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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May 12. 2024

너는 모르는 다정함

다정함은 티 내지 않아도 마음을 쓰는 행동에서 드러난다. 본인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상대방을 신경 쓰고 아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다정함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 겪었던 나를 향한 다정함은 삼계탕이었다.


우리 아빠는 닭을 드시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치킨 보다 피자를 더 자주 시켜 먹는 집이었다. 그래서 삼계탕도 학교 급식 말고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삼계탕이 나오면 늘 맛있게 먹었다. 뜨끈하고 맑은 국물과, 양념 범벅 치킨과 달리 담백하게 익은 고기는 새로운 맛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삼계탕을 먹을 일도 없었고 따로 찾지도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삼계탕 생각이 났다. 애인에게 말하니, 애인은 작년에 할머니께서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가족끼리 갔던 유명한 삼계탕 집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경복궁 근처에 있는 삼계탕 집이었는데, 정말 이름이 알려진 맛집인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애인은 그래도 한번 와봤다고, ‘줄 금방 빠져~’라고 말했다. 우리는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앞에 서있는 외국인 손님들과 함께 별관으로 안내를 받았다.


삼계탕을 메인으로 하는 집이라 그런지 음식이 금방 나왔다. 아니! 뚝배기 안에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학교에서 먹었을 때는 닭다리 한 개만 있었는데! 원래 삼계탕은 이렇게 생긴 음식이구나. 삼계탕 안에는 닭 말고도 대추, 삼과 이름 모를 한약재처럼 생긴 것들이 들어 있었다. 애인은 소금과 후추를 종지에 담아 슬슬 흔들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밥은 따로 안 시키나?’

‘밥은 닭 안에 들어 있는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고기를 덜어내니 진짜 안에 밥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찰밥 스타일로! 처음 먹어보는 제대로 된 삼계탕에 감탄하면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애인은 이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이곳에 왔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식당에서는 엄지 손가락 만한 조그마한 잔에 인삼주를 샘플처럼 주는데, 이걸 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아예 한 병을 시키자고 하셨고 대낮에 무슨 술이냐며 다음 일정 때문에 안된다고 말렸고...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애인의 모습에서 다정함을 느꼈다. 멀리 울산에서 올라오신 조부모님을 위해 맛있는 삼계탕 집을 직접 찾아 모시고,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런 추억이 있는 곳에 나를 데려와서 맛있는 한 끼를 함께 하고.


내가 느낀 다정함이 본인은 의도하지 않은 것임 분명하다. ‘그게 왜 다정해? 그냥 한 건데. 별 걸 다..’라고 말할 사람이라는 걸 잘 안다.


다정함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지만, 난 그날 그에게서 다정함을 봤다.


너는 모르는 다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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