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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노인의 이중적 삶

새벽의 헐크, 낮의 우아함

낮에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밤이 되면 분노와 폭력으로 돌변하는 84세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삶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해를 시도했던 그녀의 행동 속에는 평생 쌓아온 슬픔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은 노인의 이중적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가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지금 우리가 어떤 삶의 흔적을 쌓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낮과 밤 사이, 두 개의 얼굴

환한 대낮에는 이해심 많고 배려 넘치는 어른의 모습입니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건 대단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새벽만 되면 헐크로 변하는 사람, 84세 노인의 이중적인 모습은 돌봄 제공자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선생님, 나 물 좀 줘." "어르신은 입으로 물은 안 돼요." "가만히 좀 줘. 나 너무 힘들어."

콧줄로 음식을 섭취하는 노인에게 물을 제공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간절한 요청에 돌봄 제공자는 간호과에 문의한 후 30cc만 조심스럽게 제공합니다. 그 순간 노인의 표정에서는 감사함이 묻어납니다.

"고마워."

이런 평화로운 상호작용은 낮 동안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야근 시간, 특히 새벽이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갑자기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르는 노인의 모습은 낮 동안의 우아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어르신, 왜 그래요?" "당신이 뭔 상관이여!"

이 극명한 대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노인의 외모는 너무나 우아한데,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회의 시간에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노인은 병원에 와서도 여러 번 자해를 시도했으며, 그 이유는 극도로 심한 우울증 때문이었습니다.

내면에 새겨진 삶의 상처들

낮과 밤의 극명한 차이는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단기 기억장애를 갖고 있지만 치매는 아닌 이 노인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합니다. 특히 밤이 되면, 어쩌면 고요함과 어둠이 그녀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고통을 일깨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평생 쌓아온 삶의 흔적이 있습니다. 우울증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상처와 고통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왜 그토록 깊은 우울증에 빠졌는지, 무엇이 그녀를 반복적인 자해 시도로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현재 행동이 과거 삶의 반영이라는 점입니다.

2남 3녀를 둔 그녀에게 가족의 방문은 거의 없습니다. 남편은 있지만, 그 역시 방문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혼자서 병상에 누워 콧줄로 영양을 공급받으며,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녀의 밤의 변화는 버려진 느낌, 외로움, 혹은 과거의 후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치매 노인들 사이에서 온전한 인지 능력을 가진 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요?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바꿀 수 없는 무력감은 그녀의 분노와 좌절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내일의 두려움과 오늘의 감사함

나훈아의 '테스형'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우리는 종종 웃음 뒤에 아픔을 숨깁니다. 그리고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라는 가사처럼, 우울증을 겪는 많은 이들에게 내일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만난 84세 노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낮 동안에는 자신을 추스르고 품위를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밤이 되면 내일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과거의 후회가 그녀를 덮쳐오는지도 모릅니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이 가사처럼, 그녀도 내면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왜 세상은 이렇게 힘든지, 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방문하지 않는지, 왜 자신은 이렇게 무력하게 누워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이 구절처럼, 그녀도 자신의 자녀들이 방문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자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삶의 흔적이 만드는 우리의 마지막

이 노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삶의 흔적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우리의 행동과 선택, 습관과 관계는 우리의 미래, 특히 노년기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그녀가 보여주는 낮과 밤의 이중성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빛과 그림자의 투쟁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으며, 삶의 경험에 따라 그 균형이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입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행동과 생각, 타인과의 관계는 시간이 흘러 우리의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인지 능력이 저하되어도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삶의 흔적입니다.

만약 우리가 분노와 원망, 후회로 가득 찬 삶을 산다면, 그 감정들은 우리의 노년기에도 여전히 남아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사랑과 감사, 용서와 이해로 가득 찬 삶을 산다면, 그 평화로움은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지금 여기, 천국을 만들어가는 방법

"정말 테스형이 갔던 곳은 천국이었을까? 사는 것이 고행인 그들이 가고 싶어 날마다 기도하는 곳 그곳일까? 지금이 천국일 순 없을까?"

이 마지막 질문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천국을 먼 미래, 죽음 이후의 어딘가에 있는 완벽한 장소로 상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천국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84세 노인을 돌보는 관리자는 "그녀를 이해하여 애쓰는 밤이 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일을 맞이하는 태양과 함께 그녀를 위로할 수 있는 가족의 방문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간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해와 공감, 타인을 위한 기도가 바로 지금 여기에 천국을 만드는 작은 씨앗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됩니다. 그때 우리도 그녀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낮에는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밤이 되면 내면의 고통과 두려움에 압도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두 얼굴의 간극은 더 커질 수도, 더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선한 삶을 산다는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또 베푸는 것.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 사랑을 표현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 우리의 삶의 흔적을 만들고, 그 흔적은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작은 희망

노인을 이해하려 애쓰는 관리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작은 희망을 발견합니다. 비록 노인은 밤에 헐크처럼 변하고, 때로는 자해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그녀를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노인의 행동 이면에 있는 아픔과 고통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고 미래의 우리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이해와 공감, 그리고 존중. 이러한 태도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치유합니다.

"신은 정말 있을까."라는 관리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행동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신의 손길 같은 위로와 이해를 제공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작은 천국을 만들어가는 것일 테니까요.

기억이 흐려지고 인지 능력이 저하되어도, 우리의 삶의 흔적은 남습니다. 그것이 불안과 분노, 후회의 흔적이 아닌, 사랑과 이해, 용서의 흔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마지막 순간에도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낮과 밤의 간극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벽에 헐크로 변하는 84세 노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가 쌓아가는 삶의 흔적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선한 삶, 이해와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 그 선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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