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 홍콩 (2019.4.30 ~ 5.3)
홍콩(Hongkong)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직 해외에 나가기가 여의치 않았던 대학생 시절, 영화를 통해 먼저 가본 홍콩은 별천지 그 자체였다. <타락천사>에서 여명이 막문위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맥도날드도 특별해 보였고, <중경삼림>에서 양조위와 왕페이의 사랑이 이어졌던 곳이자, 실연당한 금성무가 계속해서 전화를 하던 동네 샌드위치 가게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도 힙해보였다. (영화에 나왔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자리에는 성인용품점이 들어섰다)
그리고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한 에스컬레이터 같은 장소도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훗날, 홍콩에 여행을 가서 그곳의 이름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경삼림에서 왕페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장면은 영화를 안 본 사람도 한 번쯤은 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또한, 90년대 홍콩은 세기말적인 감성에 홍콩 반환을 앞두고 약간의 긴장감까지 서려있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감성들의 집합체가 홍콩 영화로 나타났고, 특히 왕가위 감독은 특유의 세련된 연출력과 다양한 영상기법을 통해 당시 홍콩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는 당시 홍콩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 그래서일까. 홍콩에 가면 영화 중경삼림에서와 같이 금발의 임청하가 이국적인 가게 앞에 서있을 것만 같았다.
특히나, 홍콩에 가면 중경삼림의 양조위 같은 경찰이 당장에라도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같은 남자가 봐도 중경삼림의 양조위 등장 장면은 레전드였으니.
그렇게 추억 속에만 있던 홍콩을 직접 가볼 기회가 생겼다. 2019년 이직을 앞두고 잠시 짬이 났기에 홍콩과 마카오를 여행해 보기로 한 것. 그렇다면 직접 가본 홍콩은 어땠을까?
최첨단의 현대적인 고층 빌딩과 바로 옆에 펼쳐져있는 예스러운 시장이 어우러진 모습은 영화 속 홍콩 모습과 유사하다. 홍콩의 이러한 양면적이면서 매력적인 모습은 사이버펑크 장르에도 많은 영향을 줘서, 일전에 소개한 바 있는 <공각기동대>와 같은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봐왔던 홍콩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홍콩이 반환된 이후, 최근까지 이어진 혼란의 과정을 거치며 홍콩은 더 이상 예전의 홍콩이 아니었다. 영국과 중국이 적절히 혼재되어 매력적이었던 과거의 홍콩 대신 중국의 어느 대도시와 다를 게 없어져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길거리의 분위기는 그냥 대도시의 모습이고 광고패널 역시 중국의 느낌. 그리고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공안의 모습들까지. 홍콩을 방문하기 몇 년 전에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 등을 방문해 봐서 그런가. 홍콩은 이제 중국의 유명 도시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홍콩이 인기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 한국의 도시들보다 발달된 모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노래도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겠는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의 야경과 하늘을 뒤엎고 있는 스카이라인, 그리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브랜드의 상품을 쇼핑할 수 있다는 점까지. 그래서 홍콩 여행은 인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네온사인은 LED로 대체되었고, 홍콩 특유의 야경은 해외여행이 쉬워지면서 다른 나라에서, 심지어 한국의 도시들에서도 홍콩만큼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야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쇼핑 역시 이제 홍콩에서만 쇼핑할 수 있는 상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홍콩의 네온사인은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LED로,
양조위가 지키던 홍콩은 공안이 지키는 홍콩으로 변화하였다.
그럼에도 홍콩은 여전히 매력적인 여행 장소이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보는 야경도,
스타페리나 트램 같은 독특한 교통편도,
화려한 빌딩 뒤의 뒷골목도,
비싸지만 맛은 있는 중국의 음식도.
그리고 마카오와 엮어서 여행을 가기도 좋다. 페리로 이동 가능한 홍콩과 마카오는 3박 4일 정도의 일정에 최적화된 여행장소이다. 휴가가 짧다면 먼 유럽 대신 홍콩을 가보는 것도 괜찮다. 홍콩에서 영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면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여름은 피해야 한다. 5월에 여행을 갔음에도 정말 더웠기에 한여름의 홍콩은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오는 겨울 특별한 여행지를 못 찾았다면 홍콩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임에는 분명하다. 특히나 세기말 홍콩 영화에 심취했던 사람이라면 과거의 향수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는 곳이니. 물론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겠지만.
지금까지 쓴 글들과 결이 다른 글도 한 번 써보고자 합니다. 늘 쓰고 싶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는데 필 받은 김에 여행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보겠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라 날을 지정해야 쓸 것 같아 연재 일정은 매주 금요일입니다. 지금까지 여행한 곳, 그리고 앞으로 여행해보고 싶은 곳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같이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