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초협력자』
죄수의 딜레마, 게임 이론, 내시 균형, 공유지의 비극 등은 경제학과 정치학 등의 원론 수업을 듣다 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런 이론들의 공통적인 전제는 사람이 자신의 비용은 줄이고 이익은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배신이나 무임승차 등 협력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유인이 생긴다.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협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많은 학자들의 화두가 돼 왔다. 초협력자의 저자 마틴 노왁의 연구도 큰 틀에서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경제학 교양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는 이 기본 전제에 의문을 품었다. 사람은 과연 그렇게 이익만을 추구하는가? 초협력자에서도 여러 사례가 언급되지만 사람이란 굉장히 입체적인 존재다. 당장 나만 해도, 자신의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주위 지인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물론 머리를 굴리다 보면 한두명 생각나는 이름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들 자신의 밥그릇도 적당히 챙기면서 남을 도울 때는 돕는 사람들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일에 참 관심이 많은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으나)
물론 '과학'에서 이런 애매한 태도로는 무엇 하나 제대로 규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경향성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전제와 조건을 설정하고 실험을 하게 된다. 실험 결과에서 가설에 들어맞는 결과가 나오면 이를 최대한 간략하게 표현한다. 초협력자의 경우 그렇게 해서 협력의 다섯 가지 법칙이 도출됐다.
이렇게 도출된 다섯 가지 법칙을 보면서 사실 이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협력의 메커니즘이 뭔지 사전적으로 설명하라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히겠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경험적으로 다들 알고 있다. 우리는 오래 알고 지낼 사람의 뒤통수를 함부로 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자신의 평판이 나빠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보다는 평소에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다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일면식도 없는 생판 남보다는 친밀감이 쌓인 가족과 친구를 먼저 돕는다. 나 자신에게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조직 차원에서 득이 되는 일이라면 자발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처벌로 남을 강제할 수는 있지만, 내가 처벌한 사람이 나에게 악감정을 품지 않을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도출된 결론은 어찌 보면 상당히 뻔한 답을 꽤나 멀리 돌아와서 구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노왁의 연구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걸 수와 그래프로 입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고, 특히 그것을 협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적자생존의 자연 선택 이론에도 적용했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일이다. '다들 주위를 도우며 살지 않나'라는 생각이 통하지 않는 배신자와 무임승차자도 언제나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다만 인류는 긴 역사 동안 어떻게 하면 서로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지혜를 알게 모르게 공유해 온 게 아닐까. 특히 인류가 너무 많아진 데 반해 자원은 점점 고갈되고 있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그 보편적인 지혜의 쓰임새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선 '구성원의 도덕적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던 하디의 말마따나, 결국 '초협력'이란 인류에게 있어 종의 존속을 가능하게 했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과 맥이 닿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