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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시저장 Sep 19. 2023

술 한잔 하자는 게 왜 이상해?

- '한잔'과 '한 잔'

헤어나올 수 없는 유튜브 쇼츠의 늪에 빠져 있다 보면 다양한 영상을 만나게 되는데, 많이 접하는 주제 중 하나가 '외국인이 보는 한국 문화'다. 이제야 바다 건너를 인식하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하는 건 좋은데, 모든 것이 마냥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이른 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려고 하는 건 좀 별로인 태도 같다. 이상한 것은 고치는 게 좋겠지만, 진짜 이상한가 싶기는 하다.


그 중에 항상 걸리는 것 하나가 '술 한잔 하자.'라는 말이다. "왜 한국인들은 한 잔 하자고 하고는 죽을 때까지 마셔요?"라는 건데, 이건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온 말일 뿐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술 한 잔' 하자고 할 때의 '한 잔'은 사실 '한잔'에 가깝다. 한국어 맞춤법에 따르면 '한 번'은 횟수를 뜻하지만, '한번'은 시도를 뜻한다. '한 번 해봤어.'와 '한번 해봤어'가 다르다는 얘기다. '한 번 해봤어.'는 어떤 행위를 1회만 해봤다는 얘기지만, '한번 해봤어.'는 그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궁금해서 시도해봤다는 얘기다.


'한 번'과 '한번'의 용법은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밥 한그릇 하자.', '술 한잔 하자.'는 대표적인 예다. 이 말은 사실 '밥 한번 먹자.'와 '술 한번 마시자.'에서 왔다. 선술했듯 여기에서의 '한번'은 한 번, 한 그릇, 한 잔을 의미하지 않는다. '밥 한번 먹자.'거나 '술 한번 마시자.'는 얘기는 밥을 먹는 자리나 술을 마시는 자리를 만드는 행위를 시도해보자는 이야기다.


사람은 반복을 지루해하기 때문에 말하는 법은 매번 바뀐다. 그런 견지에서, '밥 한번 먹자.'는 비슷한 뜻을 표현하는 '밥 한그릇 하자.'로 변할 수밖에 없다. '밥자리 한번 하자.', '밥 한번 하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술 한잔 하자.' 역시 그런 관점에서 술 마시는 자리를 언젠가 한번 만들어보자는 의미이지 딱 한 잔을 먹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번'과 '한 번'을 구분하듯, '한잔'과 '한 잔'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맞춤법으로까지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한잔이 한 잔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인지하고 살 필요가 있다는 거다. "왜 한국인들은 한 잔 하자고 해요? 이상해요."라고 할 때, "그러네요."라는 답변보다는 "아, 그건 '한 잔'이 아니라 '한잔'이에요."라고 말해주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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