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25살, 10년 차 블로거
이승희 작가의 <질문 있는 사람>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봤다. 'SNS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걸 보면 알리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해서다.' 이 문장을 읽고 '어, 나랑 비슷하잖아!' 생각이 들면서 내가 중학생 때 처음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가 생각났다.
그리고 이어 나온 '계속 말하고 보여주는 게 자기다움을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라는 문장을 보고, 그동안 꾸준히 조금씩 인터넷에 남겼던 내 이야기 파편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를 켰다.
해리포터 덕후, 영국인 친구가 사귀고 싶어!
초등학교 4학년 때, 해외펜팔을 시작했다. 처음 듣는 사람은 '11살? 영어공부하라고 엄마가 시킨 건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순전히 내 관심으로 내가 직접 찾아서 시작한 거였다.
11살 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를 처음 보고 푹 빠져서 시리즈 한 편당 거의 20번씩은 돌려봤다. 배경음악만 들어도 어떤 장면인지 알 수 있었고, 영화를 보면서 인물의 다음 대사를 먼저 말하기도 했다. 이후 <해리포터>는 내 삶에서 다방면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해외펜팔 얘기하다가 갑자기 왠 해리포터?' 싶겠지만, 지금의 나의 정체성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미문화에 대한 관심'이 바로 이때 시작했다. 흔히 '덕질'이라고 말하고 요즘엔 '디깅'이라고도 하는 그것을 11살 때 시작한 것이다. 11살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해리포터는 영국 거. 영국이 좋다. 영국이 궁금하다. 영국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해외펜팔을 시작했다.
"해외펜팔 이렇게 하면 됩니다" 15살 블로거가 되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내가 11살이었던 14년 전에는 네이버에서 해외펜팔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당연히 영어를 지금처럼 쓰지도 못했고 해외펜팔에 대해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무작정 한국어로 된 해외펜팔 사이트에 가입해서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외국인 친구들을 검색해서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해외펜팔을 시작했다.
이메일을 주고받다 보니 어떤 말로 처음 보는 외국인 친구와 대화를 시작할지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그 친구들이 쓰는 이모티콘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되고(가령, 우리는 ^^ ~ 이런 이모티콘을 쓰지만 당시 외국인 친구들은 :) :D XD <3 같은 이모티콘을 썼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펜팔을 오래 이어나갈 수 있는지도 습득하게 되었다.
펜팔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베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주 연락하고 유대감과 신뢰감이 쌓인 외국인 친구와 '스네일 메일'이라는 걸 시작했다. '스네일 메일'이란 말 그대로 '달팽이 편지'라는 뜻인데, 손편지나 소포를 주고받는 걸 의미한다. 그때 나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손편지에도 관심이 많아서, 문구점에서 예쁜 편지지를 찾아서 귀여운 스티커와 펜으로 외국인 친구한테 줄 손편지를 꾸미고 작은 선물을 담아 예쁘게 포장해서 보내는 '스네일 메일'을 정말 좋아했다.
처음에는 편지봉투에 편지만 써서 보내고, 다음엔 새콤달콤이랑 스티커를 넣고, 다음엔 아기자기한 문구류도 넣고, 이런 식으로 소포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스네일 메일을 한창 많이 했을 때인 초6(13살) 때는, 학교가 끝나면 문구점에 가서 펜팔 친구한테 선물로 줄 K-POP 굿즈를 사기도 했고, 우체국이 집에서 멀었기 때문에 과외 가는 날에 과외 끝나고 바로 옆에 있는 우체국 마감시간에 간당간당하게 맞춰서 편지를 부쳤다.
내가 너무 좋아하고 즐기는 스네일 메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펜팔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15살의 내가 쓴 첫 번째 해외펜팔 글은 '해외펜팔 하는 방법-이메일'이다. 이메일, 스네일 메일, 주의할 점으로 주제를 나누어 11살 때부터 내가 직접 부딪히며 배우고 익힌 펜팔 스킬들을 적었다. 지금은 모두 비공개로 돌렸지만, 나름 '펜팔 사이트 고르기'부터 '답장 기다리기'까지 무려 여섯 단계로 나눠진 글이다.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경험에서 비롯된 세세한 주의사항까지 꼼꼼하게 적어놨다.
당시 한국은 지금보다 더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난 미드를 보고 해외펜팔을 하면서 땅콩 등 해외에는 알레르기 때문에 문제를 겪는 사람이 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한 번은 이슬람 문화권 친구와 스네일 메일을 하면서 작은 과자를 몇 개 보내주었는데 나중에 소포를 받은 친구가 여기에 돼지와 관련된 식재료가 들어있는지,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심각하게 물어본 적이 있어서, 문화권마다 조심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것을 항상 염두해야 함을 배울 수 있었다.
디즈니 키드, 팝송 러버
<해리포터>를 시작으로 영미권 문화에 관심이 잔뜩 생긴 나는 12살 때 우연히 접한 '디즈니 채널 아시아'에 푹 빠졌다. <한나 몬타나(Hannah Montana)>, <우리 가족은 마법사(Wizards of Waverly Place)>, <찰리야 부탁해(Good Luck Charlie)>, <유쾌한 써니(Sonny with a Chance)> <잭과 코디(The Suite Life on Deck)> 같은 미국 하이틴 시트콤 드라마와 <하이스쿨뮤지컬 (High School Musical)>, <캠프락 (Camp Rock)>, <레모네이드 마우스(Lemonade Mouth)> 같은 하이틴 영화를 좋아했다.
디즈니 채널 아시아를 알게 된 건 <잭과 코디(The Suite Life on Deck)> 파리 여행 에피소드 때문이다. 채널을 넘기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한국어 자막도 있고 재밌었다. 2010년 당시 유튜브는 지금보다 화질도 안 좋고 영상 수도 적고 한국어 자막도 당연히 없었기 때문에 12살의 나는 최대한 에피소드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노트에 그날 봤던 에피소드 내용을 키워드로 적어놨다. 학교 수학여행 때문에 못 보는 날에는 엄마한테 캠코더로 tv를 녹화해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지금 보면 거의 광기에 가까운 덕질이었는데, 그만큼 디즈니 채널과 미국 하이틴 시트콤을 많이 좋아했다.
디즈니 채널 드라마, 영화 중에 노래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 많아서 자연스레 팝송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마일리 사이러스, 데미 로바토, 셀레나 고메즈처럼 디즈니 출신 팝가수들의 노래를 시작으로 아울시티, 케이티 페리, 원디렉션, 테일러 스위프트, 브루노 마스와 같은 팝가수로 나의 팝송 범위를 넓혀갔다.
나는 이 노래들을 매일 듣고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들만 좋아하고 주류까진 아니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음악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어요. 한번 들어보세요!'라는 마음으로 팝송 소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네이버 블로그에서 '100일 챌린지' 같은 걸 했었는데, 15살 신년맞이 계획 겸 100일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로운 팝송 추천글을 포스팅했다. 이때 알게 된 팝가수들이 정말 많다. 내 목적은 '많은 팝송을 소개하자'였는데, 매일 포스팅을 올렸던 덕분에 의도치 않게 블로그 이웃 수와 방문자 수가 많이 늘었다. 그 당시 일일 방문자 수가 평균 3천~5천 정도였다.
10년의 나이테, 블로그
어렸을 때 나는 기록을 중시하고 좋아했다. 과거의 기록들 덕분에 도움을 받거나 덕을 본 적이 꽤 있어서 그때의 나에게 고마울 때가 많다.
단순 기록만 남은 것도 아니다. 블로그엔 내 취향이 차곡차곡 쌓였다. 취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해졌다. 누군가 "너는 뭘 좋아해?"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내 취향을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다. BTS 노래 'Answer: Love Myself"에는 '내 숨 내 걸어온 길 전부로 답해'라는 가사가 있다. 블로그가 나에겐 그런 존재다. 내가 지나온 길의 흔적이자 '나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내 블로그는 나에게 미디어/매체 그 이상의 존재다.
나는 '덕후'라는 말이 좋다. 어떠한 대가 없이도 그저 본인이 좋아서 열정을 다해 디깅하는 그 순수함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도 덕후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요즘엔 재밌게 본 OTT 미드 추천 글을 쓴다. '이렇게 재밌는 걸 나 혼자 볼 수 없지. 세상 사람들 이 드라마 꼭 봐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나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블로그를 했다. 인터넷 세상의 수많은 글들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