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이름으로 심어온 씨앗들이 피어난 것뿐
러시아가 북한 참전을 공표하면서 그간 "서방 프로파간다" 운운하며 이를 극구 부정해 온 NL 북한러버들이 대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러시아의 침략전쟁과 북한의 참전을 처음부터 비판해 온 '일부 자각 있는 진보들'은, 그러한 NL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 너희는 진보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 진보답지 못했다. 진정한 진보가 아니란 말이다."라며 대차게 비난을 퍼붓고 있다.
물론 NL들이 병맛인 건 디폴트값이라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지금 '진보정신'을 빌미로 그들을 대차게 몰아세우는 또 다른 ‘진보들'을 향해서도, 조심스러운 한마디를 던져보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답지 않았다는 건가?"
미제와 서방은 적이며,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그 허울 좋은 명분으로 북에 대한 비판을 유예하고 서방을 향한 적개심만을 키워온 이들이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가? 또 이를 '같은 편'이라는 명목으로 말없이 용인해 왔던 건 누구누구인가?
‘반미 반서방주의’를 미덕으로 여기며 그 반대항이라는 북중러 이란에게 무지성 실드를 쳐주는 건 사실 ‘진보’의 오래된 관행이었다. 눈귀 막고 정신 나간 음모론들까지 동원하며 미쿸과 서방에 대해 무지성으로 비난하던 이들을 "그래도 우리의 반제동지"라며 정당화해 준 어떤 관행들은 당신들의 그 소듕한 '진보'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로 지금 NL들이 보이는 정신분열적 코미디는 결코 하늘에서 떨어진 돌발변수나 갑툭튀 한 신기루가 아니다. '진보'의 오래된 병폐가 낳은 사생아. 미제와 서방을 때릴 수만 있다면 어떤 비상식도 합리화해 준 진보적 관성들이 만들어낸 너무나 합당한 결과물이다.
어디 이뿐인가?
(남성의 대립항으로써) 여성이라면, (서방세계의 대립항으로써) 제3세계라면, (성인의 대립항으로써) 청소년이라면, (군경 제복을 입은 공적 질서의 대립항으로써) 범죄적 저항자들이라면 모두 무비판적으로 미화하고 무지성 실드를 남발해 주었던 게 그 잘나신 '진보'의 오랜 관행이 아니었던가?
페미피씨 반대, 대안우파 창궐, 소위 K페미라 하는 메갈 워마드의 난동, 그리고 작금 NL 종북이들의 정신분열까지, 이러한 이 시대의 난리통들 중 어느 하나도 '갑툭튀'라 할 만한 게 없다. 진보 정신의 이탈이 불러온 참극이 아니라, 수 세대를 거쳐 꾸준히 이어져 온 어떤 '진보적 관습들'의 필연적 귀결이다. 진보의 습관들을 한층 더 철저하게 이행한 끝에서 나타난 결과이며, '진보'의 이름으로 여기저기 심어온 씨앗들이 각지에서 꽃(??)을 피운 것뿐이다.
진보의 변절이 아닌 진보의 귀결인 것이다.
'진보'의 상당 부분은 '원래부터' 이랬다. 진보는 무너진 게 아니라 기나긴 세월 동안 이어져온 관성 그대로 썩은 것뿐이다. 고로 'NL'의 병맛 앞에서 '진보'가 무죄일 수는 없다.
그러니 "변절" 어쩌고 "그건 진정한 진보정신이 아니다." 어쩌고 하는 말들로 실상을 덮으며 "'진짜 진보'는 다르다."라고 포장할 게 아니라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들을 하자. ‘진보’라고 하는 정치적 개념 자체가 처음부터 앞뒤 안 맞는 모순 투성이었음을 말이다. 반서방주의, 페미니즘, 성해방, 백개의 성별론, 반권위주의, 문화상대주의, 아나키즘, 평화주의에서부터 폭력혁명까지, '저항적' 민족주의에서부터 세계시민주의까지 등등 서로 '사맞디 않은' 개념들을 어거지로 짜깁기해 만든 엉터리 신화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이들에게 그토록 소중한 단어인 '진보'는, 처음부터 그렇게 너저분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우습지 않은 진정한 진짜 진보’라는 개념은 그저 실체 없는 환상일 뿐이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자각이 있을 때까지
이 시대는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진보적 천태만상'들을 여러분들의 눈앞에 들이밀며 '진보'여러분들께 끝없는 수치심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