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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꽃쌤 Dec 17. 2018

당신의 생각을 말해줘요

권력자나 타인의 의중, 대다수의 여론이 아니라

업무 담당자로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야할 때가 종종 있다.

"선생님, ~가 ~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 결정을 해야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답은 거의 셋 중 하나다. 모두 되묻는 질문이라 대답이라 말하기도 애매하다.


"장, 감님 생각은 무엇인가요?"

"담당자인 선생님의 생각은 어때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렇게 묻고는 대부분 그에 준하는 내용을 대답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가도 마지막 결론은 저 셋 중 한쪽의 의견으로 귀결된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관리자(교장, 교감)=담당자=다른 사람

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니!



G20 서울정상회담 폐막식 때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었던 오바마 대통령 앞에서 누구도 손을 들지 않고 입을 열지 않아 결국 중국 기자에게 질문의 기회가 넘어갔던 일을 생각해보겠다.


직전까지 미국 기자들이 중간 선거 참패와 한미 FTA 결렬에 따른 오바마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를 집중 거론하자 분위기 환기를 위해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돌렸던 '난감한' 상황이기는 했다.

뭐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대로 가벼운 질문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권유에도 침묵은 이어졌고 결국 질문권을 가져간 중국 기자는

'최근 미국정부가 내놓은 여러 대책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역시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남을 시키겠다는데도 굳이 발언권을 달라고 졸라(발언권 없이 말하지는 않았다. 결국은 발언권을 얻고 말했다.), 과감한 질문과 소신 있는 의견을 던지는 사람이 나의 동료라면, 그 사람과 회의를 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면, 당신은 그 동료와 그 회의에 대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될까?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라도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 더 생각해보고 가려한다.

의사 결정은 왜 하는 걸까?

해야 하니까? 하라고 시켜서?

이건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 더 바람직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함 아닌가!

우리는 왜,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이 취지와 목표에 적절한 언행을 보이기 어려운 걸까?


우리는 왜 말을 하지 않을까? 질문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할 수 있다.

-그 의견에 대해 즉각적인 비난이나 무시를 받았던, 또는 받는 걸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나 기억 때문.

-싸움에 가까운 토의.토론 후, 신뢰와 관계가 깨졌거나 조직의 분위기를 망쳤다는 수근거림을 들었던 경험이나 기억 때문.

-괜히 말 보태서 회의 늦게 끝나게 한다는 원성이나 힐난을 들었던,  또는 듣는 걸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나 기억 때문.

-말해봤자 소용 없음. 결론은 정해져 있었거나 결정된 내용이 회의 후 번복된 경험이나 기억 때문.


결국 의견이 오고가는 과정보다 공동체의 의가 상하지 않고 윗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빨리 의사 결정을 하려는 분위기가 회의 참여자들의 입을 닫게 만드는 것이다.


효율.
빠른 경제 성장을 추구한 산업 사회를 거쳤기 때문에, 워라밸을 울부짖는 과로 사회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이 가치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나보다.


여기까지는 성인의 경우였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데엔 이 효율성 말고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2016년, 5학년 담임을 할 때 수시로 아이들과 토의,토론을 했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게 했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며 나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담임 교사인 내 마음을 맞추려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마음 속으로 정해놓은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퀴즈에 도전하듯 자꾸 그것을 맞추려 했다.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지난 몇 년간 일제식 정기고사와 정해진 진도에 쫓기느라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함께 대화 나눌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던 게 미안하고 힘들었었다. 그러다 그 해 처음으로 수업 혁신 학년을 하며 다른 학년보다 한 해 빨리, 중간.기말고사를 폐지하고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중복되는 내용은 하나로 묶고, 너무 어렵거나 쉬운 내용, 아이들에게 유의미하거나 아이들이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 내용에 시간 안배를 달리 하며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을 확보했다고 좋아했는데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 학생들이라니!


한 학기가 걸렸다.
'정답은 없으니 네 생각을 말해 보렴. 네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상처 주려는 게 아니라면 너의 의견은 무엇이든 받아들여질 수 있고, 너는 네 말과 무관하게 항상 안전하단다. 단, 너도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줘야 한단다.'

라는 내 생각이 아이들 마음에 닿기까지.


평소에는 조용히 선생님 말씀을 듣기만 하던 아이들이 토의가 시작되면 진솔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친구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박하고, 이의를 제기하고,생각을 바꾸고, 동의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교사 입장에선 꽤나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나의 학급경영 방침이나 생활 지도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고, 학급 규칙의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너무 반응이 없어 전담 선생님들이 답답하고 속터져라 했던 우리반 아이들의 이런 능동적인 태도는 참 신기하고 놀라웠다. 나와 함께 토의.토론을 하며 규칙을 바꾸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듣고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각자 자신의 생각이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을 고쳐나갔던 순간의 기억들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강하고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러다 3학년을 맡게 되었다. 확실히, 3학년 아이들은 5학년보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잘 말했다.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정답'이라는 건 결국 학습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이 아이들은 다른 '문제'가 있었다. 내가 누구 한명의 대답이나 반응을 언급하거나 칭찬하면 다음 시간부터 모두 다 그 친구와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아이들에겐 교사의 인정과 칭찬이 곧 '정답'이었던 것이다.


이걸 어떻게 바꿔야하나... 고민을 하다 결국 조금이라도 독창성과 진솔함, 재치, 개성이 담긴 의견은 일일이 다 칭찬을 해주었다. 확실히 나이가 어리니 반응은 빨리 왔다. 아이들은 '나만의 것'을 찾아 고민하기 시작했고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올해는 1학년 담임이다. 고민할 게 없었다. 전국의 모든 1학년들이 다 이렇진 않겠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한명 한명 모두 다 개성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스스럼없이 잘 표현한다. 어른이 듣기에도 신통하고 방통한 말과 행동을 곧잘 한다. 덕분에 올 한해 수업이 참 활기차고 재미 있었다. 허나 찬바람 불기 시작한 요즘 나에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과연 내년 담임 선생님도 아이들의 이런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냐, 는 것이다. 전혀 다른 선생님을 만난다면 아이들은
'작년엔 이러지 않았는데.'하며 의아해하거나 '작년에 제대로 못 배웠군' 하며 나를 원망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원망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통념이나 분위기가 '당당한 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을까?사실 이 담론까지 가기 전에도 어려움은 즐비하다.
일단 한명 한명이 하는 말을 듣고 대답해주고 의미있는 것은 공론화하여 다같이 이야기하고 생각해보는 데엔 많은 시간과 노력, 체력이 필요하다. 중간중간 '교사로서 이걸 수용해야하나, 자르고 지도해야 하나?' 고민 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관점이나 철학이 다르다면 나는 무능하거나 서투른 교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소신 껏 했지만 슬그머니 타인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나는 자기 모순의 늪에 조용히 빠져버렸다. 무릎 정도 차오른 것 같다. 오늘 밤까지만 고민하고 내일은 이 늪을 박차고 나와 당당해져야겠다. 이러니 내가 꼭 참교사 같지만 나는 거침없이 벌컥벌컥 화 잘 내는 '아직도 수양 중인' 교사다.



이제, 어른들은 안다. 세상에 정답(正答, 옳은 답)은 없다는 걸. 그러니 '정해진 답'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고 결정하기 나름이고 움직이기 나름이다.

그러니 제발.

타인을 비방하거나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셈이 아니라 적절한 근거와 합리성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건강하고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말했다면, 아니 그 언저리 어딘가에서 변죽만 울리는 의견이라도 일단 말을 꺼냈다면, 그 사람이 더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거나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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