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파도 위에서, 우리는 다시 돛을 올린다
어느덧 생의 정점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을 준비해야 할 나이라 세상은 무심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시간이 이제는 저무는 노을과 같아서, 그저 조용히 어둠을 맞이하는 것이 미덕이라 가르칩니다. 하지만 학교 교정에서 왁자지껄하게 피어나는 아이들의 생생한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펜을 잡은 나의 시간은, 세상의 시계와는 반대로 거꾸로 세차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학교라는 낯선 현장에 적응하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마음을 맞추느라 파도에 몸을 맡긴 사이, 세상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AI'라는 이름의 거대한 해일은 예고도 없이 밀려와 내가 서 있던 견고한 대지를 집어삼켰습니다. 그 속도는 잔인할 정도로 빨라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 지평선을 바꿔버리고, 그 깊이는 나의 수십 년 지혜로도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심연이었습니다.
때로는 이 절절한 속도감 앞에 뼈아픈 무력감을 느끼며 무릎을 꿇고 싶었습니다. 내가 평생을 바쳐 길들여온 우아한 문장들은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낡은 활자가 되어 비명 없이 흩어지고, 돋보기를 고쳐 쓰고 밤새 눈을 비비며 간신히 익힌 기술들은 다음 날 아침이면 벌써 '박물관에나 가야 할 어제의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 허망함은 칼날이 되어 가슴을 베고 지나갑니다. "이제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으냐, 그동안 14권의 책을 냈으면 작가로서의 소명은 다한 것 아니냐"는 내 안의 비겁한 속삭임이 매일 밤 나를 흔듭니다. 쇠약해진 육신은 쉬운 길을 가라 유혹하고, 세상은 우리 세대에게 '디지털 문맹'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무대 뒤로 물러나기를 종용합니다.
손끝은 세월의 무게에 무뎌져 마우스를 클릭하는 짧은 순간조차 떨림이 멈추지 않고, 단단했던 기억력은 이제 성긴 그물처럼 변해 소중한 정보들을 속절없이 빠뜨리곤 합니다. 저 멀리 빛의 속도로 앞서가는 시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거운 갑옷을 입고 진흙탕 속을 걷는 노병의 걸음은 얼마나 처절하고 외로운지요. 남들은 은퇴를 말하며 여유로운 노후를 논할 때, 나는 왜 다시 이 낯선 황야에 홀로 서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하는지, 그 막막함에 목이 메어 허공을 바라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외로움은 단순히 소외된 자의 슬픔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지의 영토를 개척하는 선구자가 치러야 할 신성한 통행료이며, 낡은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려는 매미의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비록 내 발걸음은 절룩거리고 숨은 턱끝까지 차오를지라도, 이 길 끝에 내가 뿌린 작은 씨앗이 '노년의 지혜'라는 거목으로 자라날 것을 믿기에 나는 다시 펜을 고쳐 잡습니다. 이 처절한 고독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이 시대의 현역 작가로서 숨 쉬고 있다는 가장 뜨겁고도 시린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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