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다 ] 숫자의 감옥

욕심이라는 이름의 파도를 마주하며

by 시가 별빛으로 눕다

1. 매순간, 쇼핑몰의 노예가 된 리더

손목시계를 확인하듯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켠다. 이제 손가락은 뇌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쿠팡, 크몽, YES24, 알라딘 등 20개가 넘는 온라인 서점의 아이콘을 순서대로 찾아 들어간다. 화면이 로딩되는 그 찰나의 정적 속에서 심장은 비겁하게도 요동친다. "제발 한 권만 더, 딱 한 명의 독자만 더..." 기어이 숫자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 속엔 차가운 납덩이가 가라앉는다. 반대로 숫자가 단 '1'이라도 올라가 있으면, 나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양 비루한 미소를 지으며 안도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리더의 자격'과 '내면의 평화'를 설법하던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가치를 쫓으라"고 호령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들려와 낯을 뜨겁게 달군다. 화면 속 숫자를 확인하는 이 순간, 나는 그저 성적표에 목매는 초조한 수험생이자, 매대 위의 물건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장사꾼에 불과하다는 자각이 나를 덮친다. 20여 곳의 쇼핑몰 창을 유령처럼 배회하다가 허망하게 화면을 끄고 나면, 방 안엔 지독한 자기혐오의 냄새만 진동한다.

이것은 중독이다. 도박사들이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기듯, 나는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며 나의 가치를 시장의 논리에 맡겨버렸다. 내가 쓴 문장의 깊이보다, 클릭 한 번에 변하는 숫자의 크기에 영혼을 저당 잡힌 리더의 초상은 얼마나 빈약한가. 밤이 깊어갈수록 쇼핑몰의 파란 불빛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 불빛에 홀려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서서히 증발해간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라는 자문은 이미 중독된 손가락 끝에서 힘없이 흩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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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리'가 아닌 '판매'라는 낯선 목적

그동안 내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 14권의 책은 나의 생(生)을 정리하는 거룩한 매듭들이었다. 그때의 집필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 안의 헝클어진 목소리를 활자로 박아내며 스스로 치유받는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자 보상이었다. 책이 몇 권 팔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점 구석에 꽂혀 있더라도 누군가 한 명의 영혼에 닿는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때의 나는 진정으로 자유로웠고, 내 글은 날개를 달아 허공을 유영했다.

하지만 이번 15번째 책은 시작부터 결이 달랐다. '손주보다 쉬운 AI 사용법'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이고도 전략적인 제목을 붙이며, 나는 처음으로 '판매'와 '성공'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집어 들었다. 독자의 니즈를 분석하고,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해 문장을 다듬었으며, 시장의 흐름에 내 철학을 끼워 맞췄다. 목적이 '영혼의 정리'에서 '상업적 성취'로 전이되는 순간, 글쓰기는 축복이 아니라 고역이 되었고, 출간은 해방이 아니라 스스로를 옥죄는 구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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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2년여 동안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들과 함께 하였고 현재는 AI,인권, 노인의 성,치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의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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