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든 지옥이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재명과 이준석이라는 거대한 두 존재감은 결국 '좌파경제'라는 테마를 대선의 주된 의제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온라인 공간은 소위 이준석 좋아한다고 떠드는 ‘위악자들’의 좌파경제 혐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이 작자들이 시장 만능 능력 경쟁 어쩌고 하면서 신경을 하도 긁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각 잡고 장문 쓴다.
"왜 성과자의 헌신으로 아무짝에 쓸모없는 무능력한 개돼지들이 공짜밥 공짜연명 가능해야 함?"
"성과를 내지 못했으면 그 대가로 정당하게 굶어 죽어야지. 성과가 없는데도 타자의 성과에 기대어 삶이 연명될 수 있다면 그게 '공정'이냐??"
"ai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그 쓸모를 상실한 노동계급은 당연히 그 쓸모없음에 대가로 정당하게 굶어 죽어야지 별 수 있냐? 그게 자연의 섭리 아냐?"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도태되는 생명체를 구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생태계를 왜곡시키는 거야! 죽어야 할 자는 죽어주는 게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이준석 부류의 경제관
작은 정부, 시장 자유, 능력주의, 부자감세, 규제철폐, 약육강식이라는 깃발은 이렇게 젊은 층의 위악적 대안우파 심성과 결합하며 무한히 증폭된다. 가난은 죄악이자 무능의 증표, 복지는 도둑질, 공공의 손길은 ‘퍼주기’고, 타인의 도움을 받는 건 ‘패배자 인증서’로 여겨지는 세계관 말이다.
세상 모든 일을 그저 '자유로운' 시장 경쟁의 원리에 맡겨뒀을 때, 세상이 알아서 잘 돌아갔다면 '좌파경제'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까 정부가 개입했고, 지금도 여전히 개입 중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시장만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노동법이 그렇다. 최저임금, 근무시간제한, 산업안전보건법 등등. 이 모든 규제는 '시장이 실패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시장에 맡겨보니 어떻게 됐냐고? 자본은 단가 낮추려 들고, 노동자는 계속 짜부라졌지. 결국 국가가 노동 처우의 하한선을 강제하며 말했다.
“앞으로 이 선만큼은 최소한으로 지켜라, 개XX들아.”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노동자들이 받는다는 소위 '사람대우'는 결코 시장 자율 능력 경쟁의 결과물이 아니다. 정부와 노조가 시장의 목덜미에 칼처럼 노동법 규제들을 들이대며 ‘어기면 죽는다’라고 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공사판에서 벽돌 나르던 최하급 노동자인생조차도 결혼하고 집 사고 애 키우며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강한 복지, 정부의 폭력적 개입, 사회주의적 규제의 잔재 등등 '시장 경쟁 원리'를 ‘어긴' 결과물이었지 '그 잘나신 시장원리’의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근데 이걸 '시장만능주의 하비에르 밀레이준석'처럼 ‘차등적용’이랍시고 풀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지역별로 최저임금 다르게 한다?
그 순간부터 규제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자본은 싼 임금 따라 이동하려 하고, 지자체들은 그 자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최저임금을 최저생계선 아래로 낮추는 '자발적 노예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경쟁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규제에 경쟁이 다시 허락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너진다. 그냥 간판만 남는 거지ㅇㅇ
그럼에도, 최저임금 알바로 연명하면서 이준석의 '시장주의적인 차등정책'에 환호하며 시장 능력 성과주의 만세를 위악적으로 외치는 그대들은 진정 그게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 것인가? 정부의 ‘강제’와 ‘개입’이 사라지고 너 나 우리의 삶이 시장의 평가에 노출되 오직 거기에만 의존해야 할 때, 과연 삶이 더 나아질 거라고 믿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세상과 자신을 향한 혐오감정을 위악으로 떠들어대고 있는 것뿐인지..
유럽 복지국가에서 정부가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규제를 가하여 ‘하찮은 공사판 노동자’에게조차 집 한 채, 결혼, 자녀,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을 허락했던 그 사회 시스템이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가?
사람이 너무 안 굶고
너무 안 고통받고
너무 안 굴욕적인 삶을 살아서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만드는가?
단지 벽돌이나 나르고, 청소나 하고, 사람 손 가는 허드레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은 당연히 한국처럼 대출에 허덕이며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 때우다 월세 밀려 쫓겨나고 끝내 마포대교에서 한강물 온도 재다가 삶을 마감하는 것이 ‘하늘과 자연이 정해준 이치’인 것인데
유럽은 그들을 그렇게 죽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게 너희를 불편하게 만드는가?
그래서 ‘충분히 잔인하지 못한’ 세상을 부수고, 그 빈자리에 “이준석”을 올려놓는 걸 혁명이라고 굳게 믿게 된 것인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길, 더 많은 약자들이 패배하길, 더 많은 너 나 우리의 인생들이 쓰레기통에 거침없이 처박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능력' '경쟁' '시장만능'이라는 슬로건에 환호하는 것인가?
"세상이 너무 자비로워선 안되며, 우리 같은 무능력한 약자들은 절~대로 손쉽게 행복해져선 안된다!"
친애하는 여러분들이 '자유로운 시장 경쟁'이라는 명목으로 위악의 대서약을 한 결과
그 위악적인 미학의 끝에서 하루 12시간 주말 없이 등골 빠지게 굴러야 하는 헬조선 수레바퀴는 우리의 삶을 쉴 새 없이 깔아뭉개면서 힘차게 돌아가고 있고
그 위악적 통쾌함을 비명 섞인 굉음으로 쏟아내는 중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수레에 자신의 등짝이 짓뭉개지는 걸 바라보다 끝내 웃으면서 말할 것이다.
“어쩌겠어. 이게 시장이고 이게 세상이지.”
그래. 너희가 만든 세상이지.
+아무도 당신들에게 '그렇게까지 불행하라고' 하진 않았다. 근데 당신들은 기어코 매번 그걸 선택한다.
그렇게 오늘도 지옥의 유지보수에 성공한 걸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