company of Frans Banning Cocq Preparing to March)>이다. 이 이름이 생소하다면 별칭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야경(Night Watch)>이라는 별칭의 이 작품이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렘브란트의 '야경'. 붉은 원 남성에 주목하자.


'야경'이라는 작품은 훌륭한 작품성만큼이나 유명한 뒷이야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암스테르담 자경단 협회의 의뢰로 그려진 이 작품은 의뢰인과 화가의 입장이 달라 뒤탈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자경단의 단원들은 초상화와 같이 자신들이 위엄 있게 나오는 그림을 원했으나, 렘브란트는 빛을 기반으로 중심의 인물들은 부각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배경으로 묘사하는 구조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단원들이 렘브란트에 대한 혹평을 퍼뜨리게 되고, 여태까지 승승장구하던 렘브란트가 '야경' 작품으로 인해 몰락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허나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한다. '야경' 그림을 그린 후 렘브란트가 부진을 겪게 되고, 부인까지 사망을 하며 몰락하게 되는데 이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렘브란트의 그림은 당시의 화사한 그림이 대세이던 로코코 화풍과 맞지 않아 대중들의 외면을 조금씩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야경' 작품은 큰 굴욕을 겪게 되는데, 바로 그림의 일부가 잘린 상태로 전시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이 1715년 암스테르담 시청에 걸릴 당시 벽면의 크기보다 컸기에 왼쪽 60cm, 오른쪽 7cm, 윗부분 22cm, 아랫부분 12cm가 잘려나가고 만다.


'야경'의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물감의 특성으로 인해 색이 바래는 문제점도 있었고, 두 차례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1975년에는 한 남성이 칼로 그림을 찢었고, 1990년에는 또 다른 인물이 그림에 산을 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수난을 겪고 살아남은 '야경'은 인기가 더욱 높아졌고, 연구자들은 그림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이름하여 "야경 작전(Operation Nigth Watch)". 2019년 시작된 수백만 달러 규모의 이 프로그램은 1715년 잘려나간 조각을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재생성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누락된 조각이 당시에 폐기되었다는 것! 인공지능을 통해 그림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학습을 하기 위한 원본 데이터가 필요하다. 천운이 따랐던 것은 17세기 화가인 게릿 룬덴스(Gerrit Lundens)가 '야경'을 모사한 작품이 있었다. 아래에 있는 룬덴스의 모작을 보면 현재 '야경'의 좌측 끝에 있는 붉은 원에 있는 인물의 왼편으로 사람 두 명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명 자경단원은 '야경' 그림이 잘려나가며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잘린 그림을 복원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에 룬덴스가 그린 그림과 렘브란트의 원본 그림을 스캔한 이미지를 학습시켰다. 인공지능은 렘브란트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룬덴스의 사본을 기반으로 공백을 메꿔나갔다.


(좌) 룬덴스가 모사한 작품 / (우) '야경' 작품을 스캐닝하는 모습


특수 제작한 유리벽 안에서 복원 작업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으며, 드디어 2021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잘려 나간 부분 복원에 성공한다. 복원된 작품을 살펴보자. 기존의 '야경'에서 중심에 위치했던 '코크 대위'는 중심에서 조금 빗겨 난 곳에 위치하며 작품이 보다 동적으로 느껴진다. 오른쪽의 드러머의 우측 편이 복원되어 디테일을 더해주고, 왼쪽에는 새로운 인물 2명이 추가되었다. 이들 2명의 인물은 상세하게 보이지 않고 뒤에서 배경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이처럼 관객의 시선을 중앙으로 끌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흐리게 표현하였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관장인 타코 디빗(Taco Dibbits)은 이 복원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긴다.


"렘브란트가 더 잘 그렸겠지만, 복원작품 역시 렘브란트의 그것과 매우 가깝습니다."


2021년 전시된 렘브란트의 '야경' 복원 작품




렘브란트의 잃어버린 조각을 인공지능이 복원해 준 것처럼 인문학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열고 있다. 알파고와 알파폴드로 유명한 구글 알파벳(Alphabet)의 자회사 딥마인드(DeepMind)는 고대 그리스 비문의 누락 텍스트를 복원하는 인공지능 모델 이타카(Ithaca)를 공개했다.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설형 문자, 파피루스, 필사본 등 모든 고대 언에 적용 가능한 심층신경망 기반의 이타카의 복원 정확도는 72%에 달한다.


이타카가 복원한 기원전 485~4년의 아테네 법령 (출처: 딥마인드)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의 코르딥(CorDeep)은 역사 문서에 포함된 '삽화', '이니셜'. '장식', '인쇄소 마크' 등 정해진 시각적 요소를 찾아 추출하고 분류해 준다. 로잔연방공대와 카포스카리대학교, 베네치아주립기록보관소가 주관하는 프로젝트인 베니스 타임머신 프로젝트(Venice Time Machine Project)는 1,000년의 역사가 기록된 베네치아 국가 기록 보관소의 디지털 선집 분석에 들어갔다. 이 프로젝트는 딥러닝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정보를 추출하고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름들 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과거 베네치아인들 사이의 '소셜 네트워크'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수백 년 전 도시를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한다. 샌안토니오 텍사스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 에이브러햄 깁슨(Abraham Gibson)은 "역사적 사실 분석을 기계에게 맡기는 점은 위험요소"라고 말한다. 블랙박스 인공지능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한 신뢰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인공지능이 인문학을 연구하는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주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렘브란트로 돌아와서 2021년 공개된 인공지능이 적용된 작품은 지금도 볼 수 있을까? 아쉽지만 많은 논의가 진행된 끝에 복원 그림은 3개월 동안만 전시가 되고 지금은 볼 수 없다. 인공지능이 만든 부분은 원본일 수 없기에 관람객들이 원본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다시 네 면이 잘린 상태의 '야경'으로 원상복구를 시킨 것이다.


그럼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렘브란트의 '야경'은 수많은 미술복원가들이 달라붙어 복원 작업을 지속 진행해 왔다. 빛바랜 색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화학적 작업이 수반되었다. 후대에 복원가가 복원한 것은 오리지널 작품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인공지능이 복원한 것은 원본으로 인정 못 받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렘브란트 작품 복원에 활용된 인공지능 기술은 오리지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점차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는 인문학의 분야는 확대되고 있다. 이미 국문학과를 비롯한 다양한 인문 계열 학과에서 신임 교원을 채용할 때 '자연어 처리'와 같은 인공지능 전문가를 적극 찾고 있다. 우리는 1968년 이러한 사태를 예언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Emmanuel Le Roy Ladurie)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막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1840년대의 영국 의회 투표 패턴을 조사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를 작금의 현실에 맞춰 "인문학자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다"로 치환해보는 것은 너무 과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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