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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걱정쟁이 Apr 06. 2024

자본주의를 악마로 몰아가면, 사라진 내 돈은 돌아올까

EBS 자본주의 제작팀, <자본주의>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의 '자본주의'는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완전히 잦아들지 않은 2012년에 나온 다큐멘터리다. 그래서일까, 은행과 금융가를 필요 이상으로 적대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든지 한국의 부산저축은행 사태, 라임 사태 등등 금융가의 각종 사건사고를 보다 보면 서민들의 피땀 어린 돈을 갈취하는 타락한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품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투자를 결정한 것은 투자자 자신이다. 아무리 영업직원들이 그럴듯한 유혹을 늘어놓는다 해도, 그렇게 투자자에게 유리하기만 한 상품이 있을 리 없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걸 과연 자본주의가 타락했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때보다 지금은 노동소득의 가치가 자본소득의 가치에 비해 더욱 하락한 상태다. 물가는 계속해서 올라가고만 있고 이제는 직장 생활만 해서는 서울에 집 한 채 제대로 사기 어렵다는 게 상식이 된 지 오래다. 희망을 잃은 이들은 다들 경쟁적으로 주식과 코인에 전 재산을 때려붓고, 최근 이슈가 된 루나코인 사태처럼 그 얼마 안 되는 자본금이나마 날아가는 사태가 비일비재하다. 아예 선을 넘고 회사의 공금을 횡령한 직원들의 소식도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다큐멘터리가 우려하고 있듯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의 문제점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기만 할까. 외려 자본주의의 체제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정부의 각종 정책 실패가 불러온 결과에 가깝지 않나.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들은 예외 없이 집값을 천문학적으로 올려버렸고, 국민의 소득을 늘려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금시초문의 정책은 결국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낳았다. 정작 5년간 최저임금이 인상된 정도는 코로나 영향이 있었다 해도 그 이전 정부의 인상률만 못했으니 이걸 블랙 코미디라고 해야 할지. 이럴진대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때에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 한국 경제의 창의성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스타트업들은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결코 나타나지 못했을 형태다. 얼마 되지 않는 자본금을 기껏해야 간단한 사업 아이디어와 시제품 정도만으로 다른 사람의 투자를 받아 메꿔나가고, 수년간 적자를 당연히 여기며 다른 사람의 돈으로 직원들 월급과 사업에 필요한 돈을 충당한다. 과연 이런 형태의 기업이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가능하기나 했을까.


최근, 이라고 해도 어느 새 다녀온 지 1달이 다 된 중소기업이 한 곳 있다. 미국 업체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반도체 검사 장비 국산화를 시도한 기업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업체에 재직하며 관련 기술을 쌓아 온 CEO가 2012년부터 관련 기술을 연구했고, 여러 벤처캐피털에게 연구 자금을 투자받았다. 2018년까지 매년 영업손실을 봤지만 2019년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18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매년 올렸고 그간 겪은 손실을 대부분 메꿨다고 했다. 이 기업은 2020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내부 반대가 심했지만 조기에 상장한 이유에 대해 CEO는 "우리한테 투자한 벤처캐피털이 이익을 거둬서 투자금을 회수해야 다른 기업에도 투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상대를 이용할 기회만을 노리지는 않는다는 반례가 되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선 누구나 자신의 자산을 늘리길 욕망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등쳐먹고 사기를 치고 비도덕적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책임을 자본주의라는 체제에만 돌리는 건 과연 합당한 일일까. 구조적 요인을 탓할 게 아니라 슬기롭게 자신의 자산을 늘릴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선 책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 메시지에 도달하는 경로에 대해선 영 공감하기 어려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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