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와 땀을 모독하는 좌파경제
2013년. 핀란드의 자존심이었던 휴대폰 회사 노키아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노키아가 없는데 자원도 빈약한 핀란드에서 복지국가 유지가 되겠냐? 이제 다 끝났군ㅉㅉ"
그로부터 10년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핀란드의 GDP는 20% 가까이 증가했고 여전히 잘 먹고 잘 살 산다. 핀란드의 '좌파경제' 역시 건재하다.
물론 핀란드에도 불안요소는 존재한다. 이를테면, 근래 러시아를 둘러싼 지정학적 변동은 핀란드인들로 하여금 강력한 안보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핀란드에 '종말'이라는 게 찾아온다면 그건 러시아 땅끄로 인한 것이지 ‘좌파경제의 단점과 모순’때문은 아닐 것이라는 거ㅇㅇ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그 동네도 문제가 많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북유럽 복지국가의 몰락을 점쳐온 이들이 우익우파 쪽에 있어왔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의 북유럽은 여전히 건재하다. 망하기는커녕 여전히 전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동네 중 하나이다.
물론 북유럽도 완벽한 천국은 아닐 수 있다. 세금은 높고, 겨울은 길고, 날씨는 음울하고, 사람도 은근히 까탈스럽고, 집값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북유럽으로의 이민을 꿈꾼다. 아무리 북유럽에 보이지 않는 문제가 많다 한들, 공부건 일이건 '하루 12시간 주말 없이'가 표준인 동방의 어떤 나라가 삶의 질이라는 측면으로 '감히' 비벼볼 레벨이 아닌 것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게으르다.
그래서 공짜를 주면 일 안 한다.
그러므로 복지국가는 필연적으로 나태와 무질서로 망한다.
이는 우익우파경제의 근간이 되는 오랜 신념체계이다. 그런데 북유럽은?
복지 많음. 세금 높음. 노동시간 짧음. 삶의 질 높음. GDP도 높음. 심지어 행복도 조사도 1등.
... 결국 잘 돌아가는 북유럽의 좌파경제는 “경쟁만이 생존”이라는 우익우파의 오랜 믿음을 모독한다.
"나는 그동안 복지를 '도둑질'이라 여기고, 경쟁이란 명목하에 하루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잠도 줄여가며 공부와 일을 해왔는데.. 북유럽은 그렇게 안 하고도 다 잘 살잖아?"
핀란드가 노키아 없이도 버티는 모습은 우익우파의 내면을 부수는 증거 자료가 되어 유라시아 동쪽 끄트머리에서 노오예처럼 척박하게 살아온 우리들의 과잉경쟁 인생을 '틀린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대륙 반대편의 어떤 나른한 행복들이, 이 땅의 '하루 12시간 주말 없이'들에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살았던 것."이라는 비극적인 진실을 폭로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게 싫다”라는 감정을 장막 뒤로 숨긴 채 “북유럽식 좌파경제는 영원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피와 땀이 틀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북유럽 언젠가 망한다론'은 '나의 윤리체계가 부서지지 않기 위한 주문'이 된다. 경제분석이 아니라 신념 보존을 위한 감정의 주문인 것이다. 현실의 평가가 아니라 “불가피하지 않은 고통을 애써 감내했던 것.”이라는 진실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거울 앞 독백 같은 것이다.
"저들이 편하게 사는 건 틀린 것이어야만 해. 안 그러면 힘들게 살아온 나와 우리가 틀린 게 되어 버리니까."
그렇게, 그들의 불편한 종말주문은 북유럽이 망할 때까지 계속된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 땅에 살지 않는 어떤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북유럽은 언젠간 망해야만 한다.
우리의 고통이 정당하려면 저들의 행복은 거짓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