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단정(端正)하되 기사는 단정(斷定)하지 않기
단정(端正)한 문장으로 단정(斷定)하지 않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한때 우리 회사 홈페이지에서 나를 소개하는 문구는 이러했다. 글은 최대한 단정하게 쓰되 기사는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겠다는, 나 나름의 자세를 담은 글귀였다. 물론 이 문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녕하세요, ○○일보 ○○○ 기자입니다.'로 바뀌었다. 부서가 바뀌어 조회수를 빨아먹기 위한 온라인 기사를 쓰게 되면서, 나의 기사들은 도저히 저런 소개글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쉽게 쓰였기 때문이다.
내가 부서를 옮긴 직후 핫한 이슈 중 하나는 배우 서예지씨의 가스라이팅 논란이었다. 당시 가스라이팅에 이어 그의 인성 관련 온갖 일화가 제보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은 거기에 쏠렸다. 기사를 쓰는 건 아주 쉬웠다. 모 커뮤니티에 배우 서예지에 대한 이런이런 내용이 올라왔다. 네티즌 A씨는 자신이 서예지와 무슨 관계라고 밝히며 어쩌구저쩌구. 한편 서예지는 최근 동료 배우 김정현에 대한 간섭 논란 이러쿵저러쿵. 이야, 네이버 많이 읽은 기사 올라가는 거 참 쉽더라. 기사를 그렇게 자주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공들여 쓴 기사의 반응은 댓글 10여 개 남짓인데 반해, 연예인 동정 관련 기사는 순식간에 댓글 1000개를 넘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참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럴진대 내가 감히 저런 소개 문구를 내 사진 밑에 달 수 있었겠나.
다행(?)스럽게도 나의 어뷰징 기자 생활은 3개월만에 끝났다. 물음표를 붙인 이유는 솔직히 해당 부서에서의 워라밸이 이 회사에서 그간 누려보지 못했을 정도로 최상급이었기 때문이다.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고 기사를 쓰기 위해 고생스럽게 취재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커뮤니티나 SNS의 반응을 실어 나르기만 하면 됐고 기사 하나를 쓰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해당 부서에서의 생활을 '안식년'이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안식년이 아니라 안식월이 될 줄은 몰랐지.
취재 부서로 돌아오면서 나는 퇴근하고 나서도 다음날 발제에 대한 걱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생활로 돌아갔지만 소개 문구를 다시 복구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단정한 문장과 단정하지 않는 기사는 참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단정하게 쓰는 거야 부단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니 단시간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사를 쓰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 단정하지 않는 건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 나는 기자로서 계속 일한다면 꼭 이 자세를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회부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젊은 여성이 암으로 숨졌는데, 어릴 적 이 여성을 버리고 떠난 생모가 28년 만에 찾아와 해당 여성의 사망 보험금과 유산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 뉴스를 처음 보도한 모 통신사에선 '제2의 구하라 사건'이라고 했다. 고 구하라씨가 세상을 떠난 후 생모가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것에 빗댄 제목이다. 기사 본문에선 고인의 유족(고인을 입양한 가족들) 측 변호사의 멘트가 들어갔다. 아마 기사를 쓴 기자가 우연히 법정에서 관련 재판을 방청하고 변호사와 접촉했거나 해서 나온 기사였겠지.
제목이 자극적이다 보니 본지도 해당 기사를 받아쓰게 됐고, 당일 당번이었던 관계로 이 기사를 쓰게 된 나는 사실 확인을 위해 취재를 시작했다. 어찌어찌 해서 고인 생모의 변호를 맡은 법률사무소 사무장과 통화가 닿았다. 사무장에 따르면 생모는 고인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연락할 방법을 취해 왔고, 고인의 재산 1억5000만원을 상속하게 된 것은 맞지만 고인의 빚 7000만원도 함께 물려받게 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상속할 재산은 8000만원 남짓이고, 이 중 고인 유족이 장례비로 5500만원 정도를 이미 결제해 남은 돈은 2500만원 정도밖에 남지 않았단다. 그리고 이 돈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양쪽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을 통해 합의가 끝났단다.
생모 측 입장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양측의 합의가 끝났다는 사실은 유족 측 변호사도 동의했다고 확인받았다. 그럼 이 사건을 과연 '제2의 구하라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난 아닌 것 같다. 결국 이 기사는 본지 지면에서 빠지게 됐고, 나는 미리 써서 올린 온라인 기사에 생모 측 입장을 덧붙여 내용을 갱신했다.
기자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은 생각보다 많다. 제보를 받거나 다른 언론이 기사를 썼거나 해서 자세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면 나름의 속사정이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만 보면 과실 비중이 8:2 또는 9:1처럼 보일 때가 많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기껏해야 6:4나 되려나. 나는 5.3:4.7 정도나 되지 싶다. 다만 결국 기사의 '야마'는 명쾌해야 하고 그래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다는 데스크들의 요구 때문에, 또는 기자 개인의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결과물인 기사는 늘 한쪽의 주장을 강하게 담고 있게 된다. 보수나 진보 중 어느 한쪽 매체만 봐서는 세상에 대해 비뚤어진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기자는 특정 사안을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직접 쓸 일은 거의 없고 관계자들의 입을 빌려 사안을 파악하게 된다. 당연히 관계자들의 해석이 끼어들게 되고 기자는 그걸 또 해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크로스 체크'라는 것을 하지만 그걸 했다고 해서 반드시 기사가 진실을 보도하리라는 법은 없다. 진실의 일부 단면을 겨우 담아낼 수 있으면 다행이지.
이렇게 잘난듯이 얘기했지만 나 역시 단정하는 기사를 왕왕 쓴다. 1달쯤 전 나는 정수기 회사의 설치 기사들이 노조를 꾸려 반복적으로 파업을 하며 고객들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정수기 A/S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고객이 실제로 적지 않았던 탓에 기사를 본 사람이 꽤 많았다.
기사가 나간 후 노조 소속 설치 기사가 내게 메일을 보내 따졌다. 파업을 해서 정규직이 됐지만 하루 식비는 5000원이고, 설치 기사가 자기 차를 끌고 고객 집을 전전해야 하며 기름값도 한달 20만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일하는 데 쓴 비용만이라도 보전받겠다는 게 그렇게 잘못됐냐고.
메일에 따로 답장을 보내진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켕겼다. 실제로 내 기사는 회사 쪽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기사였고, 노조 입장은 한두 줄이나 겨우 들어갔다. 노조 취재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차피 노조가 본지 취재에 성의 있는 답변을 내놓을 리도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고객을 볼모로 잡는 파업이 반복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글쎄. 과연 나는 단정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