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콧물 질질 짜며 힘겹게 '10 가르기' 나머지 공부를 한 날 오후, 내 안의 미안한 마음을 털어내려
"통과"
소리에 해방과 탈출의 기쁨으로 함박웃음 지으며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서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줬더니 ㅎㅂ이란 녀석이 교실을 떠나기 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건넨 조언이다.
'야, 선생님이 그런 뜻으로 금요일마다 안아주는 거 아니거든?'
라고 생각하자마자 질문이 훅훅 날아든다.
"선생님, 내일 학교 안 와요?"
"선생님, 내일 토요일이에요?"
그럴 리가!
"학교 오지요. 오늘은 수요일이고, 내일은 목요일이니까요."
아이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ㅎㅂ이는 나를 보며, 나머지 아이들은 그런 ㅎㅂ이를 보며.
"그런데 왜 안아줘떠요?"
어리광쟁이 ㅎㅂ이의 질문에 나는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진심으로 대답한다.
"사랑하니까요."
"아까는 혼내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잖아요."
"그거 두 개 같은 뜻이에요."
"이잉~?"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왠지 좋은 말인 것 같아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실실 웃기 시작한 ㅎㅂ이.
그래, 사랑한다! 아주 그냥 징그럽게!
장면 둘.
"선생님, 오늘이 금요일 아니라고 안 안아주면 안돼요. 내일도 학교 안 오고 모레도 학교 안 오니까 오늘은 금요일 같은 날이에요. 그러니까 꼭 안아줘야 해요."
개교기념일과 연이은 개천절을 앞둔 18년 10월 1일 월요일, 하교를 앞둔 시각, 우리 반 도도공주 ㅅ이의 갑작스러운 '돌려차기 사랑 고백'에 녹아내린 나는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었다.
불과 몇 년 전, 연 3회 방학 날 포옹조차 어색하고 부끄러워 벽돌처럼 뻣뻣했던 나란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언어적 표현 없이 얼렁뚱땅 스킨십으로 유야무야 감정을 수습하려는 '나쁜 남자친구'의 마음은 절대로 아니지만, 확실히 스킨십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
특히나 '포옹'에는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그리운 마음, 서러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까지...... 아니 도대체 동시에 어울리기 어려운 갖가지 감정들을 적절하면서도진실되게 전달해준다.
"어려서부터 너희들을 별로 안 안아주고 키웠더니... 이제 와 한 번씩 안아보려니 너무 어색해......"
어느 날 문득, 엄마의 몇 년 전 혼잣말이 떠올랐다. 한숨 섞인 그 말에는 깊은 후회와 짙은 아쉬움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교실에서 포옹이란 걸 해보지 않다가, 남들이 금요일 하교 시간이나 하다못해 방학 날에라도 아이들을 안아준다는 말에 오래도록 고민했던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엄마, 앞으로는 헤어질 때마다 내가 안아줄게."
엄마는 우리 반 아이들처럼 기뻐했다. 처음 몇 번 서로 안아줄 때는 이유 없이 왈칵 눈물이 나곤 했다. 지금은 마냥 편안하고 따뜻하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은 오히려 의식처럼 약속해놓는 게 좋은 것 같다. 어린 시절의 포옹도, 노년기의 포옹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다. 하지만 이 포옹의 순간들은 머릿속에선 사라져도 심장과 온몸에 습관처럼, 흔적이 되어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이 오래도록 이 삶을 살아내고, 버텨내고, 이겨내는 힘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