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걱정쟁이 Apr 06. 2024

자유가 주어졌을 때의 막막함에 대해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 자본론 』

마스다 무네아키의 '자유'는 남들과는 다르다.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자신이 할 일을 찾아서 한다'는, 철저하게 이성적인 활동이다.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인데, 나는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기자는 정말이지 '자유'로운 직업이니까.


수습기자 첫날, 술을 진탕 마신 후 동작경찰서 지하의 2진 기자실에 짐을 풀었을 때부터 나는 자유로웠다. 사수는 '사건을 가져와라'라는 한 마디 말만 했을 뿐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가 '알아서'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새벽 2~3시, 영하 20도의 칼바람 속에서 '나와바리'인 관악구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경찰서, 파출소, 지구대를 되는대로 들러봤지만 사건을 얘기해주는 경찰은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텅 비었는데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오전 7시에 올린 내 보고에는 아무런 기삿거리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수습을 뗐지만 날씨가 따뜻해졌고 선배들이 '조금' 더 둥글어졌다는 것 외에 큰 차이는 없었다. 보고에 올릴 기삿거리를 찾는 일은 언제나 맨땅에 헤딩이었다. 어떤 기사를 쓸지, 그 기사의 '야마'(주제 또는 핵심)는 뭔지는 항상 내가 '기획'해야 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럴듯한 기획에 실패했고 대신 출입처였던 강남에서 터지는 온갖 사건사고들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헛심만 쓰다가 한 해가 다 갔다. 더없이 자유로웠지만, 자유를 즐기지 못했고 막막함만을 몸서리치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마스다의 꿈은 그래서 정말 크다. 그는 자유로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자 한다. 그가 필요로 하는 '접객 담당자'들은 단순한 '상담사'가 아니다.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고객이 필요한 바를 '기획'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아마 그들은 수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지적 자본'을 축적해왔을 것이다. 마스다 본인도 당연히 그럴 것이고.


중요한 건 마스다가 그들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고-연락-상담을 없애는 한편 사원 한 명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분사를 계획한다. 어디까지나 동등한 관계에서 자신의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게 한다. 자유롭되 철저하게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얽매인 기자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기사'라는 목표만을 지정해주고 알아서 달성해 오라는 게 기자들의 방식이다. 누군가는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츠타야만큼의 공적 효용을 한국 기자들이 사회에 제공하고 있는지는 곱씹어 볼 일이다.


분명 '기획'을 다룬 책인데 공감이 가는 포인트가 다소 다르다. 하지만 기자도 매일매일 '기획'을 하기는 매한가지다. 독자가 어떤 정보를 얻고 싶어할지, 어떻게 독자의 눈을 끌지 매일매일 궁리하는 게 기자의 일이니까. 다만 나를 포함해서, 그걸 어떻게 '이노베이션'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기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반성할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실한 사람들에 대한 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