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재작년에 들은 얘기니 '요즘' 얘기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아무튼 요즘 사립 초등학교에선 '왕따'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쓴다고 한다. 한 학생이 조금만 친구를 멀리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교사가 바로 "그거 왕따야, 하면 안돼" 하고 정색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면학 분위기를 해치거나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좀 모난 학생들에 대해선 급우들은 물론 학부모들에게까지 빠르게 정보가 돈다고도 하더라. 그렇게 그 학생을 경원시하고, 대신 착하고 순한 학생들끼리 모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며 나는 꽤나 위화감을 느꼈다. 학교라는 곳은 단순히 공부만을 하러 모이는 곳은 아닐텐데. 물론 분위기가 거친 학교들은 정글이나 다름없고 먹이사슬 아랫부분의 초식동물들은 학교 생활을 버텨내기가 참 쉽지 않다. 하지만 결국 사회는 그런 정글의 연장선상이다(취직하고 나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흑흑). 학창시절부터 다양한 사람과 환경을 만나 적응하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일정 부분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사실 부모 입장에선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할 게다. 내가 능력이 되는데 굳이 아이에게 이런저런 세상의 쓴맛을 미리 맛보게 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게 과연 아이를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혹시 아이가 쓴맛을 보게끔 만든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인지는 조금 다른 문제겠지만. 물론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건 보통 의미가 없는 일이다. 부모들은 대개 두 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을 테니까.
'클라라와 태양'의 주인공은 AF(Artificial Friend), 쉽게 말해 로봇인 클라라다. 좀더 범위를 넓히면 클라라가 보필하는 소녀 조시와 그 소꿉친구 릭도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계속 눈길이 가는 건 조시의 어머니 크리시였다. 분명히 그는 어머니로서 조시의 미래를 위해 여러 선택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선택은 정말 조시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크리시 자신을 위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본인도 그걸 알기에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려 애쓴다. 외려 조시에 대한 믿음과 헌신은 자신의 본분에 기계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클라라 쪽이 더 충실해 보일 지경이다.
물론 부모가 자식에게 자기 자신의 소망을 투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소설 내내 조시와 같은 '혜택'을 누리지 못한 릭이 조시보다 더 입체적으로 그려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렇다고 릭의 어머니가 정말 독립적이고 릭을 존중해서 그런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니까. 다만 인간은 결국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해가며 자아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자녀에게 최선의 환경을 조성하려는 건 부모의 당연한 욕망이다.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자녀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견뎌보려는 시도를 그 자체로 존중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어른스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