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만나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회사에서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된 친구들. 본인이 하는 일에 진심이라 일 못한다는 말을 듣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는 좋게 말하면 특급 인재, 나쁘게 말하면 현대판 노예들이다. 직장 동료로서 만났지만 이제는 함께 몸담고 있던 직장을 떠나 다른 회사로 취업을 했고,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다.
그 친구들이 퇴사를 하기 전 겪었던 전조증상이 있었다. 친구 1 '최짱구'. 어느 순간 자신의 자리가 감옥 같아 보여서 출근을 할 때마다 몸서리가 쳐졌다고 한다. 빠르게 이직 준비를 하더니 가장 먼저 회사를 나갔다. 친구 2 '손철수'. 자주 화를 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눈물도 흘렸다. 그러더니 금방 다른 회사에 추천을 받아 이직했다. 번아웃이라 정의하기엔 모호하지만, 적어도 저렇게 감정적인 파동이 있어야 퇴사나 이직을 마음먹게 되는구나, 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반응이 조금은 멋있어 보였다. 호, 불호가 확실한 부분.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듯, 조금 애매했다. 내 직무가 전문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이라는 게 좋았지만 한편으론 앞으로 예상되는 뻔한 일들에 미리 기가 질리는데도 해야만 하는 것이 싫었다. 애매한 감정의 흐름 따라 과거 친구들의 행동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나는 아직 회사에 더 남아있어야 하는 시기인가? 반문하곤 했다. 웃기게도 퇴사를 하고 싶어서 번아웃이 오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다.
스스로 정의한 '퇴사각'이라는게 불타 소진되어버린 마음을 가져야만 생기는 거라니 어이가 없지만, 그만큼 하루에도 열댓 번씩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퇴근을 한다. 퇴사란, 정말로, 쉽지가 않다.
그렇게 오매불망 번아웃님이 오기를 기다려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난 '어쩌라고'와 '뭐 어때요'라는 직장인이 필수로 가져야 할 마인드 두 가지를 원래부터 탑재하고 있던 하이브리드 인간(?)같은 거라, 기분 나쁜 일도 잘 잊어버리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흐린 눈도 잘하는 스타일이다. 말 그대로, "Burn" 될 타이밍이 없다. 무엇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시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보려 한다. 열심히 하고 싶어지는 일, 뜻뜨미지근해서 오래 몸담을 수 있는 일보다, 조금은 뜨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