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종말인가, 변화의 시작인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우리나라의 영화관은 연간 2억 명이 넘는 관객을 맞이하던 문화 생활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영화관의 명성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지난해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인 약 1억 2000만 명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영화 소비 패턴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관을 찾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우리 문화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과 같은 OTT 서비스의 급성장은 영화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재작년 영화 소비자 행태조사를 보면 극장 관람률은 고작 66.5%에 그친 반면, OTT와 같은 극장 외 관람률은 97.4%에 달했다. 압도적인 차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장에 가야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월 1만 원대 구독료로 무제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OTT를 통한 영화 소비를 선호하는 이유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이유를 차지를 할 것 이다. 이는 편리성이 현대인의 소비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또한 2022년 미국 영화 매출의 60% 이상이 OTT를 포함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발생했으며 한국 영화 산업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영화 산업의 중심축이 극장에서 OTT로 이동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영화관을 찾지 않는 또 다른 주요 이유는 높은 관람료다. 일반 2D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데 1만 원 이상이 드는 경우가 많으며, IMAX나 4DX 같은 특별 상영관을 이용하면 2만 원이 넘는다. 팝콘과 음료까지 추가하면 한 번의 영화 관람 비용이 3~4만 원에 달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관객들이 영화관에 사용하고자 하는 금액은 대체로 8000원~1만 원 미만(33.5%)이나 5000원~8000원 미만(27.4%)으로, 현재의 관람료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실제로 관람 빈도가 감소한 주요 이유로 '품질 대비 티켓 가격이 올라서'라는 응답이 28.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경제적 부담은 영화관 방문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변화하고 있던 영화 소비 패턴을 더욱 가속화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누적 관객 수는 2억 2667만 명이었으나, 팬데믹 이후 이 수치는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이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은 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다시 극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팬데믹으로 인한 일시적인 타격이 아니라, 장기적인 소비 패턴의 변화를 의미한다.
볼만한 영화의 부족도 관객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굳이 극장에 갈 만큼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한국 영화계에서는 '파묘', '범죄도시4', '베테랑2' 등 일부 작품만이 흥행에 성공했고 대다수의 대작들은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인사이드 아웃2'와 '모아나2', '웡카' 같은 외국 애니메이션은 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는 콘텐츠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 속에서 영화관들은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특별관과 고급관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CJ CGV는 '스크린X 2.0' 시대를 열며 넓은 화면과 프라이빗 공간을 중심으로 한 '상영관 고급화'에 승부수를 던졌다. 메가박스도 돌비 시네마와 4D 특별관 '메가 MX4D'를 확대 중이며, 롯데시네마 역시 고급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멀티플렉스들이 고급관·특별관을 확대하는 이유는 일반관 대비 객단가와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 관람 풍조가 많이 바뀌어 일반관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했고, 어차피 영화관에 간다면 더 좋은 관람 경험을 원하게 되었다. 특히 2030세대 관객들의 '가치소비', '경험소비' 중시 성향이 프리미엄·프라이빗 특별관 성장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관은 단순한 상영 공간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지녀왔다. 가족과 친구, 연인과 함께 영화관을 방문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활동 중 하나이고, OTT와는 달리 대형 스크린과 고품질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제공되는 몰입감은 여전히 영화관만이 가진 강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변화는 영화관이 과거 대중적 문화 소비의 중심지에서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그 역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극장의 개념이 외식과 쇼핑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몰(mall)의 개념으로 전환되었으며, 관람 환경의 변화가 관람 문화의 변화를 초래했다.
OTT와 영화관은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장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OTT의 강점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며 극장은 큰 스크린과 몰입감 있는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제공하는 영화 경험의 질에서 여전히 매력적이다. 일부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극장에서의 몰입감을 극대화한 후 OTT 플랫폼에서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양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개봉한 '탑건: 매버릭'은 극장 개봉 후 90일 뒤 OTT로 전환해 추가 수익을 창출했다. 이러한 혼합 전략은 두 플랫폼이 경쟁을 넘어 공존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OTT는 또한 독립 영화와 예술 영화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영화 산업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각종 영화제에서 OTT 오리지널 콘텐츠가 큰 주목을 받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영화관의 관객 감소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영화 소비 패턴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OTT 플랫폼의 급성장, 높은 관람료, 팬데믹으로 인한 행동 패턴 변화,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영화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다. 특별관과 고급관 확대, 차별화된 관람 경험 제공 등을 통해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영화관은 이제 대중적 문화 소비의 중심지에서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OTT와 영화관의 공존 가능성도 열려 있다. 두 플랫폼이 각자의 강점을 살리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한다면, 영화 산업의 다양성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영화관의 빈 좌석은 낭만의 종말이 아닌 변화의 시작이다. 그것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소비 패턴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며, 영화 산업이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