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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노키아를 잃었고, 우리는 사람을 잃었지

그래서 여러분들은 환핀대전의 최종 승리자가 누구라고 보십니까?

by 박세환

2013년 노키아 신화의 붕괴 이후에도 핀란드 복지국가가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키아는 핀란드였지만, 핀란드는 노키아가 아니었으니까. 핀란드는 소수의 대자본 몇 개가 나라를 좌지우지하도록 디자인된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핀란드엔 자원이랄 게 거의 없다. 땅은 척박하고, 나무가 좀 많을 뿐이다. 그러니 사람을 키우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가진 건 인적자원뿐. 마치 한국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확실히 달랐다.

노키아는 무너졌지만 노키아에서 일하던 유능한 인재들은 복지국가의 안전망 덕분에 삶의 충격 없이 다른 산업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바이오로, 누군가는 게임 산업으로. 그렇게 기업은 무너졌지만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고, 핀란드 복지국가도 살아남았다.




핀란드도, 한국도 모두 20C 초중반을 지옥처럼 보냈다.
1930년대, 핀란드는 한국의 6.25를 연상케 하는 지옥 같은 좌우내전을 겪었다. 우파 연합이 간신히 승리를 거두자, 이젠 옆 나라에서 시비가 걸려온다.
우리의 상대는 부카니스탄이었지. 핀란드의 상대는 쏘오오오련이었다. 자, 지도를 펴고 체급차이를 보자. 이건 게임이 아니고 그냥 잔혹극이다. 결과는 두 번의 전쟁과 두 번의 패배. 일부 국토는 적에게 넘어갔고, 나머지 땅은 초토화되었다.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초토화된 땅에서 다시 곡괭이를 들었다. 한국, 핀란드 둘 다.
그런데 여기서 공동체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달랐다.


한국 : "우리의 상황은 너무나 각박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챙기고 갈 여유가 없다."

핀란드 : "우리의 상황은 너무나 각박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버리고 갈 여유가 없다."


그리고 여기서 두 나라 인문환경의 미래가 갈렸다.

단순히 정책 몇 개를 넘어 사람을 바라보는 윤리, 재난을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까지 모두.




“연병장 두 바퀴! 10등 안에 못 들면 들 때까지 한 바퀴씩 추가!”


한국은 국민을 빡세게 굴렸다. 없는 살림이었기에, 더욱 가혹해야만 했다. 그렇게 척박함 속에서 채찍질받은 인적자원이 오늘의 한국을 일궈냈다. 하지만 그 고통은 공동체적 체온 없이 개인의 피로도로 쌓여갔다.


하지만 핀란드는 국가의 ‘모성’으로, 따뜻한 복지로 국민을 길렀다. 그렇게 '공짜밥 먹고 자란' 인적자원은 이해받은 존재로서 스스로 자립했고, 공공을 위해 헌신했다. 그게 오늘의 핀란드를 만든 방식이다.


"끝까지 인간을 품고 간 공동체"에 대한 오늘의 이야기 한 점이다.


+꿈도 희망도 없던 시절, 핀란드에겐 지각과 멘틀을 뚫고 지구 내핵까지 꼴아박힌 국민적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고 그렇게 활용된 것 중 하나가 SF 국뽕 판타지였다. "우리 핀란드 인은 과거 유라시아의 북쪽을 모두 정복했던 대 핀제국의 후손이다!"

그 결과 핀란드는 온라인 세계에서 한국의 환단고기와 엮여 '환핀대전'이라는 시니컬한 밈으로 팔려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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