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 경계의 문턱
현대 한국 판타지 드라마가 보여주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특별한 무대가 되고 있다. 특히 강풀 원작의 '조명가게'와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죽음을 단순한 종말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자 선택으로 재해석한다. 두 작품 모두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삶의 가치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조명가게'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특별한 공간으로, 코마 상태의 환자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영혼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이곳에서 각 인물들은 자신만의 전구를 찾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전구를 밝히면 이승으로 돌아가고, 전구를 깨뜨리면 저승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반면, '도깨비'에서는 저승사자가 망자에게 차를 권하는 공간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저승사자는 "이생의 기억을 모두 지워줍니다"라고 말하며 차를 건네고 망자는 이를 마실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이 차를 마시면 이승의 기억을 모두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두 작품 모두 이승과 저승 사이의 중간 지대를 설정해 죽음이 즉각적인 사건이 아닌 하나의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인물들에게 최종적인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삶과 죽음 앞에서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명가게'와 '도깨비' 모두 죽음을 단순한 종말이 아닌 과정으로 그려낸다. 두 작품에서 죽음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을 통과하는 여정이며, 이 과정에서 인물들은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또한 두 드라마는 사랑과 인간관계의 힘을 강조한다. '조명가게'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이 영혼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며, '도깨비'에서도 지은탁은 김신과의 약속과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전생의 기억을 잊는 차를 마시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두 드라마는 죽음 이후의 방향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명가게'는 주로 이승으로의 귀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코마 상태의 사람들이 삶으로 돌아갈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한 주제다. 반면, '도깨비'는 죽음 이후 이승의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조명가게'와 '도깨비'가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관점은 동양, 특히 불교의 윤회관과 많은 유사점을 가진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태어남과 살아감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죽음과 삶을 분리된 사건이 아닌 연속된 과정으로 이해한다. 불교의 관점에서 '죽음은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고, '새로운 생으로 이어져 고통을 연장시키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조명가게'에서 전구를 깨뜨리거나 밝히는 선택과 '도깨비'에서 차를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 선택이 내포하는 의미와 유사하다.
서양에서 죽음에 대한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중세 초기에는 '죽음을 예수가 재림하는 날까지 육체를 가지고 잠을 자는 상태'로 보았으나, 후기에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현상'으로 인식이 변화했다. 서양 미술에서는 '죽음의 춤'과 같은 주제로 죽음을 시각화했으며, "우리도 과거엔 너희와 같았고, 너희도 장래에 우리처럼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통해 죽음의 보편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조명가게'가 보여주는 죽음의 시각적 표현과 유사한 면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서양에서는 "영혼의 불멸에 대한 믿음마저 사라지면서 죽음에 대한 언어적 터부가 시작"되었고, 이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죽음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도깨비'의 이생의 기억을 모두 지워주는 차는 현대 서양의 죽음에 대한 망각적 태도와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두 드라마는 모두 죽음 앞에서 인간의 선택과 의지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명가게'에서 "조명가게는 삶의 의지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며, 각 인물들은 스스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삶의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임을 상기시킨다. 의지는 단순히 생존 본능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고 선택하는 행위로 묘사되며, 이는 하이데거의 '죽음 앞의 존재' 실존 철학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죽음을 인식할 때 비로소 자신의 본질을 고민하고 탐구하게 되며, 이러한 인식은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을 그리는 두 드라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고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조명가게'는 어디나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세계관을 통해 가까운 이를 잃어본 이들에게 위안이자 소망을 전달한다. 강풀 작가는 "(사후 세계가) 계속 사람처럼 살며 사람과 관계 맺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보이길 바랐다"라고 말하며, 죽음 이후의 세계가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상실의 아픔을 겪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두 드라마는 궁극적으로 현재 순간의 소중함과 인간관계의 가치를 일깨운다. '도깨비'에서 지은탁은 늘 죽음을 마주함으로 생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어차피 신에 의해 주어진 삶이란 것을 알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불교적 관점에서도 "순간의 삶은 죽음과 직결돼 있어 더욱 의미 있다"라고 강조하며 죽음의 인식이 삶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현대인들에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소중한 인간관계에 주목할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조명가게'와 '도깨비'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를 탐험함으로써 죽음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드라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그려내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의 선택과 의지, 그리고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서양의 다양한 예술과 철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죽음에 대한 인식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그러나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현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는 메시지는 보편적이다. 결국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탐구하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구를 밝히거나 차를 마시는 선택의 순간처럼 우리의 삶도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과 죽음을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