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보다는 배민

<일상 24컷>

by 다오
"그래서 외딴 신축 동네에 사는 건 어떻냐면..."



우리 동네는 외곽의 작은 신개발 구역이다. 아파트 몇 동과 오피스텔 몇 채, 텅 빈 상가 건물들이 듬성듬성 서있다. 원래라면 북적거리는 신도시가 되었어야 하는데 신개발 사업으로 추진된 대형쇼핑몰의 공사가 무기한 중단되며 길고양이보다 걸어 다니는 사람을 마주치기 더 힘든 작은 동네가 되었다. 외딴곳에 떨어져 있는데 온통 비어버린 건물뿐이어서 걷다 보면 스산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이 근방에서는 꽤 인기 있는 베드타운이다. 싼 가격에 좋은 컨디션의 신축 매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망해버린 신도시'라는 장난 섞인 별명으로 불려도 만족한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모든 게 기대 이상이었다. 직전에 살던 서울 중심가 단칸방의 절반 가격으로 신축 투룸 오피스텔이라니.. 주어진 예산 안에서 평수와 컨디션 모두 만족스러운 집을 보고,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방 구경을 온 날부터 이것저것 집을 이쁘게 꾸며놓고 살아갈 모습에 이삿날만 줄곧 기다려왔다. 그 덕에 서울을 떠난다는 아쉬움 하나 없이 이곳으로 건너왔다. 자취한 이래 처음으로 내가 생각한 대로 내 취향대로 집을 꾸며가면서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파란색 수납장, 이쁜 조명, 디퓨저 등등 좋아하는 것들로 집을 가득 채워나가다 보니 새 집에 적응하는데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거긴 상권이 너무 없어.’ ‘너무 외곽이라 밥 사 먹기 힘들어.’ 등등 빛 좋은 개살구라며 이 동네를 반대하던 친구들이 했던 말이 요즘 들어 하나둘씩 체감된다.


우리 동네는 당근마켓 사용이 안된다. 너무 사람이 없어서인가, 최대로 검색지역을 확대해서 설정해 놔도 별로 활성화된 것 같지 않다. 그동안 좋은 거래들로 쌓아온 내 당근 온도에 나름 자부심도 있었는데 아쉽다. 처음에는 이사 오면서 가구들을 새로 사서 이용할 일이 적어 별로 불편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간단하게 내 돈 주고 사기 아까운 것들을 빠르게 중고거래로 구할 수 없는 게 불편하긴 하다.


우리 동네에 살다 보면 배민 VIP가 될 수 있다. 서울에 살 때는 나름 집 근처에 자주 가던 백반집, 김밥집 등 단골 식당들이 있었는데, 여기는 근처에 식당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배민을 애용하곤 한다. 매 끼니를 모두 집에서 해결할 수는 없다. 게다가 배달시키는 식당들이 멀어서 추가배달료가 붙어서 음식값을 빼고 배달료만으로 5000원에서 많게는 8000원까지 나간다. 안타깝지만 일주일에 몇 끼니만 시켜 먹어도 돈이 줄줄 새어나간다. 정말 대책이 시급하다.


때로는 북적이는 동네가 그리워서 이사를 가려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집의 신축 컨디션 앞에선 마음이 약해진다. 햇살이 쏟아지는 통창, 깔끔한 시스템 에어컨, 새로 한 도배와 장판,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실내 환기 시스템 등등 끝도 없는 편의 기능들을 포기할 생각에 그냥 이사를 포기한다. 한 번 문명을 경험하면 다시 불편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무래도 이 동네의 덫에 걸린 것 같다.


완벽한 집은 없다. 살다 보니 조금은 불편하지만, 당근보다 배민을 자주 키게 되는 동네지만, 그래도 우리 집이 좋아서 나는 내년에도 이 동네에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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