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흥망성쇠를 느껴보자

볼거리가 풍부한 로마 여행 (2014.06.14)

by 최재운

아이들은 영웅의 이야기를 흠모한다.


신에 도전한 인류 최초 영웅 길가메시의 이야기를 점토판에 필사하던 수메르의 어린아이처럼, 트로이 전쟁의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이야기를 서사시로 즐기던 아테네의 어린아이처럼, 히타이트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 람세스 2세의 벽화를 경외감으로 바라보던 이집트의 어린아이처럼, 황금 권자에 앉은 샤를 대제의 이야기를 듣는 중세의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영웅의 대서사시를 흠모한다. ( 예전에 쓴 글 표현 재탕 죄송 ^^ )


어린 시절 나 역시 영웅의 이야기를 흠모하였다. 일전에 밝힌 바와 같이 아직도 최애 소설로 꼽는 것은 <삼국지>이다. 동양의 삼국지가 어린 시절 한 축이었다면, 또 다른 한 축은 서양의 영웅 이야기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이다.


로마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비판을 넘어 비난의 시선이 팽배하다. 역사서로 받아들이기에는 작가의 과한 해석과 창작이 들어갔다는 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로마인 이야기가 주는 서사의 몰입감은 상당하다. 90년대 국민학교로 입학해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에게 이문열의 삼국지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한국어판 <길가메시 서사시>였고 <오디세이아>였다.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로 시작해 독서에 흥미를 느끼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도 많았다. 말 그대로 마중물 역할로는 이만한 작품이 없다. 그렇기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인기가 있는 로마인 이야기가 주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로마인 이야기 이외에도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쓴 또 다른 작품인 베네치아를 다룬 역사 에세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감명 깊게 봤기에, 어린 시절 나에게 로마와 베네치아가 있는 이탈리아라는 곳은 동경의 장소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2014년 6월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 무엇보다 뜻깊었다.




로마는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관광 명소가 많다. 콜로세움(Colosseum), 판테온(Pantheon), 트레비 분수(Trevi Fountain) 등이 아주 유명하며, 특히 가톨릭의 중심지인 바티칸(Vatican City)의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직접 찍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다시 봐도 환상적인 콜로세움 야경,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 던지기


로마를 다녀온 이야기를 적으면서 위에서 언급한 명소들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진부할 수 있다. 워낙 많은 여행 에세이들과 가이드북에서 명소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여기에서는 위 사진들로 갈무리하고자 한다. (입은 정말 근질근질하지만 진부한 이야기 자꾸 하는 것도 재미없으니) 대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로마의 명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바로 포로 로마노(Foro Romano)이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 제국의 중심부였던 광장으로 정치, 경제, 종교, 사법 등 다양한 활동의 중심지였다. 다양한 신전과 궁전, 개선문, 법원 등의 건물들이 위치해 있었으며 주변에는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 카피톨리노 언덕 등과 인접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유적이건만 지금은 잔해로만 쓸쓸히 남아있다.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소인 포로 로마노에서 드는 감정은 꽤나 복합적이었다.


직접 찍어본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포로 로마노 정경




로마는 테베레강 인근 일곱 개의 언덕에서 시작되었다. 일곱 언덕 중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 바로 옆에 포로 로마노는 위치하고 있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의 설립자인 로물루스 형제의 탄생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로마의 중심지답게 포로 로마노가 있었던 곳에서는 많은 역사가 벌어졌다. 로마인 중 가장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그 시신이 포로 로마노에서 화장되었으며, 이 화장터는 아직도 유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로마 하면 떠오르는 원로원 역시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 역시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카이사르만큼은 아니지만 연설로 유명한 키케로 역시 암살당한 후 그의 머리와 두 손이 포로 로마노에 전시되었다. 바로 포로 로마노 한 구석에 위치한 로스트라(Rostra)라는 연단에서 말이다.


얼핏 보면 폐허 같은 이곳에서 로마 제국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종교가 이곳에서 꽃을 피웠다. 지금은 폐허인 이곳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살아 숨 쉬고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을 상상해 보면 경외심마저 들 지경이다.


또한, 비애감도 함께 찾아온다. 찬란했던 로마 제국 천 년의 역사가 저물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폐허를 보면 인생의 허무함을 당연 느낄 수밖에 없다. 이곳을 찾은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한 감정이었나 보다. 전설적인 로마 역사서인 <로마제국 쇠망사>를 기술한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역시 포로 로마노의 폐허 속에서 로마의 쇠퇴와 멸망에 대해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에밀 졸라(Emile Zola)와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역시 포로 로마노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긴 바 있으며, 예전에 포스팅한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SF 소설인 파운데이션(Foundation)의 은하제국 수도 트랜터 역시 포로 로마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를 표현한 말 중 가장 유명한 격언 중 하나이다. 로마는 세계로 길을 내며 뻗어나간 제국이다. 어디로 진출하든지 간에 길부터 뚫었다. 로마인의 치밀한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으로, 그리스인은 신전 건축에 열심인 반면 로마인은 공공시설을 확충하는데 열심히라는 당시 시대 사람들의 글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혹시 해보지 않았는가? 로마군의 이동을 위해 닦아놓은 도로는 반대로 적군의 침입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실제로 로마와 이탈리아 반도에서 패권을 다투던 도시 국가 에페이로스가 이 길을 따라 로마인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고,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로마의 길을 타고 진격하여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물론 한니발은 로마 길이 끊어져있던 부분인 알프스는 직접 넘었다.


그래서 방어에 치중하는 민족은 도로를 건설하는데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와 중세 유럽의 국가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도시국가로 태어나 도시국가로 머물렀다. 하지만 로마는 진취적인 외향성을 보여준다. 평탄하고 편리한 도로를 만들어 계속해서 뻗어가는 로마인의 기상이 바로 세계 제국 로마를 만든 것이다.


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포로 로마노에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본다. 이처럼 로마인들이 도로를 닦고 끊임없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다 문뜩 그들이 돌아올 일곱 언덕이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길로 나아가더라도 다시 그 길로 돌아오면 로마의 일곱 언덕이, 포로 로마노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기에 로마인들은 자신감 넘치게 뻗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요즘 육아를 하면서 아이가 자신감 넘치고 진취적인 아이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로마인이 위풍당당하게 나아갔듯이 우리 아이도 세상에 당당하게 맞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가 자신감 있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로마의 일곱 언덕이 있었던 것처럼, 당시 건재했던 포로 로마노가 버티고 있었던 것처럼 가정이, 부모가 아이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어야 하진 않을까?


윗 문단의 생각은 최근에 하게 된 것이지만, 2014년 로마의 포로 로마노에서도 양가적인 감정 때문에 많은 사색을 하게 되었다. 물론 사색 와중에도 챙겨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진이다. 포로 로마노에서 사진을 찍고 와서 보니 독사진 뒤에 새 한 마리가 함께 나와있다. 마냥 로마의 상징인 독수리 같다. 혹시 과거 로마의 왕자가 다시 온 것을 안 선조가 독수리를 보낸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과 함께 로마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지어본다.


뒤에 포착된 독수리? ㅋㅋ (자세히 보면 독수리는 아닌 것 같다 ㅋㅋ)




오늘은 여행 브런치북 2탄. 로마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조금 색다르게 써보려 했는데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네요. 로마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이탈리아 이야기는 몇 편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편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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