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속담은 지독한 사기다
"공부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란다. 나중엔 하고 싶어도 머리가 안 따라줘."
어린 시절, 창밖의 매미 소리에 마음을 빼앗길 때마다 뒤통수에 꽂히던 이 말은 일종의 '거부할 수 없는 복음'이자 '잔인한 협박'이었다. 우리는 그 말을 신앙처럼 믿으며 자랐다. 십 대에는 대학을 위해, 이십 대에는 취업을 위해, 삼십 대에는 승진을 위해... 마치 정해진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공부의 때'를 놓치지 않으려 허덕였다. 그 시기를 놓치면 뇌세포는 사막처럼 굳어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문은 영영 닫혀버릴 것이라는 공포 정치가 우리 세대의 무의식을 지배해 왔다.
하지만 14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활자의 바다에서 평생을 헤엄쳐온 내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다시 '초등학교'라는 낯선 전쟁터로 돌아와 깨달은 사실은 하나다. 이 속담은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이들의 용기를 꺾고, 안주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하고도 그럴싸한 사기극이라는 점이다.
나는 지금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손주의 손을 잡고 등교를 도와주는 다정한 할아버지도,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는 점잖은 어른도 아니다. 나는 아이들의 날 것 그대로의 삶 속에 뛰어들어 함께 뒹굴고, 소리치고, 가르치며 동시에 처절하게 배워야 하는 '기간제 교사'라는 이름의 최고령 신입생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퇴직했으면 이제 좀 쉬지, 왜 사서 고생이냐"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이 말하는 '공부의 때'란 것은 타인이 규정한 유통기한일 뿐임을. 나는 지금 나만의 새로운 유통기한을 만들기 위해, 퇴직 후의 안락한 소파와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기꺼이 포기했다. 아이들의 땀 냄새, 분주한 실내화 소리,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지는 교실이야말로 내가 진짜 공부를 시작할 두 번째 책상이기 때문이다.
교단에 서기 전, 나의 일상은 거대한 은하계처럼 활기차게 자전하고 있었다. 나는 단순히 글만 쓰는 작가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독자들과 영혼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정성껏 글을 올리던 블로거였고,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세상의 흐름을 읽어주던 유튜버였으며, 신비로운 타로 카드의 문양 속에서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던 상담가였다. 내 손 안의 스마트폰 속 앱들은 세상을 향한 나의 촉수였고, 나는 그 촉수를 통해 쉼 없이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14권의 저서는 그 치열했던 소통의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학교라는 거대한 중력권에 발을 들인 순간, 나의 찬란했던 '부캐'들은 한순간에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침 8시,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의 자아는 철저히 파쇄된다. 수백 명의 아이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상상 그 이상이다. 칠판 앞에 서면 내가 작가라는 사실도, 타로 카드로 운명을 읽던 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는다. 쏟아지는 행정 서류 더미와 아이들 사이의 엉킨 감정을 풀어내는 중재의 시간들. 쉬는 시간 10분조차 다음 수업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진짜 비극은 퇴근 후에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 전원을 켜면, 어두운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영혼이 탈탈 털린 노병의 모습이다. '오늘의 일기를 블로그에 써야지', '구독자들에게 안부 영상을 올려야지'라고 다짐해 보지만, 손가락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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