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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꽃쌤 Jun 03. 2019

1학년 담임이라 좋은 점

적어도 나에게는...

"그 힘든 길을 왜 또...... 내년에는 꼭 고학년 해. 그래야 다시 충전하지. 왔다갔다 해야해."

올해 또 1학년 담임을 자원한 나에게 주변에서 위로 겸 건넨 조언이다. 작년에야 원하지 않았는데 전입한 학교에서 덜컥 주셔서 받게 되었다지만 올해는 선택의 여지도 있었는데 굳이, 왜, 또?


하는 분들께 내가 1학년을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해명'해 보겠다.



하나. 여유있는 교육과정

저학년 교육과정은 분명, 학습보다는 놀이나 체험 위주고, 학습도 함께 놀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 20대 기간제 교사 시절엔 분명 이게 어려웠다. 아무리 교과서를 봐도 10분이면 끝날 내용들인데 대체 40분이란 '분량'이 어찌 나온단 말인가! 사실 10분도 마음을 후하게 쓴 거다. 가르칠 내용이 없다. <봄놀이를 가요> <봄을 느껴요> 이게 가르칠 내용인가!!!!!


하지만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가 들면서 바뀐 건지, 교사로서 경력과 경험이 쌓여 바뀐 건지, 일제식 평가가 사라지고 교육과정 재구성과 주제통합수업을 하며 삶에 유의미하고 진정성 있는 수업을 하다보니 바뀐 건지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이제 저 교육과정이 좋다.


공부를 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교육과정 안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느낀다. 낯선 학교에 오면 한번 쭉 둘러보고, 각 실에서 지킬 규칙과 예절(슬프게도 이 '쉽게 느껴지는' 내용들을 어찌 된 일인지 6학년 때까지 계속 배운다. 복도에서 뛰지 않고 걷기, 급식실에서 식사 후 잔반 처리 및 식판 정리하는 법, 화장실에서 용변 후 물 내리기, 까지)에 대해 배우고, 봄이 오면 봄을 느끼고, 여름이 오면 여름을 겪는다. 가족에 대해 알아보고, 나라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삶과 생활 자체를 공부하는 이 학습 내용들이 나는 좋다. 나는 아이들 삶과 생활에 가까이 다가가 역시 유의미하고 진정성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1년 안에 반드시 터득해야하는 기초한글문해도, 수개념도 이 안에서 살면서, 놀면서 다 배울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이 과정 속에서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가까이 지내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둘. 그냥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에너지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대한 증인이나 증거, 일화는 부끄러울 정도로 많다.) 아이들은 늘 즐겁고 신난다. 물론 간혹 개인 사정에 따라 무기력하거나 우울해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일단,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다.


매일 아침 양볼이 터질듯 웃으며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를 외치며 교실문을 열어제끼는 이 귀염둥이들 덕에, 고맙게도, 나역시 덩달아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다.

그나마 나도 어린시절 한가락(?) 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 에너지를 소화.흡수(?) 해줄 수 있다.


셋. 이유가 없는 애정+솔직한 표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좋아하고 사랑한단다. 꿀 떨어지는 미소와 "사랑해요" 라는 잦은 돌직구 고백, 거침없는 포옹에 작년에는 깜짝 놀랐었다.

'얘들이 나를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했던 당황도 잠시, 나는 이내 의심과 회의를 접었다.

"내일도 쉬고, 모레부터 토요일이라 오랫동안 못 보니까 오늘도 안아주세요."

옆 반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금요 포옹>에 나는 적응하다 못해 녹아버렸다. 저 멀리서부터 달려와 안기는 녀석들의 뜨거운 체온은 그 어떤 지침서나 연수, 교육보다 나를 '더 좋은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게 했다.


넷. 가까운 앞날을 준비

1학년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나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다가올 지도 모르는 나의 앞날을 준비한다.

나의 앞날이란 점점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는 것과 혹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낳게 될 자녀를 키우는 것이다.


몇년 전 집 주차장에 주차를 하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지낸 앞집 할머니가 길에서 두 팔과 두 발로 기어다니시는 걸 보았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뛰어넘는 '네발 보행'이었다. 나이가 들면 아기가 된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요즘 우리 부모님과 우리반 아이들을 보면 더 확실하다. 방금 전에 한 말도 못 알아 듣거나, 바로 잊는다. 그리고 슬프게도 고집을 부린다.  더 세세한 챙김과 보살핌, 돌봄이 필요하다.


쉽게 적응하기 힘든, 많은 인내와 체력이 필요한 이 상황에 미리 나를 노출시켜 내공을 쌓아 놓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더 노력한다.


다섯. 현재와 어린 시절에 대한 성찰

너무 활발하거나, 편식이 심하거나, 말을 안 듣는 아이를 보면 '나도 이랬겠지. 엄마가 참 힘들었겠다' 싶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도 크고 깊어 담임교사가 전하는 자녀의 문제행동을 들으며 슬픔과 고통스러움에 눈물 흘리는 엄마들을 보면 엄마가 나를 키우며 느꼈을 슬픔과 흘렸을 눈물을 생각한다.


아침 등굣길에 학교 건물 현관 앞에서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보고 싶으니 가지 말라며 우는 아이를 보면 나도 눈물이 난다. 독립하여 혼자 살기 시작하니 낯선 곳에 적응해야하는 입학 초 3월의 1학년 마음뿐 아니라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주는 불안과 슬픔, 그리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더 슬픈 건, 내가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이걸 깨달으려고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제 발로 집을 뛰쳐나왔나보다, 싶다.


등교 준비 중 갑자기 동생이 때려서, 아무리 하지말라, 고 말 해도 계속 때리길래 자기도 같이 때렸다가 역시 출근 준비하던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자기만 혼나 억울하다고 펑펑 우는 아이를 볼 때도 같이 눈물이 났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 아침에 남편과 두 아이까지 신경 쓸 게 너무 많은 엄마가 급한 마음에 그나마 말귀 더 알아듣는 첫째만 혼냈나보다 싶어서. 어린 시절 내가 생각나 아이에게 공감된 것뿐 아니라 현재 그 엄마의 처지도 너무 안타까워서.


내 자식이 혹여 너무 튀거나 특이하지는 않는지,  뒤쳐지지는 않는지, 친구들과 무던히 잘 지내고 이른바 '사회생활'이라는 공동체 생활에 무리없이 잘 적응하는지, 노심초사하며 문의하는 엄마들을 보면 날 두고 같은 고민을 했을 나의 엄마와 현재 부모님을 두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내가 교차되어 또 눈물이 난다. 엄마가 동호회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지, 누군가 엄마를 무시하거나 괴롭히지는 않는지, 아빠가 오늘 처음 간 동호회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렸는지, 친구는 잘 사귀었는지 자꾸자꾸 궁금한 마음에 귀찮아 하는데도 계속 질문을 한다.


엄마와 어린 자식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1학년 담임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내 삶을 더 재미있고,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힘든 점도 있다.


힘든 점은...... 이 글의 통일성과 맥락적 일관성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생략하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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