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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

찰나의 맛술

by 맛술

둘째가 태어난 해에 코로나가 창궐했다. 전염병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보육했었다. 신생아와 세 살 아이를 돌보느라 나를 돌볼 시간은 없었다. 세상과 단절된 채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의 카톡 프로필 문구가 생각난다.

‘존버’


그 후 이사를 하게 되면서 계획에 없던 가정 보육을 다시 해야 했다. 모든 게 내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지금을 견디는 상황이었다. 육아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자책도 많이 했었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우스갯소리로 평생 효도는 3살에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이 제일 그리울 거란 걸 어른들에게 익히 들어 알지만 나는 왜 고달프기만 했을까?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어느 순간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 다. 왜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나'라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남편과 가족들을 원망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그렇게라도 버티지 않았더라면 지금 의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살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때 삶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 삶을 즐길 아이디어를 내서 그걸 실천에 옮겼더라면 이렇게까지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김혜남) 중.



나에게도 삶을 즐길 나만의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첫 번째 방법은 사람을 만나는 거였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계산하지 않는 만남. 그렇다고 너무 가깝진 않은 사이. 그쯤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났다.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내쉬는 것처럼. 내게도 숨을 고르는 시간 중 하나였다.


두 번째 방법은 일상을 깊이 바라보며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하루를 보내는 방식은 비슷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일하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밥 먹고 잠을 자고 다시 아침. 느슨한 루틴처럼 보이는 일상 사이사이를 돋보기로 확대해 본다면?.. 아이와 함께하는 나의 일상 사이엔 많은 일이 있다. 아이가 첫니가 올라온 날, 걸음마를 하게 된 날, 넘어져서 피가 나는 아이와 나도 같이 운 날, 빨간 나뭇잎을 맵다고 말했던 날, 지나고 보면 행복의 찰나를 잊을 때가 많았다. 뭉퉁거려 ‘그때 좋았지’라는 기억만 희미하게 떠올랐었다.

그때부터 야금야금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함께.


삶은 과거에 머물러있거나 막연한 미래를 견디는 게 아니었다. 아주 보통의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슬-쩍 끼워가며 매일의 오늘을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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