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파도, 보물을 엮는 고독한 손길

직감이라는 이름의 유혹, 그 달콤한 나태함

by 시가 별빛으로 눕다

1. 수업이 끝난 뒤, 빈 강의실에 남은 잔향

타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도시의 소음은 평소보다 멀게 느껴지고 발걸음은 유독 지면에서 떠 있는 듯 위태롭다. 방금까지 내가 머물던 강의실의 온기를 떠올려 본다. 그곳엔 78장의 카드가 만들어낸 무수한 상징의 파편들과, 그 상징을 붙잡고 자신의 생(生)을 투영하던 이들의 뜨거운 숨결이 여전히 부유하고 있다. "선생님"이라 부르며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빛. 그 눈빛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내 등에 업혀 집까지 집요하게 따라온다. 그 눈동자 속에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삶의 비상구를 찾으려는 절박함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설렘이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문득 멈춰 서서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진정으로 그들의 삶을 이끌 자격이 있는가?" 타로 마스터라는 길을 걷기로 결심한 그들에게, 나는 과연 오염되지 않은 이정표를 보여주었는가. 누군가의 인생을 해석하고 조언하는 '리더(Leader)'의 자리는 결코 화려한 왕관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과 희망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함께 가슴 아파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의 연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무게를 '능숙함'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제자들은 나의 입술 끝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에 자신의 운명을 걸어보기도 하고, 위로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그 엄중한 신뢰 앞에서 나는 과연 투명했는가. 리더는 앞서가는 자가 아니라, 뒤에서 오는 이들이 발을 헛디디지 않게 자신의 몸을 굽혀 바닥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한다. 오늘 나의 등불은 혹시 그들의 눈을 멀게 하는 눈부신 가짜 빛은 아니었는지,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한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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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직감이라는 이름의 게으름, 그 달콤한 유혹

이제는 내 안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꺼내어 솔직해져야 할 시간이다. 공부를 게을리했다는 자책이 밀물처럼 밀려와 마음의 둑을 허문다. 타로의 체계는 수천 년의 지혜가 응축된 심연이며, 평생을 바쳐 탐구해도 그 끝에 닿을 수 없는 거대한 바다와 같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내가 가진 '타고난 직감'과 '유려한 언변'이라는 매끄러운 도구 뒤로 비겁하게 숨어버렸다.

텍스트 사이의 촘촘한 행간을 치열하게 분석하고 상징의 새로운 변주를 밤새 고민하기보다, 그저 순간적인 영감과 그동안 쌓인 관성적인 통찰력에 기대어 수업을 이끌어온 것은 아닌지 가슴이 뜨끔해진다. 직감은 분명 리더의 강력한 무기이지만, 그것이 끊임없는 학습과 수련이라는 숫돌에 갈리지 않을 때 그것은 무딘 칼날이 되어 타인의 마음을 베어버릴 수도 있다. 나는 혹시 '바쁘다'는 비겁한 핑계로 서재의 책장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방관하지 않았는가.

나를 바라보던 학생들의 해맑은 눈동자를 다시금 떠올린다. 그들은 내가 던지는 말 한마디를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귀하게 여기며 필기노트의 여백이 모자랄 정도로 빽빽하게 옮겨 적는다. 그들에게 나의 강의는 단순한 이론의 전달이 아니라, 내일을 견뎌낼 용기이자 무너진 자존감을 세우는 지팡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더 깊이 사유하지 않은 채, 낡은 경험치를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해 내놓았다면 그것은 명백한 '영혼의 배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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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2년여 동안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들과 함께 하였고 현재는 AI,인권, 노인의 성,치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의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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