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나 고우나
나와 오랫동안 소통한 페친분이라면, 수년 전 내가 이재명을 꽤 강하게 지지했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이재명 특유의 좌파경제와 강한 추진력을 보면서 많은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지지난 대선 국면을 지나며 조금씩 균열을 일으켰다.
기본소득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그건 제가 대통령 된 다음에 어쩌고 이런 안철수식 화법을 구사하더라. 그리고 그때부터, 그가 점점 많은 것들에서 타협하는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민주진보진영이 지켜왔던 수많은 가치들에 대해 흔들리고, 물러서고, 오락가락하며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준수하는 신념도 있었다. 문제는 그게 페미니즘이었다는 거지ㅇㅇ
결과적으로 '그의 민주진보진영'에서 좌파경제는 협상의 대상이 되었고, 노동과 복지는 전략적으로 유보되었지만, 페미니즘만큼은 그 어떤 정치적 거래에도 넘겨지지 않는 '성역'처럼 다루어졌다. 닷페이스, 박지현, 그 외 여성계 인사들과의 밀착은 그의 변함없는 ‘일관성’이었고, 일관성의 이름으로 페미를 지키고 좌파경제를 접는 그의 모습에 꽤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그를 지지했던 마음의 상당 부분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이재명 진영은, 좌파경제라는 측면으론 이준석에게 무한한 공격을 허용했으면서 오직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이라는 프레임만을 꺼내 들어 반격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에 맞서 싸우는 좌파로서의 이재명은 보이지 않았고, 여성인권과 혐오 프레임만이 언론에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재명을 완전히 손절하진 않는다.
현실적으로 이재명은 '여전히' '그나마' 좌파경제에 근접한 정책 입장을 보이는 인물이고, 페미니즘과 약간의 거리 두기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넘지 말아야 했을 선'을 넘어버린 전통보수주의진영을 한 번은 콱 밟아놓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것이 가능할 인물이라면 결국 이재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전임자처럼 어떤 심각한 사고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의 운명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그 5년은 그의 시간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시간이다. 그의 성패는 우리 모두의 성패와 불가피하게 연동된다. 그래서 나는 미우나 고우나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 단순한 정치공학적 성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을 함께 짊어진 지도자로서의 성공 말이다.