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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 Jun 16. 2021

회사는 재밌었다, 성격에 맞지 않았지만.

 첫 회사였다. 영국의 스포츠 의류를 전문으로 유통하는 대기업에 ODM 식의 신발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벤더사였다. 나는 해외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단순히 영어를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 생각해서 지원했으나, 실력은 또 그리 좋진 못해서 패션 회사에 가면 제조업 해외영업보다는 더 쉬운 영어를 쓸 것 같았다.


 대학 졸업을 하고, 백수로 산 게 1년 채 안된다. 나는 운이 좋았다. 첫 면접에 붙어 취업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입사했으니까. 연봉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금액이었다. 무엇보다 더 나은 회사를 찾겠다고 스트레스받는 취준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 전날까지 만년 대리에 빙의하여 ‘출근하기 싫다’고 우는 소리를 냈다. 내 자유가 회사라는 곳에 속박되는 것만 같았고, 대한민국의 현실만 아니라면 세계 여행을 떠났을 텐데!라는 뜬구름 잡는 생각만 들었다. 1년 후에 영국에 출장도 간다고 하니까, 그때까지만 버텨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회사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이었다. 해외 영업팀은 모두 여자였는데 그래서 여기가 여고인지, 회사인지 가끔 헷갈리곤 했다. 내 또래가 많아 대화가 잘 통했고, 눈치껏 행동해야 했으나 나름 복장과 사내 규율이 자유로웠다. 하루는 팀의 막내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해 온 적이 있었는데, 인사팀 부장님이 한참 뒤에 탕비실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내가 할 말은 많지만 안 한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막내는 우리에게 "어휴, 저 완전 쫄았잖아요."라고 말하고는 뿌리 염색을 할 때까지 노란 머리를 유지했다. 부장님도 그 뒤에 별말씀이 없었고, 나는 이런 라이트(light)한 규율을 가진 회사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만족도 잠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외워야 할 것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은데 유관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좀 무서웠다. 평생을 꼼꼼하지 못하게 살아온 성격은 일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실수를 하고, 호되게 깨지고, 정신이 힘들어서 주말 동안 스트레스로 끙끙 앓은 적도 있었다. 꿈이 디지털 노마드(시간, 장소에 구애 없이 디지털로 일하는 사람)였던 나는 취업 전에 '주말에 절대 회사 안 나갈 거야' 라며 사서 걱정을 했었는데 웬걸, 주말에 회사에서 남은 일을 처리할 때가 마음이 제일 편했다.


 그렇게 4년 6개월을 다녔다. 아니, 다니고 있다. 1년을 버텨보겠다던 내가 출장은 경기가 안 좋아져서 내 앞사람까지만 다녀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친구들 대부분이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 회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진짜 대리가 되어 뒤에 들어온 사원들에게 나름의 본보기가 되겠다며 적당히 치열하게 일을 쳐내고 있다. 나도 퇴사할 거라고, 다른 회사를 알아볼 거라고 퇴사한 친구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말하지만, 어김없이 다음날이 오면 출근 후 책상 앞에 앉아 이제서야 입사 전 1년 동안 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뇐다.


"나, 앞으로 뭘 하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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