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맛술
신혼집을 정리하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했다.
이사만 생각하느라 놓친 게 있었다. 바로… 어린이집이었다. 이사 갈 동네엔 또래 아이들이 많았고, 막 생겨난 신도시라 어린이집이 귀했다. 맞벌이도 다자녀도 아니었기에 입소 순위는 한없이 떨어졌다. 결국 중간 입소에 실패하였고, 다음 해 3월까지 가정보육을 해야 했다.
이삿짐 정리도 덜 된 집에서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라니... 몸은 바빴지만 마음은 나른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라는 긍정회로엔 매번 오류가 났다. 치우지 못한 이삿짐들, 휑한 아파트 주변, 공실만 가득 한 상가, 갓 심은 겨울나무들, 한창 공사 중인 옆 아파트, 나는 겨울 한가운데 있었다.
까톡!
[단지 내 독서모임!]
- 책 읽고 소소하게 소감나누기.
- 자녀, 시댁, 종교이야기 지양.
- 다단계 금지.
- 책과 '나'이야기하실 분.
- 긍정에너지 나눠요.!
엄마가 아닌 '나'로 어른사람과 만나서 내가 좋아하는 걸 공유할 수 있는 모임. 얼마나 매력적인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참여하겠다는 메시지가 줄줄이 올라왔다. 이렇게 있다간 놓치겠다 싶어 나도 황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저.. 저도 독서모임 신청합니다"
그렇게 나는 독서모임에 합류하게 되었고 2년 가까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 아파트는 붕세권이 되었고 공사 중이던 옆 아파트는 입주를 끝냈다. 공실만 가득하던 상가에도 하나하나 이름이 생겼고, 앙상했던 겨울나무도 제법 살이 붙었다.
나는 여전히 겨울 한가운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