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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Sep 20. 2023

AI 역사를 철학에 빗대어 보는 이유

헤겔의 변증법과 인공지능의 발전

"과거는 다가올 이야기의 서막이다"

"What is past is prologue"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나오는 대사이다. 등장인물인 안토니오가 세바스찬에게 부왕을 살해하도록 부추기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이건만 오늘날 많은 인용매체에서는 다르게 해석하는 듯하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여는 서막이라는 의미로 해석을 하여, 역사적 교훈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많이 인용을 한다.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문장이 이렇게 인용되는 걸 알았다면 어이없어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쓴 영어 문장 자체가 너무나 현학적인 것을.


인공지능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누군가는 미래를 혁신할 새로운 혁명으로, 누군가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두려운 존재로 인식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갈 미래를 조망해 보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개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템페스트 대사의 문구를 살짝 바꿔 해석해 보면, 인공지능이 만들어진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다가올 이야기의 서막을 들춰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인공지능의 역사를 살펴보기 전에 만나볼 또 한 명의 근대 인물이 있다. 바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다. 헤겔은 칸트 철학의 맥을 이어 독일 관념론 철학을 완성시켰다는 평을 받으며, 현대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불세출의 철학자이다. 헤겔이 만든 방대한 철학 담론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정반합의 변증법이다.


많은 수험생을 좌절시킨 바로 그 문제, 2022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비문학 지문 1번에 등장한 '정반합(定反合)'이 바로 헤겔의 변증법이 이뤄지는 과정이다. 정반합 개념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정(定, 테제, thesis) : 어떤 주어진 상황이나 개념의 초기 상태

2. 반(反, 안티테제, antithesis) : 정의 반대 상황이나 개념

3. 합(合, 진테제, synthesis) : 정과 반 사이의 대립을 해결하거나 통합


정반합의 세 단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한 단계의 합이 다음 단계의 정으로 작용하여 끊임없는 발전 과정을 만들어 낸다. 이는 헤겔의 역사 철학과 정신의 발전에 대한 그의 이론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실제로 헤겔의 체계 미학 이론은 예술이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정반합 진행 과정 (출처 하단 명기)


이후, 헤겔의 정반합은 많은 곳에서 활용을 한다. 역사의 발전 과정을, 철학의 발전 과정을 정반합으로 풀어보는 시도가 많았고, 심지어 아이돌 그룹인 '동방신기'의 3집 앨범 타이틀곡 제목이 '오-정반합'이기도 하였다. 최근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인 '뉴진스'의 경우 기획자인 민희진 대표는 케이팝의 정반합에 맞춰 뉴진스를 기획한 바 있다고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현하여 밝힌 바 있다.




AI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많이 돌아왔다. AI, 인공지능의 역사 역시 정반합의 과정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두 세력이 격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짓밟고 일어서며 발전을 거듭해 나간다. 정반합의 과정을 계속해서 거치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인공지능 개념이 처음 나온 1940년대 이후 두 세력 중 어디가 더 우세했는지를 시간 흐름에 맞춰 그래프로 표현한 것이다.


인공지능 학계의 대표적인 두 세력의 타임라인 (출처 하단 명기)


처음 인공지능 학계를 주도해 나간 것은 연결주의자(Connectionist)이다. 사실 초창기 인공지능은 막 태동하던 시점이라 어느 학파가 주류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다만 최초로 신경망 개념이 1950년대 제안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이 부상한 시점에 대세로 자리 잡은 학파는 기호주의자(Symbolist)이다. 한 번씩 이름은 들어봤을 마빈 민스키(Marvi Minsky), 존 매카시(John McCarthy)가 대표적인 학자들로, 이들은 기호나 상징을 조작하고 변환하여 지능을 구현하고자 했다. 명시적인 규칙이나 알고리즘을 가지고 추론을 시도한 것이다. 이들의 추론 방식은 '연역법'에 가깝다. 또한, 기호주의자들의 일부 저명한 학자들은 자신들의 추론 방식이 집대성되면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연역법'과 '절대 진리'를 추종하는 기호주의자. 마치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합리주의와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이성을 통해 지식을 얻고, 이성적인 추론과 내적인 통찰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적 접근법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기호주의 학파 연구자들이 인공지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합리주의 철학자들이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1969년 기호주의자의 대표주자이자 튜링상을 수상한 위대한 학자인 마빈 민스키는 자신의 후배인 프랭크 로젠블랫(Frank Rosenblatt)의 이론을 강하게 비판하며 나선다. 비판을 받은 로젠블랫이 바로 퍼셉트론을 개발한,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 로젠블렛이다. 선배인 민스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치열한 이론 싸움을 벌이는 로젠블렛이 속한 학파가 바로 연결주의이다.


연결주의 이론은 기호주의의 대표 방식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다. 오늘날 대세가 된 기계 학습과 신경망과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연결주의는 신경망을 통해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여 규칙을 추출하게 된다. 이들의 추론 방식은 '귀납법'에 가까우며, 철저히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귀납법'과 '경험'을 추종하는 연결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경험론자와 비슷해 보인다. 철저히 관찰과 경험에 기반하여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으로 나아가는 현재의 인공지능 방법론은 경험론자의 철학적 탐구과정과 상당히 유사점이 많다.


심지어 경험론의 시작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다. 연결주의의 시조 로젠블랫이 기호주의의 시조 민스키의 후배라는 점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오늘날 인공지능 학계는 정반합의 구조에서 조금 벗어나있다. 80~90년대 기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전문가시스템'이 대세였다가 몰락한 이후, 현재까지 연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머신러닝, 딥러닝이 인공지능 세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경망으로 대표되는 연결주의자들이 확실히 상징주의자들을 짓밟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래 그림은 대표적인 인공지능 학자 100인들의 관계도를 네트워크로 표현한 것이다. 얼핏 봤을 때는 양 진영의 학자들 수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상징주의자에 있는 인물들은 비교적 과거 인물인 반면에, 연결주의자에 있는 인물은 지금의 인공지능 학계의 슈퍼스타들이 즐비하다. 그만큼 지금은 연결주의의 대표작인 딥러닝이 대세라는 것이다.



주요 인공지능 석학 100인의 관계도 (출처 하단 명기)


하지만 여전히 둘을 융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정'인 연결주의가 '반'인 기호주의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이들의 시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조망해 볼 수 있다.


현대의 인공지능 발전상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대립하던 시기와 유사하다. 그렇단 말은 과거를 비추어보았을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불리는 칸트는 아직 등장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망치를 든 니체가 모든 걸 다 깨부수는 일이 인공지능 발전에서 일어나지는 않을까? 인간성이 사라진 최악의 시기인 세계대전을 거치고 나타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사조가 인공지능 개발에도 나타날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


철학의 변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인공지능의 개발 역사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철학에 빗대어 인공지능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반대로 인공지능의 미래 역시 철학의 역사에 빗대어 예측해봐야 한다. 인류가 겪었던 최악의 경험을 다시 한번 되풀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왜 인공지능의 발전 과정을 철학의 역사에 빗대어 이야기해야 하는 지를 설명해 보았다. 다음에는 인공지능의 역사를 철학적 사건과 인물에 하나하나 빗대어가며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출처)

정반합 : https://m.blog.naver.com/missa00/222670775528 

타임라인 및 관계도 : https://mazieres.gitlab.io/neurons-spike-back/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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