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지
2020년 한가위는 어느 해보다 특별했다. COVID-19로 고향 가는 길이 극히 제한되던, 팬데믹 후 첫 명절. 극한의 우울에 빠진 국민들을 위해 KBS는 15년 만에 그를 공중파로 소환하였다. 바로 가황 나훈아이다.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나훈아는 여전히 건재한 실력을 뽐내며, 고향을 찾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한 줄기 위로의 빛이 된다. 무대에서 그는 공전의 히트곡들을 다수 불렀지만 다음 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것은 단 한 마디의 가사였다.
나훈아가 부른 <테스형!>의 하이라이트 가사 부분이다.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이기도 하다. 노래를 통해 나훈아는 소크라테스에게 물어본다. 초면이고 나이 차이가 2000살이 넘게 나는데도 테스 형이라고 부르며 호기 있게 하는 질문. 조금은 잔망스럽게 질문을 던지지만 내용만큼은 진지하다. 소크라테스가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가며 진리를 찾아갔던 것처럼. 나훈아 역시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먼저 가본 세상에 있는 소크라테스는 어쩌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훈아를 보며 '너도 진리를 찾는 거니?'라는 질문을 했을지 모르겠다.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 한 명인 소크라테스는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대화로 이끌어간다. 스스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방 역할을 하며 다른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훗날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마치 산파가 산모의 출산을 도와준다는 것에 빗대어 '산파술'이라고 명명하였으며, 태어날 때 망각의 강을 건너며 잊어버린 것을 다시 상기하게 해 줬다는 의미에서 '상기법'이라고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끊임없이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는 장면. 무엇이 연상되지 않는가?
바로 챗GPT가 우리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다.
챗GPT의 등장은 센세이션 했다. 대화를 통해 우리가 물어보는 것은 척척 대답해 주는 챗GPT. 우리가 가지는 궁금증을 전문가처럼 해결해 주며 사람과 같이 대화하는 챗GPT를 보며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여전히 그 여파는 여진처럼 남아있다.
대화의 질문을 통해 진리를 이끌어내는 소크라테스.
대화의 답변을 통해 진리로 나아가는 챗GPT.
소크라테스가 살아있었다면 챗GPT와 질리지 않고 대화해보지 않았을까? 소크라테스 생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질문을 했기에 아테네 사람들이 피해 다녔다고 한다. 우리의 챗GPT는 지루함을 못 느끼고 감정도 없기에 소크라테스의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을 해줬을 것이다. 영혼의 세계를 믿은 소크라테스라면 나훈아가 얘기하는 저세상에서 챗GPT와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테스형!>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부분의 가사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소크라테스는 한 적이 없다. (또 다른 유명한 말인 '악법도 법이다' 역시 소크라테스는 한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책으로 남기지 않았다.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석가모니가 그랬던 것처럼,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제자가 대신 전달한다. 바로 그 유명한 플라톤이다.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주변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대화편>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핵심 철학 중 하나는 '무지(無知)의 지(知)'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나는 아는 것이 없다'에서 시작하라는 것이다. 무지를 깨닫고 진정한 지식 탐구를 시작하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소피스트와의 논쟁이 담겨있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자주 묘사된다. 고대 그리스에는 화술과 논쟁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돈을 받는 유랑하는 강사, 소피스트가 많았다.
진리와 도덕을 추구하고 지식과 도덕성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한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적 접근법과 그들이 가르치는 논쟁 기술을 비판하였다. 진리를 찾기 위한 진지한 대화와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돈을 받고 가르치는 방식을 반대한다. (현대에는 소피스트에 대한 재해석의 움직임도 있다. 고르기아스나 프로타고라스 같이 소피스트 중 훌륭한 철학자도 많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비판하는 철학자는 단순히 말장난을 가르치고 모르는 걸 아는 채 하는 소피스트로 한정 짓자.)
앞서 소크라테스와 챗GPT가 대화를 나누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 바 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비판적이었던 아무것도 모르면서 많이 알고 있는 척을 하는 소피스트를 보면 누군가 떠오르지 않는가? (왜 내가 찔리는 거지) 바로 챗GPT이다. 챗GPT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있지 않은 사실을 마치 있는 것처럼 지어내서 대답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바로 환각현상이다. 최근 인공지능에서 나타나는 환각현상, 특히 챗GPT의 할루시네이션 이슈에 관해서는 브런치 가입 초창기에 쓴 글에 잘 정리가 되어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 보시길. ( 글 링크 : [챗GPT] 이제 세종대왕은 맥북을 안 던진다 )
할루시네이션이 이슈가 되면서 챗GPT 역시 많은 개선을 하고 있다. 위 링크에 있는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할루시네이션이 나타날 만한 내용들을 학습해서 반복적인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통해 우리가 진리를 찾아가듯이, 챗GPT 역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결점을 보완해나가고 있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현대의 챗GPT와 대화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며 즐거움을 느낄 것인지, 자신이 비판했던 소피스트와 같은 면을 챗GPT에서 보며 실랄한 비판을 가할 것인지 상상해 보는 것도 하나의 유쾌한 상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상상과는 별개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람들이라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인공지능 설계에 녹여내야지만 진리로 나아가는 길이 보일 것이다.
현대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일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실제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영향력이 깊게 녹아있다.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서양철학이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면 서양철학의 근원은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만물의 근원인지에 관심을 가졌다. 우리는 이들을 자연 철학자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연에 관심을 가지던 철학자들의 시선을 '인간'으로 돌리게 된다. 올바른 인식은 자기 안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을 가진 소크라테스는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간 이성을 통해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하였다. 소크라테스에 와서 철학은 인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기계 그 자체에 주목을 하며 인공지능의 시작을 알린 인물은 누가 있을까? 소크라테스처럼 인공지능의 시원이 된 사람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알아보자. 과연 그도 소크라테스처럼 비극적인 운명이었을까?
추신)
아들 : 우주에 가려면 우주복 입어야 해? 입기 싫어.
아빠 : 우주에서는 우주복을 반드시 입어야 해.
아들 : 왜?
아빠 : 공기가 없으니까?
아들 : 왜 공기가 없어?
아빠 : 우주 공간에는 중력이 없어서 공기가 머무를 수 없어.
아들 : 왜 중력이 없어?
아빠 : 중력은 말이야....
아들 : 중력은 뭐야?
.... (이후 계속 이어지는 왜? 왜? 왜?)
며칠 있음 33개월이 되는 아들과 얼마 전 있었던 대화를 축약해 놓은 것이다. 말문이 트이는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자주 접하게 되는 상황이다. 꼬치꼬치 캐묻는 아이와의 대화는 늘 좌절스럽다. 하지만 아이의 질문이 성가시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의 질문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지해서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소크라테스처럼 우리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무지가 드러난 우리는 짜증을 낼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철학자 피터 크리프트는 '다른 사람을 짜증 나게 하지 않는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 집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