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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과 상연', 애증의 세월

30년의 빛과 그림자

by 오후한시오분

'은중과 상연'은 10대부터 40대까지, 30여 년에 걸친 두 여성의 서사를 따라가는 드라마다. 이 작품에 깊은 애정을 가진 한 시청자로서 이 긴 여정을 따라가며 느낀 감탄과 아쉬움을 진중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성취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포기하지 않고 쫓아간 끈기, 그리고 그 시간을 관통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우정이나 애정으로 규정하지 않은 점에 있다.


워맨스 대신 애증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워맨스(Womance)'라는 편리한 단어를 거부한다. 여성 간의 우정과 연대를 이상화하거나 낭만화하지 않는 대신 동경(憧憬), 질투(嫉妬), 선망(羨望), 연민, 그리고 미움이라는 복합적인 감정, 즉 애증(愛憎)을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가져온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단순한 관조를 넘어 강렬하게 몰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상당한 감정 소모를 유발해 몰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다.

IE003523491_STD.jpg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스틸컷

또한 이 드라마는 여성들의 갈등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상투적인 프레임에 가두지 않는다. 두 인물은 남성 캐릭터나 로맨스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욕망과 결핍으로 인해 충돌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상연이 은중의 삶을 망가뜨리는 이유는 남자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남자나 성공은 도구일 뿐, 갈등의 근원은 오로지 두 사람의 내면에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관계 자체가 드라마의 핵심 사건이 된다. 그렇기에 시청자는 결코 어느 한 명의 편을 들 수 없고 은중과 상연에게 번갈아 이입하는 복잡한 감정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들의 관계 자체가 드라마의 핵심 사건이 되는 것이다.


2000년대의 공기까지 고증


작 품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시대적 배경을 묘사하는 섬세함에 있다. 특히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2000년대 초반, 20대를 맞이하며 느꼈던 사회적 분위기, 그 시절 특유의 낭만과 고민이 화면 가득 담겨 있다. 이는 단순히 '복사-붙여넣기'를 한 듯한 완벽한 고증이라 부를 만하다.


단순히 MP3 플레이어나 폴더폰 같은 소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푸른 액정 빛이 새어 나오던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모습, 초기 PC통신으로 문화, 폴더폰이 찰칵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의 감각,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흐르던 BGM과 일촌평 문화, 거리를 지배했던 통 넓은 힙합 바지와 골반에 걸친 청바지 스타일, 그리고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까지. 이 모든 것이 그 시절의 공기 자체를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이러한 섬세함은 두 사람의 10대, 즉 아역 시절의 묘사에서도 이어진다. 친구 집에 놀러 가 친구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스스럼없이 얻어먹던 그 시절의 풍경은 많은 시청자에게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처럼 높은 해상도의 시대 복원은 그 시대를 살아온 시청자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그렇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는 생생한 체험을 제공하는 고증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결핍된 완벽과 비범한 평범


이들의 30년 애증은 두 인물의 근본적인 대비에서 비롯된다. 은중은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단단한 자아와 공감 능력을 가진 비범한 평범을 상징한다. 반면 상연은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지만 사랑을 주거나 받는 방식에 서투르고 근원적인 결핍과 불안에 시달리는 결핍된 완벽 그 자체다.

IE003519032_STD.jpg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스틸컷

상연이 은중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질투가 아닌 자신에게 없는 따뜻함과 타인의 인정을 받는 능력에 대한 선망이자 좌절이다. 대학 시절, 은중의 재능이 빛을 발하던 순간 상연은 그를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질투에 사로잡힌다. 은중의 창작물을 교묘하게 훼손하는 상연의 모습은 "너는 왜 내가 없는 걸 다 가졌어?"라는 그의 결핍이 어떻게 파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는지 보여주는 핵심적인 장면이다.


그랬던 두 사람이 40대가 되어서도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은중은 상연의 뒤틀린 행동 원리를 끝내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완전한 이해라는 환상 대신 불완전한 받아들임이라는 현실적인 화해를 제시한다. "나는 상연이를 이해한 게 아니었다. 그냥... 받아들인 거였다"라는 은중의 내레이션처럼 이들은 서로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그저 받아들임으로써 마지막을 함께한다. "네가 나를 받아주는구나"라는 상연의 대사야말로 상대의 불완전함과 모순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이 드라마의 본질이다.


스펙트럼을 확장한 박지현, 자기 복제에 머문 김고은


이러한 복잡한 서사를 이끈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으나 두 주연 배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한 축이자 모든 갈등의 중심인 천상연 역의 박지현 배우는 결핍된 완벽이라는 캐릭터를 매우 입체적으로 소화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도도한 현모양처 이미지를 벗고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실하게 확장했다.

IE003523464_STD.jpg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스틸컷

박지현은 인터뷰에서 "상연이를 연기하며 미움을 받을까 걱정했지만 그녀의 결핍과 상처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 상연의 날카로운 공격성 이면에 숨겨진 상처와 불안, 사랑받고 싶어 하는 절박함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극을 장악했다.


반면 류은중 역의 김고은 배우는 아쉬움이 남는다. 평범하지만 단단한 은중 캐릭터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김고은의 연기는 전작들의 연장선, 즉 자기 복제처럼 느껴졌다. '도깨비'의 지은탁, '유미의 세포들'의 유미에 이르기까지, 김고은은 유독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면의 단단함을 가진 캐릭터를 맡아왔다.


김고은 배우 스스로 "은중이는 겉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인터뷰했듯 이번에도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익숙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 익숙함이 상연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맞물려 균형을 맞추기보다 기시감을 유발한 점은 아쉬웠다. 박지현이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도약할 때 김고은은 안전한 영역에 머무른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영화 장치에 그친 조력살인


후반부를 넘어서며 부각되는 건 조력살인이다. 죽음이라는 유한한 시간을 통해 두 사람이 평생 얽혀 있던 애증의 고리를 풀고 '남겨진 자' 은중의 애도를 그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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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살인은 단순한 안락사 논의를 넘어 삶의 존엄한 마무리라는 무거운 화두를 던지는, 우리 사회가 지금 당장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다. 드라마가 이토록 민감하고 중요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을 때 시청자는 마땅히 그 무게를 함께 고민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은중과 상연'은 이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상연의 극단적인 선택과 은중의 동행은 그 엄청난 감정적 무게와 법적, 윤리적 갈등을 탐구하는 대신 그저 절차로만 그려진다. "서류에 서명하세요"와 같은 대사들이 반복되며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 마치 사실 관계만 나열하는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게 연출되었다. 결국 이 충격적인 소재는 30년의 격렬했던 서사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끝내기 위한 영화적 장치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로 인해 삶의 존엄이라는 어떠한 사회적 담론도 촉발시키지 못하고 30년 서사의 마무리를 공허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질문을 던진 드라마


배우 연기에 대한 아쉬움과 후반부 전개의 명백한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은중과 상연'은 우리에게 분명 가치 있는 것들을 남겼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워맨스를 넘어 인간관계의 가장 어두운 심연까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한국 드라마사에 하나의 중요한 시도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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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작품은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남겼다. 30년의 지독한 애증 속에서 완전한 이해가 아닌 불완전한 받아들임에 도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역시 가장 가까운 이에게 느꼈을지도 모를 질투와 연민, 그 양가적 감정을 정면으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은중과 상연'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관계가 아닌 고통스럽고 모순된 현실의 관계를 견뎌내는 법을 물었다.


또한 30년의 세월을 배경으로 그 시절의 공기를 완벽하게 담아내려 노력한 성실함은 2000년대의 낭만이라는 소중한 기억을 남겼다. 비록 가장 논쟁적이었던 마무리는 사회적 담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조차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묵직한 숙제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은중과 상연'은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성 서사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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