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타트업>을 본 건 단순히 수지와 남주혁을 좋아해서였다. 수지의 오랜 팬이라 고민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내 세상을 바꾸었다.
극중 수지의 이름은 '서달미'. 달미는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창업을 꿈꾸던 아빠를 따라가지만, 사고로 인해 어린 나이에 아빠를 떠나보낸다. 달미의 언니 '인재'는 엄마를 따라가고, 엄마는 기업가와 재혼하여 부족함 없는 삶을 산다.
그런 세상을 준비하려고 그만둔 거야
인상 깊었던 달미와 아빠의 대화.
"아빠는 말이야,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막 상상이 된다? 봐 봐, 요즘에 핸드폰 쓰는 사람들 엄청 많지? 자, 그 핸드폰이 점점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 그걸로 사진도 찍고 뭐, 음악도 듣고 인터넷도 하고 그러면?"
"참 좋겠지?"
"야, 인마. 참 정도가 아니야. 세상이 무지막지하게 달라진다고. 아빠는 말이야, 그 맞아서 회사 그만둔 거 아니야. 그런 세상을 준비하려고 그만둔 거야."
내가 생각하는 다가오는 미래, 그러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움직임, 그 움직임에 담긴 확신과 기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하는 아빠의 '이유'가, 투자를 받기 위해 발로 뛰며 투자사를 만나러 다니는 아빠의 '간절함'이 나의 마음에 다가왔다.
나에게 '미래'는 부엌 찬장에 놓여 있는 접시처럼 거기 그곳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그게 그곳에 있다는 건 알지만 어쩌다 한번 찬장 문을 열었을 때 눈길을 주고 평소에는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존재. 타임라인에서 현재보다 앞선 곳에 찍혀 있는 점 하나. 나는 미래에 대해 크게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현재 속에 사는 사람이었다. 미래는 현재가 모여 만들어지는 거니까 현재에 집중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 곧 미래가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바라는 미래'가 생겼다. 상상만 해도 설렘과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꼭 이뤄내고 싶은 '꿈'이 새롭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달미 아빠처럼 그 꿈을 위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도 없는 항해
드라마에 '지도 없는 항해'가 키워드로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이 언뜻 들었을 때는 무모한 도전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릴 적 달미가 지평이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 메타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난 오늘 일부러 헤매봤어. 우산이 있는데도 일부러 비 맞아본 적 있어? 오늘 난 맞아봤어. 무지 덥고 꿉꿉했는데 맞으니까 엄청 시원하더라. 그렇게 한 30분 걸었나? 비가 그치고 내 눈앞에 말도 안 되게 멋진 풍경이 나타났어. 어마어마하게 큰 무지개.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줄 것 같은 그런 무지개였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주 가끔 헤매보는 것도 괜찮겠다. 아주 가끔 지도 없는 항해를 떠나보는 것도 근사하겠다."
어른 도산이가 처음 이 편지를 읽었을 때 "서달미라는 사람이 참 특이하네요. 왜 멀쩡한 길을 놔두고 헤매죠? 우산 있는데 왜 비를 맞아요?"라고 반응한다. 창업과 스타트업을 향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왜 안정적인 직장을 놔두고 취업 대신 창업에 도전하는 거지? 왜 멀쩡한 길을 놔두고 헤매는 거지?"
나는 달미의 이야기를 듣고 헤매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달미가 개발자들과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 아이템으로 서비스를 출시하고 싶었다. 내가 만든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두근거렸다. 그리고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내 생각은 더 또렷하고 짙어져 갔다.
드라마가 끝나고 정확히 2년 후인 2022년 12월, 나는 기획자이자 팀 리더로서 서비스를 출시했고, 한국을 포함해 해외까지 총 110만 명의 유저가 나의 서비스를 이용해 주었다. 지금 나는 청년 창업가로서 나만의 지도 없는 항해를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