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스며드는 봄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오늘,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는 21대 대통령 선거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퇴직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건만, 이런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묘하게 설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40여 년간 조직생활을 하며 체득한 현실과, 여전히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상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혹시 이번에는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낡은 관습들이 조금이라도 변화의 조짐을 보일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몸담았던 조직은 작은 대한민국이었다. 신입사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그 순간부터 퇴직장을 받던 마지막 날까지, 나는 수많은 '연결고리'들을 목격해야 했다.
"김 대리, 자네 어느 대학 나왔나?" "박 과장은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최 부장이랑 상무님이 같은 동문회더라..."
이런 대화들이 일상이었고, 어느새 나 역시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술자리에서 형성되는 인맥들이 때로는 능력보다도 더 중요한 승진의 열쇠가 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후배의 이야기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했고, 업무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승진에서 밀려났다. 대신 그보다 늦게 입사한 서울 출신의 명문대 졸업생이 빠르게 승진 가도를 달렸다.
"실력으로 승부하자"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던지. 그 후배는 결국 회사를 떠났고, 나는 그를 배웅하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더욱 씁쓸했던 것은 술자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각종 결정들이었다. 공식적인 회의에서는 신중하게 검토하고 논의했던 안건들이, 저녁 술자리에서는 몇 잔의 소주와 함께 쉽게 결정되곤 했다.
"오늘 저녁에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지."
이 한 마디가 때로는 수백억 원짜리 프로젝트의 운명을 좌우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가정사정으로 술자리에 참석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그들의 의견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훌륭해도 말이다.
나 역시 그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퇴직 후 돌이켜보니, 과연 그런 방식으로 내린 결정들이 얼마나 공정하고 합리적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얼마나 많은 좋은 아이디어들이 술잔 앞에서 묻혔을까? 얼마나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그런 관습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런 관습들이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신입사원들이 입사 초기에는 이런 문화에 반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순응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관리자가 될 즈음에는 자신들도 같은 방식으로 후배들을 대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당했으니까 너희도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야."
이런 논리가 얼마나 많은 악순환을 만들어왔는지 모른다. 조직문화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 아닐까.
내가 후배들을 지도할 때도 때로는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 이상적으로는 능력 중심의 공정한 평가를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의 관습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내 자신이 때로는 위선적으로 느껴져 괴로웠다.
이런 현상이 비단 내가 속했던 조직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어떤가? 지역주의와 학벌주의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국회의원들의 출신 지역과 학교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얼마나 제한적으로 대표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기업은 또 어떤가? 대기업 임원진들의 프로필을 보면 여전히 특정 지역, 특정 대학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공공기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가 대폭 교체되는 것을 보면,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성향이나 인맥이 더 중요한 기준인 것 같다.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 어느 분야를 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연줄'이 중요한 자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복잡하다. 과연 새로운 지도자가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기존의 관습과 타협하며 점진적인 변화에 만족해야 할까?
나는 퇴직자로서, 그리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음과 같은 변화를 간절히 바란다.
첫째, 진정한 능력 중심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출신 지역이나 학교, 가문이 아닌 개인의 역량과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사회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채용과 승진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하고, 투명한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획일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만이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 다양한 배경,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합리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밀실 결정이 아닌, 공개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을 통한 결정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이제 내 목소리가 조직 내에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후배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고 싶은 선배로서 나는 외치고 싶다.
우리 사회여,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한다!
학연과 지연이라는 낡은 끈들을 끊어버리자. 그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옭아매고 있는지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 그 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재능이 묻히고, 얼마나 많은 혁신이 저해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술자리 카르텔을 해체하자!
중요한 결정이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관행을 이제는 중단해야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가정사정으로 야근이나 회식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도 동등하게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업무는 업무 시간에, 업무 공간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공정성을 회복하자!
누구나 동등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부모의 배경이나 출신 지역, 학교가 아닌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가 아닌가?
투명성을 확보하자!
모든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만 불공정한 관행들이 뿌리뽑힐 수 있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시작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대통령이, 새로운 정부가 이런 변화의 출발점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과연 정치권 자체가 학연과 지연의 카르텔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들이 스스로 그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기존의 기득권층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젊은 세대들이 점점 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사회적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SNS와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더욱 투명하게 공유되고, 불공정한 관행들이 더 쉽게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기존의 방식들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굳이 술자리에서 업무를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화상회의를 통해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꿈꾸는 사회는 이런 것이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출신을 위조하거나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 여성들이 승진을 위해 남성들만의 술자리에 억지로 끼어들 필요가 없는 사회. 지방 출신들이 서울 출신인 척 연기할 필요가 없는 사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발전해 나가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조직의 경쟁력도, 사회의 발전도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온갖 족벌 관계와 연줄 정치에 소모되던 에너지들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쓰일 수 있을 테니까.
21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며 든 생각들을 이렇게 정리해본다.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을 잃어버린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나는 이미 퇴직했지만, 내 아이들과 손자들이 살아갈 사회를 위해서라도 이런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가, 새로운 정부가 진정으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주기를 기대하며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변화는 위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고, 아래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진정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감시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오늘 밤, 나는 또다시 그런 사회를 꿈꾸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것이 퇴직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