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어도 안했어야

치매 어르신의 방어기제와 돌봄의 순간들

창가의 빗소리가 들리는 요양원의 하루

요양원의 아침은 일찍 시작됩니다. 새벽 5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복도에 형광등이 하나둘 켜지고 간병인들의 부산한 발소리가 울립니다. 약 통에서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물을 따르는 소리, 침대 레일을 올리고 내리는 소리가 얼마 후 이어지는 노인들의 신음소리와 뒤섞입니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먼지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가을 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들고, 복도 끝 TV에서는 아침 뉴스가 작은 소리로 흘러나옵니다. 벽에 걸린 달력에는 붉은 매직으로 오늘 방문 예정인 보호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옆에는 병원 정기 검진 날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6인실 병실 안, 창가에 자리한 김 할머니는 벌써 세 번째 간병인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가씨, 아가씨!" 목소리는 다급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옆 침대의 박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이불을 걷어차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맞은편 침대의 이 할머니는 멍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봅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는 휠체어와 보행기로 북적입니다.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 휠체어에 앉아 중얼거리는 노인,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 노인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식당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은 오늘따라 유독 우중충합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 노인들의 관절통도 심해진 듯, 평소보다 더 많은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식당에 모인 얼굴들은 따듯한 죽 한 그릇에 조금씩 생기를 되찾습니다.

요양원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약 복용, 물리치료, 간단한 인지활동... 정해진 일과가 반복되는 가운데, 오늘은 어떤 작은 사건들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내가 했어도 안했제" - 방어기제가 살아있는 치매의 세계

방어기제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치매라는 질병의 네모상자에 있어도 방어기제는 살아있습니다.

오늘도 304호 최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무어라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때로는 웃음을 짓다가도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점심 식사 후, 약을 드리기 위해 다가간 김 간병인에게 할아버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쏘아봅니다.

"이 개같은 년이, 네가 감히 나한테 약을 먹이려고? 너 누구 집 자식인데 이 망할 년아!"

할아버지의 입에서 쏟아지는 욕설은 마치 폭포수처럼 거침없습니다. 평소 온화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집니다. 침을 튀기며 욕설을 내뱉는 모습에 주변의 다른 노인들도 놀라 쳐다봅니다.

"야! 이 썅년아! 너 지금 날 무시하냐?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 이 천하에 명문대 교수를 네가 감히..."

고운 말 한마디 없이 이어지는 욕설에 김 간병인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3년차 간병인인 그녀도 이런 폭언에는 여전히 당혹스럽습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게 대응합니다.

"할아버지, 그렇게 나쁜 말씀 하시면 안 돼요. 왜 욕을 하세요?"

할아버지는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맥없이 대답합니다.

"내가? 난 안 했어."

"할아버지, 지금 방금 욕하셨잖아요.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시선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내가 했어도 안 했제."

순간 김 간병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집니다. 짜증과 안타까움, 그리고 어딘가 귀여운 아이 같은 할아버지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방어기제는 인간의 본성인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곳의 어르신들 모두가 비슷한 모습입니다. 보통의 사회보다 더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엄청 친한 척 하시다가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갑자기 방어막을 치십니다. 사실 당신들 힘으로 아무것도 하실 수 없음에도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최 할아버지가 옆 침대 할머니의 물컵을 가져가 마셨습니다. 간병인이 지적하자 "내 컵인데 무슨 소리야!"라고 화를 내다가, 증거가 명백하자 "컵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뭘 그러냐"며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점심때는 식판을 떨어뜨려 바닥에 음식을 쏟고는 "누가 이런 걸 여기 놓았어!"라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다른 이유를 찾아 변명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습니다.

김 간병인은 약을 물에 타서 다시 최 할아버지에게 다가갑니다. 이번에는 부드러운 미소로 "할아버지, 이거 드시면 머리가 덜 아프실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순순히 약을 받아 마십니다.

"고맙소."

짧은 한마디와 함께 뻗어오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 그 손을 잡아주는 순간, 김 간병인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방금 전 욕설을 퍼붓던 그 입에서 나온 진심 어린 '고맙소'라는 말 한마디에 어떻게 화를 낼 수 있을까요?

방어의 벽 너머에 있는 진실한 마음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오죽 하겠습니까? 그동안 지내온 시절들이 한 편의 영화가 되어 스쳐지나갑니다. 병상에 누워 본인 스스로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노인들도 본인을 중심으로 방어를 하는데, 겪어온 지난 시간들이 순간 이해가 됩니다. "맞아, 인간이니까 그러겠지" 하며 동의하면서 나오는 문이 고독합니다.

저녁 무렵, 간병인 휴게실에서 김 간병인은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눕니다.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아침에는 천사 같더니, 점심때는 악마가 됐다가, 저녁에는 다시 천사가 되고...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베테랑 박 간병인이 따뜻한 미소로 답합니다.

"그게 치매니까. 그들은 시간여행자예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고... 우리는 그저 그 여행에 동행하는 사람들이지."

그 말에 김 간병인은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할아버지가 욕을 할 때는 어쩌면 60년 전 군대 시절의 그였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친절해질 때는 자신의 딸이나 손녀와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뇌 속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뒤섞여 있으니까요.

창밖으로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김 간병인은 오늘 최 할아버지가 보여준 다양한 모습들을 떠올립니다. 욕설을 내뱉던 모습, "내가 했어도 안 했제"라며 어린아이처럼 변명하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진심으로 "고맙소"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던 모습까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수많은 영혼들,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더하기와 빼기를 하고 있을까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늘 원망거리를 생각하는 자는 그 원망으로 인하여 갈 길이 멈춘다는 것을.

요양원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빗방울들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마치 누군가의 눈물처럼 보이는 그 빗방울을 바라보며, 김 간병인은 내일도 최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넬 자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어떤 모습의 할아버지가 그녀를 맞이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이 일의 특별함이자 아픔이기도 합니다.

아기천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늘 천사이기를 바라보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맨 몸으로 걸어갑니다. 오늘 밤은 어느 가슴속에서 잠들어 볼까요?

우리 모두의 미래, 치매와 함께하는 사회 만들기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도전입니다. 특히 욕설과 폭언, 때로는 폭력적인 행동을 마주해야 하는 간병인들의 고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알게 된 진실이 있습니다. 치매 노인들의 폭언과 이상행동은 그들의 본성이 아니라, 질병이 만들어낸 증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고령화되고 있고, 치매 환자의 수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치매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특히 "내가 했어도 안 했제"라는,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는 방어기제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절박한 노력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과 간병인들에게는 더 많은 사회적 지지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겪는 소진과 스트레스는 때로 환자 자체보다 주변의 무관심과 이해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왜 화를 내시죠?", "왜 기억을 못하세요?"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함께 있어 드릴게요"라는 말이 더 필요한 시간입니다.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莞花杉)-木月에게」에서 말한 것처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는 것이 어쩌면 치매와 함께하는 삶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세계에 우리가 함께 동행하며, 때로는 그들의 현실을 인정해주고, 때로는 부드럽게 우리의 현실로 안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 할아버지가 욕설을 퍼부을 때, 김 간병인의 마음은 상처받았지만, 그 뒤에 나온 "고맙소"라는 한마디가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치매 환자의 방어기제 뒤에 숨겨진 진심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면, 우리는 모두 조금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비가 그친 요양원의 밤, 김 간병인은 최 할아버지의 이불을 정리해줍니다. 잠든 할아버지의 얼굴은 평화롭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합니다. 내일은 또 어떤 할아버지가 그녀를 맞이할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가 했어도 안 했제"라고 말하는 그 순수한 방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오늘도 그녀는 비 젖은 머리를 말리며 내일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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