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할 수 없는 미래가 현실이 되다.
세계에서 러브레터(?)를 가장 많이 쓴 인간은 누구일까? 적어도 공인된 기록 상으로는 처칠일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을 향해 도합 천 통이 넘는 편지질을 가했다. 그럼 이를 받는 이는 누구였을까? 바로 미쿸의 대통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그럼 처칠은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을까?
당시 영국의 상황을 보면 답이 나온다. 나치독일은 쏘오련과 폴란드를 반갈죽 냈고, 유럽 최강 군사강국인 프랑스를 6주 컷으로 끝냈다. 폭이 40km도 안 되는 도버해협 건너편에 독일군이 아른거리고, 독일의 자랑 유보트들이 브리튼섬을 에워싸 섬을 고립시키고 있다. 영국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던 많은 선박들이 공격을 받았고(일부 유보트는 미쿸의 서부 해안까지 진출해서 미쿸 상선을 상대로 어그로를 끌기까지 했다!), 독일의 루프트바페가 영국의 창공을 위협했다. 유럽의 '자유세계'는 이렇게 끝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미쿸은 안전한 바다 건너에서 팔짱을 끼고서 이를 관망만 하고 있었지.
당신은 상상이 가는가? 유럽 동부 끄트머리의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프랑스까지 작살나고 영쿸이 고사당해 가던 시점까지도 미쿸이 이 모든 걸 팔짱 끼고 관망만 했었다는 게? 지금의 상식으로는 쉬이 납득이 안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은 "미쿸이 그랬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처칠은 그 애절한 러브레터를 구구절절 적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 애절함이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결국 미쿸은 연합국으로써 일부 지원을 주기로 했지만 여전히 적극참전은 배재하고 있었다. 미쿸이 관망/후방지원을 버리고 두 팔을 걷어붙이게 된 건,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이 진주만에 폭탄을 한 드럼 쏟아붓고 난 이후이다. 직접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관망만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돌려 말 하자믄, 미쿸은 진주만이 공격받고 자국의 군함과 수병들이 꼬르륵 하기 직전까진 다른 '자유세계'의 동맹들이 어떤 꼴을 당하건 나발이건 이를 팔짱 끼고 관망만 할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전부터 주장했었다.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동떨어져있는 미쿸의 시각은, 유라시아에 발을 붙이고서 좋건싫건 '레드팀' 이웃들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시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미쿸이 스스로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전 세계 방방곡곡 오지랖질을 펴고 다니던 역사는 그러지 않았던 역사에 비하면 실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디폴트값이 아니라, 오히려 일시적인 '이상현상'에 가까웠다는 말이다. 전체 역사로 보았을 때, 미쿸은 오히려 유라시아대륙에서 누가 죽고 나자빠지건 신경 끄고서 아메리카 대륙만 주리 꽤는 상황이 더욱 많았고 자연스러웠다. 저들의 입장에서 유라시아 세계는 자신들의 세계가 아니다!
좌 우가 모두 착각해 온 지점이기도 하다. 좌건 우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미쿸이, '미 제국'이, 전 세계를 움켜쥐고서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을 거라는 세계관에 찌들어 있었다. 당연히 이는 사실이 아니며, 착각이다.
미쿸은 언제든지 세상을 지킬 준비가 되어있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나라이다. 때문에 수년 전부터 필자는 '미쿸이 세상을 버릴'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말이다. 한국은 결국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하며, 여기에 추가로 대만에 베트남, 필리핀까지 아우르는 별도의 블록(동아시아 해양나토..)을 만들어 레드팀 세력의 팽창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당시 반응은 싸늘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더 이상 미쿸에만 의존할 수 없는 시점이 올 거라는 생각'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납득하기 어려운 미래'는 이미 눈앞의 현실로 성큼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