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파친코 시즌2 예고편> 리뷰

정체성, 개인주의, 세대 차이

by 엠버 테트라

나는 살면서 이렇게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정말로, 정말로 완벽하다. 시즌1에 이어 저번에 시즌2 예고편까지 유튜브에 올라와서 얼른 찾아보았다. 배경음악으로는 로제가 부른 비바라비다가 흘러나왔는데, 영상의 장면과 너무 찰떡이라 보는 내내 경탄을 했다.


예고편에선 이번의 이야기가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한 여정일 것을 암시했다. 선자(김민하)의 지아비인 이삭(노상현)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선자는 곧 한수(이민호)와 만난 듯 보였다. 이삭에게 구원받은 선자는 그녀의 가치관으로 인해 분명 한수를 밀어낼 것이지만 그 둘, 한수와 선자 사이의 묘한 감정은 그들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긴장감을 준다. 예고편에서는 한수와 약간은 알콩(?)한 느낌이 있었지만 단맛은 직접 드라마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달콩의 '달'은 달다의 뜻이 아닌, 형태를 표현한 의태어이다. 언어유희로 써봤다.)

예고편에서 나온 미군의 폭격기 장면
한수와 선자가 다른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옛날에는 애아빠 없이 애를 낳는다는 것이 꽤나 두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아니, 두려움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든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선자는 한수가 (예고편 영상에서 말하는) 무궁무진한 그 기회들을 따라갔을 것이다. 이런 가치관을 과연 다른 나라 사람인 미국인들이 어떻게 이해했을지가 궁금하다. 왜냐하면 선자의 이 가치관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관념이 바로 미국인이 믿고 있는 개인주의이기 때문이다.


1989년도로 장면이 전환되면서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진하)과 선자의 갈등은 더 돋보였다. 솔로몬은 선자의 그런 면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조차 어림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지 도대체 이런 관념이 무엇으로 불리는지, 단순한 교조는 아닌지, 그 관념은 함부로 평가하지 못하는 대상인 것만 같다. 이미 결혼을 한 상대와는 결혼을 못하며, 결혼을 못한(남편이 없는) 여자가 홀로 아이를 낳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잘 파악할 수 없다. 현재는 이를 단순한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는 정도로만 이해하지, 이것을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예고편에서 선자가 솔로몬에게 '너가 누군지 잊지 말라'고 말한 장면이 있다.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요즘 세대들이 자신의 민족, 국가, 가족의 일부분이라는 것에 정체성을 느낄지는 궁금하긴 하다. 과거 나는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로 세상 사람을 '나를 규정하는 자아'와 '나를 발견하는 자아'인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를 규정하는 자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뜻에 따라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내 생각이 중요한 사람이다. 반면 '나를 발견하는 자아'를 가진 사람들을 자신이 처해진 주변 조건에 따라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은 자신이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그 정체성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은연 중에 나를 발견한다. 과거엔 외향적인 사람은 모두가 '나를 규정하는 자아', 내향적인 사람은 모두가 '나를 발견하는 자아'를 가진 줄 알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노년의 선자가 솔로몬에게 하는 말.

선자의 두 아들은 이 두 자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예이다. 첫째 아들인 노아는 전형적으로 내향적인 아이다. 속으로 많은 것을 삼키며, 웬만하면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아이다. 만약 내 아들이었다면 분명 아픈 손가락이었을 아이다. 반면 둘째 아들인 모자수는 아프면 아프다, 싫으면 싫다하는 적극적인 아이다. 개구쟁이 같은, 이 천연덕스러운 모습은 어리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런 기질을 타고난 아이처럼 보인다. 만약 내 아들이었다면 분명 미운 새끼 떡하나 더 준다고 해서 떡 좀 여러 번 받아먹었을 아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아는 '나를 발견하는 자아'를 가졌고, 모자수는 '나를 규정하는 자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아는 선자 곁을 떠났고(자세한 내용은 모르나, 선자를 떠나 한수를 따라갔다고 한다), 모자수는 선자 곁에서 자수성가하여 솔로몬을 낳았다.

노아와 한수. 노아는 아직 한수가 자신의 아버지인 것을 모른다.


이런 자아상에 따라 선자를 보면 선자는 꽤 복잡한 인물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조선'과 '어머니', '아버지'에서 발견하는 것은 소극적인 자아 관념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는 모습은 무척이나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일본에 건너가 정착했던 선자는 오히려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굳센 사람이다. 선자는 개인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을 가진 개인주의의 나라 미국에선 이런 선자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대단히 놀라운 사실은 드라마 <파친코>가 미국에서 제작됐다는 것이다. 즉, <파친코>는 미국 드라마이다. 오로지 애플tv에서만 볼 수 있는데, 애플이 어마어마한 제작 지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한국, 일본, 미국 어느 곳에서도 공감 받지 못할 것만 같았던 선자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나보다.

가장 선자다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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