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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꽃쌤 Mar 11. 2019

중국 광저우의 국제학교 1학년 공개수업 참관 후기

"명화야 집에 빈 방 있어. 놀러와도 돼."

1월말, 중국 광저우에 사는 언니와 생일 축하할 겸 보이스톡을 나누다 언니가 툭, 던진 말에 이내 마음이 흔들렸다.

'통장 잔고가 너 지금 이 시기에 해외 여행 가는 건 과욕이라고 말하고 있어. 가지마. 조용히 새학기나 준비해.'

'지금 이깟 돈이 문제야?시간 있고 기회 있을 때 가야지! 나중엔 돈이 있어도 못 갈 수 있어.돈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다음 달에 다시 월급이 들어오잖아.'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결국 구정 때 항공권을 질러버렸다. 광저우 자체가 관광지는 아닌터라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항공권도 싼 편은 아니었지만(같은 기간 홍콩 항공권의 2배에 살짝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 해외 파견 나간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형부는 경찰인데 영사관에 파견 나가 영사로 근무중이시고, 언니는 초등교사인데 동반 휴직 중이다. 그냥 그들의 일상생활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새학기가 코 앞인데 뭔가 우울답답찌뿌둥한 기분을 상큼하게 환기 시키고 싶었다. 언니와 나는 전주교대 휴학생 신분으로 대성학원에서 만났다. 언니는 나의 고등학교 선배였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전주교대 졸업동기가 되었고, 언니는 경기도를 거쳐 서울에서, 나는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전북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늘 나보다 더 '큰 물'에서 노는 언니를 만나면 단 몇 시간만의 대화로도 속이 뻥 뚫리고, 눈이 트이고, 머리가 씻기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관점과 좋은 기운을 얻고 싶었다.


2월 27일~3월 2일이라는 무모한 일정이 가능했던 건 삼일절이 금요일이라 연휴가 되었다는 것, 나는 작년과 같은 교실에서 같은 학년, 같은 업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임을 미리 밝힌다.


26일 오후까지 정신없이 새학기 준비를 하고, 송별 회식을 한 후, 밤 9시쯤 집에 돌아와 캐리어에 짐을 싸고(광저우 날씨를 종잡을 수 없어 거의 사계절 옷을 다 넣었다^^;;), 교육과정 기초 자료와 연간 업무 계획 등 제출해야하는 것들을 다 해서 메신저로 발송했다. 후다닥 다시 씻고 화장하고 리무진에 몸을 실으니 27일 새벽 2시, 꿀잠 자고 일어나니 공항에 도착하여 4시반, 비행기 뜨며 가족 단톡방에 인사하고 통신사에 전화 걸어 일시정지하니 아침 8시반, 광저우에 도착하니 낮 12시반이었다.


첫날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언니가 준비해 둔 빈 방은 호텔처럼 멋졌고(언니네 아파트 자체가 멋졌다), 음식은 모든 게 다 맛있었다(맛있는 데만 데려갔겠지). 조경이 잘 된 광저우 도시 전체와 언니네 아파트 단지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목이 아프지 않았다. 분명 하늘은 잿빛인데 말이다. 언니는 한국의 수목원 뺨을 후려치는 광저우의 도시 조경과 높은 습도 때문이라 했다.
실제로 처음 만난 형부와 조카는 선량한 인상의 훈남들이었다. 조카는 12년생 남자아이로 한국에선 올 3월 취학 대상이지만 작년에 광저우로 가게 되며 9월부터 미국계 국제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명화야, 공교롭게도 내일이 두 달에 한번씩 있는 공개수업일인데 같이 갈래?"

"언니, 나 너무 좋아. 완전 가고 싶어!"

언니는 미안해하며 말했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학교의 1학년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건 흔하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나는 너무도 설레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침 8시15분부터 공개 수업이라니. 낯설었다. 우리는 보통 10시 안짝으로 수업 공개 시간을 잡지 않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출근 전 잠시라도 학교에 들러 아이의 수업 참여 모습을 보고 가라는 뜻 같았다. 1교시 수업공개, 이것부터 참으로 신박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학교에 아무나 못 들어간다. 저런 ID카드가 있어야만 신원확인 후 들어갈 수 있다. 앞면에는 저렇게 학교 로고가, 뒷면에는 우리의 학생증처럼 학생의 사진과 이름, 바코드가 박혀있다. 세대별로 3개씩 배부된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갔을 땐 수업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역할극을 한다고 들었다.

이게 전부다. 종이를 들고 나와서 그냥 읽는다.

'정말 이게 전부인가?'

전부다. 하긴, 2달에 한번씩 수업 공개를 하는데 어떻게 매번 야단법석을 떨겠는가!

'설마, 그래도 뭔가 더 있겠지.'

있었다. 이거다.

다같이 나와서 그냥 종이를 들고 읽는다. 옆반의 1학년 수업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까?다르다해도 놀랍다. 서로 내용을 비슷하게 맞추며, 행여나 우리 반이 다른 반보다 부족하거나, 다른 반이 우리 반보다 잘할까봐, 내가 튈까봐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는 우리네 '평범한' '보통의' 실정과 많이 다르다.


초등학교를 다녀본 지 오래 되신 형부는 바닥의 원형 카패트가 충격적이었다 하셨는데 요즘은 한국도 저학년이나 20명 이하인 학급은 놀이용 매트 등을 사용하여 바닥에 앉혀놓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고 말씀 드렸다.


'수업 시작한지 15분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이제 뭐하지?'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것 같은데... 궁금해지다 못해 걱정(?)이 되었다.

다음엔 이렇게 각자 교과서(라지만 내 눈엔 그림책)를 꺼내와 부모님께 읽어드린다. 자식의 읽기 수준은 부모가 직접 판단하는 거다. 갑자기 가족끼리 모여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건 이거.

책상에만 앉아서 하는 게 아니다. 교실 곳곳, 편한 곳, 마음에 드는 곳에서 한다. 심지어 저기 문 앞에 있는 여자아이는 아빠가 늦게 왔다. 그 때까지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아빠가 오자 반갑게 맞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즉, 우리 부모님 안 왔다고 울고 짜는 아이가 없었으며, 부모님이 안 온 아이도 한 명도 없었다는 거.
부모님들은 별 말이 없었다. 거의 대부분 미소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가 읽는 문장을,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실 16,17학년도에 수업혁신학년을 할 때 나도 이런 식의 공개 수업을 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방식의 수업 공개가 다른 사람들(상상 가능한 모든 범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다소 신경이 쓰였으며(쓰였지만 그냥 했다^^;;), 거의 대부분의 부모님이 오시지 않아(아마 못 오신 거겠지만)친구들끼리 서로 포트폴리오를 보고 보여주며 배움나눔을 했고, 그나마 오신 부모님들은 자녀를 칭찬해 주시기도 했지만 못한 점을 지적하시거나 더 잘하지 못함을 꾸짖으셔서 급기야 울음을 터뜨린 아이도 있었다는 것.


옛 생각이 나 만감이 교차하는데 저 책읽기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난 혼자 교실 곳곳을 구경했다. 담임 선생님도 나처럼 교실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학생과 부모 사이에 개입을 하진 않았다. 그 시간은 오롯이 학생과 부모의 것이었다.

선생님의 손글씨로 게시한 학급의 철학과 규칙들. 올해는 나도 손글씨 게시물에 도전해봐야겠다. 실수를 장려하다니, 멋지다! 갑자기 그림책 '틀려도 괜찮아'가 떠올랐다. 발표할 때만 틀려도 괜찮겠는가?어른들의 삶도 실수투성이의 시행착오의 과정인데 하물며 이제 막 입학한 어린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성찰하는 1학년이라니...!!! 생각해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다니...!!! 우리나라는 시키는대로 하거나, 시키는대로 해야만 혼나지 않는데...

아이패드로 수업을 한다. 2인1대.

이 수학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보고 싶었다. 다양한 풀이 방법이 오답, 실명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담임 교사의 책상. 저 노트북 한대로100% 수업만 한다고 한다. 심지어 학생 출결도 행정직원이 처리한단다.
'아, 학생 출결도 잡무였구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교실 한켠의 1인 사무실 같은 한국의 교사 책상이 부끄럽고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계속 앉아 계셔서 사진을 못 찍었는데 이 담임교사 자리 대각선 맞은 편에 우리 식 '행정직원의 사무용' 책상에 한 여자분이 앉아계셨다.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사람이었다. 나중에 언니에게 물으니 보조교사라고 했다.

"교실에 특수아동이 없었는데?"

"아니~ 영어가 서투른 아이들 중국어로 도와주는 교사."

"언니, 대박이다."

"여기 1년에 학비가 얼만데... 우리도 나라에서 대주니 다니는 거지 보통 사람은 힘들어."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학교 안에 펼쳐진 멋진 조경.

"광저우 시도 그렇고, 우리 아파트도 그렇고, 이 학교도 그렇고 싼 인건비로 이렇게 조경을 할 수 있는 거야. 아무리 임금이 싸도 일하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서. 나무랑 꽃 정말 자주 바뀐다. 학비가 비싼만큼 많은 행정 인력을 고용해서 교사는 진짜 수업만 해. 여긴 상담 기간에 애들 수업 쉬어. 수업 끝나고 상담하고 그런 거 없다. 그래서 애들도 부모와 함께 상담 받아야 해."

교실 문에는 우리처럼 1반, 2반 표시가 아니라 선생님의 이름이 써있었다. 즉, '@@선생님의 반'이라는 거다.

학교를 빠져나가며 본 놀이터.

"여기는 우리랑 놀이터의 개념이 달라. 우리는 안전한지를 철저히 따진 후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담임교사에게 책임을 묻잖아. 여기는 적당히 위험하게 만들어놓고는 다치면 아이의 잘못이라고 해. 그러니까 안 다치려면 네가 조심하라고."




한국, 아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전북에서 분명히 이슈화 되고 있는 일상수업 공개, 교육의 본질을 찾자는 혁신 교육, 교사 교육과정, 놀이공간의 재구조화 들인데 이 모든 게 이미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을 목격한 건 실로 놀라웠다.


학력관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 아이가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똑같을 것이다. 10년, 아니 당장 2~3년 후에라도 지금은 두려워서 거부하고, 낯설어서 어색했던 것들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더 멀리 내다보며 살아야겠단 결심을 했고, 그 결심에 격려를 들은 느낌이다.


두서도 없고, 개인적 견문만 있는 어느 지방 도시 초등교사의 국제학교 공개 수업 참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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