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검사내전』
작년 여름은 참 더웠다. 하루종일 땡볕 아래에서 서 있어야 했기 때문에 더 더웠다. '뻗치기'를 할 머슴아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나는 드루킹 특검 취재 팀에 파견됐다. 특검 취재라니 말은 그럴듯해보이지만 실상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건물 입구에 하루종일 진을 치고 기다리다가 밥을 먹거나 볼일을 보러 나오는 검사, 수사관들에게 말을 붙이는 게 일이었다.
밤에는 종종 특검이나 특검보들 집 앞에 가서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지친 표정을 짓고 돌아오는 그들 앞에 불쑥 나타나 나온 게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참 무례한 짓이다. 당연하지만 그 사람들이 뭘 말해줄 리가 없다. 그래도 데스크의 압박에 치인 기자들은 땀을 줄줄 흘려가며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기다렸고 말을 붙였다. 어쨌든 지면안에 '드루킹 속보'라고 기사가 잡혀 있으니 뭐라도 채워야 할 것 아닌가(라고 선배들이 말했고 나에겐 반항할 권리가 없었다).
그래서 작년 7, 8월 동안 나는 검사들을 참 많이도 봤다. 물론 친해진 검사는 한 명도 없다. 검사들은 다들 기자를 귀찮아했고 말을 붙이면 건성으로 응대하거나 짜증을 냈다. 특검팀의 수장인 특검 본인부터가 기자들을 꺼려했고 언론플레이와는 연이 없는 인물이었다. 공교롭게도 중간에 고(故) 노회찬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바람에 정치권에서 별건 수사다 정치 특검이다 말이 많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본 특검은 언론이나 정치권과는 상관없이 자기 할 일만 하겠다는 과묵한 사람이었다. 아마 노 의원이 그렇게 가 버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누군들 예상했겠느냐만...
선배들은 특검이 퍽 답답한 양반이라고 했다. 사실 그게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결국 김경수 경남지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보수는 수사를 제대로 하긴 한 거냐며 깠고 진보는 무리한 특검이었다고 깠으니까. 특검보들도 꽤나 답답해 했었는데 최종 결정권자가 그런 성격인 걸 어떻게 하나. 특검 취재는 그렇게 끝났고 나는 다른 종류의 '삽질'을 하느라 그때의 기억들을 거진 잊어버렸다.
지난달 재판에서 김경수 경남지사는 예상을 뒤엎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김경수가 드루킹 일당의 댓글 매크로 프로그램 시연을 직접 봤다고 판단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김경수가 시연을 봤다고 드루킹 일당이 증언한 그 날 그 시각에, 네이버 아이디로 수 차례 로그인-로그아웃을 반복했고 '공감'을 누른 기록이 남아 있었다는 거다. 다른 증거들도 있겠지만 결국 이게 핵심이다. 그럼 이걸 어떻게 찾았을까. 수작업이다. 네이버에서 관련 로그를 싹 다 압수수색한 다음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의심스러운 기록들을 찾아낸 것이다. 길고 지리한 작업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투입됐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특검은 그걸 찾아냈고, 재판부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검사 내전을 보면서 작년 여름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김웅 검사가 설명하는 수사 기법은 참 알기 쉽다. 관련 기록들을 싸그리 뒤져서 조각들을 찾아낸다. 그렇게 전체 그림을 그려내고 범죄 혐의를 입증한다. '가성비' 측면에서 접근하면 참 바보같은 짓인데, 문제는 이렇게 안 하면 범죄를 잡아낼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러니 아마 지금도 서울중앙지검의 수많은 사무실에서 수많은 검사들이, 서류와 기록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을 거다.
흔히 많은 사람들(특히 기자)이 B는 없이 A와 C만 가지고 원인과 결과로 이어붙인다. 그렇게 나오는 설명들은 참 알기 쉽고 명쾌한데 자세히 알아보면 사실 관계가 어긋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괜찮다, 제3자라는 건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책임은 안 져도 되는 편리한 위치니까. 그런데 검사는 그러면 안 된다(사실 기자도 그러면 안 된다). 김웅 검사 말마따나 모든 세상사는 살아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매사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검사나 기자나 그 점에 있어서는 다를 바가 없다.
매사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사람답게 김웅 검사의 시선은 현실적이다. 사기는 안 당해야 하는 것이고 위기는 피해야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 남은 상흔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교화가 아니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고작 사회부 기자를 1년밖에 안 했지만 그 1년 사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퍽 강퍅해졌다. 하물며 수십 년을 검사실에 있으면서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쓰는 걸 봐온 김웅 검사는 더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쓰는 글은 냉소적이지 않다. 본인은 냉소적이라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성실하게 모든 기록을 뒤져 가며 쌀쌀한 겨울을 맞고 있는 영민 씨들에게 온기를 불어넣고 있을 것이다. 그 현실감, 성실함, 낙천성 덕분에 나도 마음 한켠에 조금의 온기를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20240406 추가 : 이 글을 쓴 지 어느덧 5년이 됐다. 그 5년간 김웅 씨는 대한민국 정치에 진출했고,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채, 혹은 정치 스캔들에 연루돼 이름이 종종 언급되는 정도로 4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때 더 명예롭게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김웅 씨만은 아니고 다른 여럿을 보며 종종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