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를 막는 건 '국가의 가난'이 아닌 '사람의 감정'
관념론에 가까운 본인의 관점에서, 역사는 물질의 기록이 아니라 그 물질을 받아들이는 어떤 감정들의 기록이다. 욕망, 분노, 두려움, 그리고 '인정받고 싶다'는 관념적 본능. 그 감정들에서 전쟁이, 혁명이, 신념이 나왔다. 그리고 경제도 나왔다.
종종 '경제'의 표면은 이과적으로 보인다. 숫자와 그래프, 수요와 공급, GDP 어쩌고. 하지만 경제 정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차가운 수식’ 아래 도사리고 있는 뜨거운 감정들과 함께 경제 역시도 감정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인간은 '빵 한 조각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라 그 빵에 부여된 ‘감정’을 놓고 싸워온 것이다.
이러한 내 입장에서 특별히 경멸스러운 이들이 있다. 내면의 위악심 내지 증오라는 '감정'에 경제학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이성적' 탈을 씌워 각자도생, 약육강식이 '논리적으로 옳고' '이성적으로 옳고' 어쩌고 떠들길 즐기는 디씨류 커뮤니티 자칭 이성주의자들 말이다. 수요가 공급이 어쩌고 주워들은 우파경제를 읊어대며 좌파경제를 밈화하고 이죽거리느라 바쁜 이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우익우파들도 있다.
"능력도 없이 공짜밥이나 찾아다니는 버러지들이 내가 낸 돈으로 배불리 먹을 것을 생각하면 괘씸해 견딜 수가 없다.”
"세상에는 좀 짓밟히고 고통받아야 하는, 행복해져선 안 되는 인간들이 존재합니다. 세상이 그런 버러지들에게 너무 자비로와선 안되죠."
이건 숫자가 아니다. 감정이다. 이들은 애써 좌파경제를 향한 자신들의 솔직하고도 불편한 진심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감정은 그 자체로 진실이기에, 이들의 발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세상엔 성공한 좌파경제도 있지만 당연히 실패한 좌파경제도 있다. 왜 성공하고 왜 실패하는가? 자원 차이 때문에? 그것도 있겠지.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사회적 신뢰."
이걸 박세환 식으로 좀 더 쉽게 표현해 보자면 '서로에 대한 애정'. 최소한 서로 증오하지는 않는 마음 정도.
복지국가는 "같이 살아야 한다"라는 정서적 동의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식 복지국가가 가능했던 건 경제가 좋아서 이전에 서로를 너무 미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은?
“고생은 내 몫인데 공짜밥은 왜 쟤 몫이냐??”
“차라리 내 전재산을 끌어안고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릴지언정, 저 인간한테 내 세금이 쓰이는 꼴은 못 보겠다!”
이것이 바로 “한국은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서 복지국가로의 이행이 어렵어쩌고"하는 '그 어려운 말'의 '쉬운 실체'이다. 복지가 안전망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분노의 방아쇠가 되어버리는 사회에서, 복지국가는 형이상학적인 공상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수요 공급 그래프가 아니라 복지를 받아가는 누군가에 대한 '증오'이다. 그리고 그 증오는 사회를 무너뜨린다. 이런 사회에서 복지를 강제하면 공공은 혐오의 증식소가 된다. 연대는 파괴되고 남는 건 불신과 불평뿐이다. 그리고 이건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 쪽 좌파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큰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를 향한 수용'이라는 집단적 정서가 부재한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척’ 하는 실험은 오래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는 마냥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
"우리는 사회적 신뢰가 낮으니까." "서로 미워하고 혐오하고 증오하는 '정서적으로 후진 사회'니까" 천년만년 각자도생 마인드로 살아가는 게 맞는 건가? 일부 우익 엘리트 지도자들은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복지국가조차 시도할 수 없는 사회는 이미 사회가 아니다. 자 지금 우리를 보자. 우린 좌파경제 그런 거 모르고 복지국가 시도도 안 해봤지만 서로를 혐오하면서 저출산으로 알아서 망해가는 중이지 않나! 복지국가의 부작용 같은 거 없어도 자발적으로 망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바쁘다.
이미 우리에겐 ‘하지도 않은 실험’을 망가뜨릴 모든 증오가 퍼져 있고, 이제 와서 무언가를 시도해 보기도 전에 스스로를 포기한 상태에 가깝다. 공짜로 처먹는 꼴을 못 보는 사회. 그래서 나눌 수 없는 사회. 그래서 믿지 못하는 사회. 그래서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사회. 그게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이 자화상을 그린 손에는 숫자보다 감정이 더 많이 묻어 있다.
"사회적 신뢰가 낮아서 복지를 못 한다"라는 사회는
복지 이전에 이미 망한 사회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다시 서로를 믿는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끝까지 이 악물고 각자도생인가? 아니면 그래도 한 번쯤은 '당신 조차도 믿을 수 있을 만한 친구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