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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Oct 04. 2023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튜링의 대답

앨런 튜링과 소크라테스, 그리고 데카르트

(이 글은 과거 작성했던 글을 최근 작성하는 글 흐름에 맞춰 일부 수정하여 재발행한 글입니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1769년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권을 등록하며 산업혁명의 문을 열었다. 같은 나라의 앨런 튜링은 약 200년이 조금 지나지 않은 1936년 오늘날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기존의 특수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진 단순 기계에서 벗어나, 입력되는 데이터에 따라 범용적인 일을 수행하는 이 '만능기계'는 이후 폰 노이만(von Neumann)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로 탄생한다. 나는 지난 글에서 인류를 새로운 길로 열어준 앨런 튜링의 사고 전환을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그중에서도 탈레스에 비유한 바 있다. 



컴퓨터과학 분야에는 튜링상(Turing Award)이 있다. 튜링상은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튜링의 이름을 따서 1966년 제정되었다. 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는 것만 해도 큰 업적이지만, 튜링의 업적은 이를 뛰어넘는다. 튜링은 단순히 컴퓨터의 개념을 넘어 "기계 지능"에 대한 화두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진 첫 번째 사람이었다. 실질적인 인공지능의 개념 정립 및 연구의 시작은 1956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 열린 다트머스 회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이전에도 앨런 튜링을 포함한 학자들은 "기계 지능"에 대한 언급을 지속해 오고 실제 연구도 진행하였다. 


1936년 컴퓨터에 대한 이론적 개념을 정립한 튜링은 잠시 국가를 위해 독일의 애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본인의 연구를 지속하며, 1941년 기계지능에 대한 개념 정립에 도전, 1947년에는 "컴퓨터 지능"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언급하였다. 그리고 1950년 논문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계산 기계와 지능)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논문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며 답을 내리고자 한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Can machines think?)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무지의 지'를 밝히고자 하였으며, 인간 이성에 집중하여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던지며 철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면, 앨런 튜링은 기계 지능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인공지능 시대의 문을 연다. 


탈레스가 자연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시작된 2500년 역사의 철학에서도 '사유'의 본질을 묻는 질문은 쉽게 답하기 어렵다. 인간은 무엇인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지, 지능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철학도, 근대에 시작된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도 제대로 답변을 하기 어렵다. 이런 사고의 시작을 처음 한 것으로 알려진 철학자로는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있다. 데카르트의 대표 철학인 심신이원론은 인간은 정신과 몸이 결합한 존재이고, 정신과 물질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마치 "기계 속에 인간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라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와 구분되는 특성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데카르트는 1637년 쓴 '방법서설'에서 우리를 모방할 수 있는 기계가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은 말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정신과 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이원론을 주창한다. 기계는 인간과 같이 물질은 가지고 있지만 언어 반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물질이라는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는 인간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설령 인간을 완벽히 따라 하는 기계가 등장하더라도 그들은 언어 반응이 없어서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기계와 인간의 사유에 대한 생각은 당시에는 합리적인 추론이었을지 모르나, 인간의 언어쯤은 쉽게 따라 하는 미래의 기계 등장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기계', '지능', '사유' 등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답하기 위해서는 정의를 내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단순히 기계에 대한 정의를 넘어서 기계의 사유가 인간의 사유와는 무엇이 다른지,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과는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정의까지 내려야지 만이 우리는 비로소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고, 챗GPT가 인간 이상의 퍼포먼스를 내고 있는 현시점에서도 저 질문에 대한 답을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 철학이 발전하고 현대 과학이 발전하였음에도 저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앨런 튜링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정의는 나중으로 미룬다.
먼저 인간이 봤을 때 인간과 같은 기계는 인간에 준하는 지능이 있다고 간주한다.


앨런 튜링은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풀리지 않는 질문을 "기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실체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보았다. 그리고 인간에 준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별하기 위해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제안하였다. 즉, "지능, 인간다움, 기계와 같이 본질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고,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실체는 '지적이다'라고 합의한 다음 논의를 이어가자. 그리고 이러한 '지적인' 기계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하자"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튜링테스트 개요 (출처 하단 명기)

그럼 튜링 테스트는 무엇인가? 먼저 튜링 테스트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튜링 테스트를 제안한 튜링은 정작 이 실험을 '모방 게임(imitation game)'이라고 명명하였다. 튜링은 자신이 명명한 이미테이션 게임이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테스트로 불릴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 심지어 자신이 제안한 실험의 이름인 이미테이션 게임이 자신의 생애를 다룬 영화의 제목이 될 것이라고는 더욱 상상이나 해봤을까? 


튜링 테스트로 돌아와서 본 실험에는 두 명의 참가자가 있다. 하나는 기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이다. 컴퓨터 화면과 같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기계와 사람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 된다. 심사위원은 이 들의 답변을 본 후, 어느 쪽이 사람이고 어느 쪽이 기계인지 판별하게 된다. 보통 알려져 있는 튜링 테스트는 이 정도 수준이나 튜링의 논문에서 밝히고 있는 이미테이션 게임의 절차는 좀 더 세부적이다. 여기서는 최종 심문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먼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한다. 단, 남자는 심문자를 속이기 위해 여자인 척하게 된다. 이후 남자 대신 기계가 배치된다. 여기서 기계는 여자인 척하게 된다. 튜링이 제안한 이미테이션 게임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성별까지 모방하는지를 판별하게 된다. 


튜링 테스트는 인간과 기계의 사고에 대한 과학적, 철학적 답안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인공지능'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인공지능의 반응이 진짜 인간의 반응과 구분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은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것에서 튜링 테스트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튜링은 테스트를 제안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한다. 논문이 발표된 1950년으로부터 50년 뒤면 70% 이하의 확률로 심사위원이 틀릴 것이라 예상한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컴퓨터가 출시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한 예측이라 생각해 보면 상당한 혜안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튜링은 논문에서 '사고는 신이 사람에게만 준 능력'이라는 신학적 관점, '기계가 생각하는 세상은 끔찍해'라는 심리학적 관점, '기계는 인간의 신경 시스템을 모방할 수 없어'라는 생물학적 관점의 편견들을 하나하나 논박하며 기계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오늘날 튜링 테스트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튜링 테스트는 이후 인공지능을 판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실험으로 받아지고 있다. 많은 대중매체에서 튜링 테스트를 인공지능이 통과하게 되면 인류의 지능 수준으로 올라온 것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소설, 영화 등 콘텐츠에서 튜링 테스트는 마치 인공지능이 넘어야 할 최종 보스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튜링 테스트가 문제가 있다는 주장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의 철학자 존 설(John R. Searle)이 1980년 제시한 소위 '중국어 방 논증(Chinese Room Argument)'이다. 방 안에 중국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들어가고, 이 사람에게 중국어 테스트를 진행한다. 방에 들어간 사람은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방안에는 중국어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자료가 있다. 이를 참고하여 방안의 사람은 중국어 문제를 풀어서 테스트 문제를 풀게 된다. 그러면 이 사람은 중국어를 아는 것인가? 아니면 이 사람이 들어간 방이 중국어를 아는 것인가? 중국어 방 논증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하면 끝도 없어지기에, 여기에서는 중국어 방 논증 등으로 튜링 테스트가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이후 튜링 테스트를 보안하기 위한 역(逆) 튜링 테스트 등도 제안된 바가 있다.


한편 2014년 튜링 테스트를 처음으로 통과한 인공지능이 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강타한 바 있다. 



영국 레딩 대학에서 개발한 '유진 구스트만 (Eugene Goostman)'이라는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단의 33%가 유진 구스트만을 사람으로 인정하여 튜링 테스트 통과 기준인 30%를 넘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학습을 진행하여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일반적인 개념의 인공지능을 구축하기보다 시험자가 선호하는 답변을 학습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논쟁들은 튜링 테스트 자체의 신뢰성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튜링 테스트의 더 큰 문제는 튜링 테스트에 맞게 진화된 인공지능은 테스트를 통과하지만, 정작 인간 중 일부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즉, 튜링 테스트는 Pass or Fail로 인공지능인지를 판별하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 테스트의 본질에 적합하지 않다. 


이렇듯 1950년 튜링이 제안한 튜링 테스트는 오늘날에 와서는 직접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튜링 테스트는 오늘날 아무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인가?


다시 테스형, 아니 소크라테스로 돌아가자.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문답으로 철학의 길을 열었다. 튜링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컴퓨터에 해당하는 개념을 제안한데 이어 인공지능에 대한 문답을 처음으로 시도한 학자. 그렇기에 우리는 앨런 튜링을 컴퓨터의 아버지,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튜링 테스트 만으로도 이야기가 길어졌다. 인공지능에서는 잠깐 멀어지지만 튜링의 또 하나의 업적, 애니그마 암호를 해독하여 1,400만 명을 살린 얘기와 그의 비극적 최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어보았으며, 링크는 다음과 같다.



이전 07화 테스형, AI는 또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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